論說

미친 교육이 사람 잡겠네

체거봐라 2008. 5. 28. 10:57
 미친 교육이 사람 잡겠네

 


  정부가 국민들의 공교육 불신을 해소한다고 여러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는데 오히려 불신을 더 키우기만 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국정을 새로 담당한 사람들은 국민의 불신이 어디에서 기인(基因)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정책이 하나같이 미봉(彌縫)에 지나지 않아 국민은 울화통이 치밀 지경이다.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영어몰입교육 정책, 학교자율화 정책과 앞으로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는 고교다양화 정책, 대학자율화 정책 등은 공교육을 포기하는 정책으로, 국민의 일반의지를 거스르는 폭정으로 비칠 가능성마저 보인다.

  사교육 부담 한 가지만 봐도 국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동안 정부기관이 조사하여 발표한 사교육비 부담액은 현실과 잘 맞지 않아 국민의 고통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그런데 근래 서울시 강남구가 조사한 결과는 현실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충격적이다. 조사 결과 자녀 1명당 월 평균 사교육비용이 약 70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가구당 두 명의 자녀로 계산한다면 한 가구당 약 140만 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 임금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며 비정규직의 한 달 평균임금은 127만 원 정도이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 월 가계소득이 약 250만원인데 이 중 절반 넘게 사교육비로 나가야 한다는 계산이다.

  서울 강남은 잘 사는 동네이니 일반화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이미 도농 간의 격차는 논란거리도 되지 못하고 교육이 부를 세습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극히 일부의 현상이라고 치부하기 전에 우리 공교육은 이미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실현시키는 역할은 엄두도 못 내는 절박한 상태에 빠졌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대학 진학률이 82.8%에 달하고 대학 졸업자 중 정규직 취업률은 57%밖에 안 되는 현실에서는 교육비로 소득의 절반을 쏟아 부어도 비정규직을 면하기 쉽지 않으니 이런 나라에서 사는 학생과 학부모가 공교육에 기대를 거는 게 가당키나 한가.

  정부는 자립형사립고 특목고를 많이 만들어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써야 하고 입학을 한다 해도 등록금이 너무 비싸 서민이 감당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연초에 대학 등록금이 1000만 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고등학교 중에도 1년 등록금이 1000만 원을 넘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전국에 자립형사립학교가 6개밖에 되지 않으니 아직은 극히 소수 부유한 사람들만의 얘기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고교다양화 정책으로 자립형사립학교가 100개 정도로 늘어나면 고등학교 등록금 1000만 원이 일반화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별한(?) 고등학교와 명문사립대학을 다니는 데 드는 등록금만으로 약 1억 원을 써야 대학 졸업 후에 정규직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불문율처럼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여기에 사교육비까지 합하면 자녀 1인당 약 2억의 교육비가 들어간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우리나라에서 자녀를 교육하는 학부모들의 고통은 바로 이런 문제에서 기인(基因)한다고 봐야 한다.

  이런 형편이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정책은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요 국민에게 절망감만 심어 주는 것이다. 학벌이 취업을 결정하고 고등학교 진학이 대학 진학을 좌우하는 현실 상황에서 학교가 하게 될 역할은 뻔하다. 정부의 정책에 따르면 학교는 부의 세습을 공인해 주는 역할만 하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가 한 해에 등록금을 1000만 원이나 내야 하는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수학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는 필연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분이 세습되는 왕조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서민은 미칠 노릇이다.

 

20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