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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당쟁기의 실용주의 - 탁오(濯吾)와 수오(守吾)

체거봐라 2009. 10. 17. 18:40

탁오(濯吾)와 수오(守吾)

 

하루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앞날을 내다보는 일이 사치스럽게 보일 겁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복권을 사는 것처럼 허황되고 불순하게 보일 수 있겠습니다. ‘게으른 놈이 밭고랑만 센다’는 속담은 성실한 노동자의 삶을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철학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우리 사는 모습은 이 단순한 진리가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기르는 뻐꾸기가 되고 싶어 앞날을 손금 보듯이 하려고 하니 미래를 학(學)하는 게 유행이 되었습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미디어 혁명과 지식정보화가 앞으로 우리의 삶을 좌우할 메가트랜드(megatrends, 큰 흐름)라고 떠들고, 놀면서 돈 벌 궁리로 분주합니다. 발아래만 내려다보고 묵묵히 일하는 건 바보짓이 되어 버렸습니다. 앞날을 내다보는 일이 이렇게 구차스러우니 지난날을 돌아보는 게 더 낫겠습니다. 미래를 내다보든 과거를 돌아보든 현재를 제대로 보려는 궁리로 서로 다르지 않겠지만 지난날을 돌이켜보는 일은 돈 되는 셈법과는 좀 멀지 않나 자위하면서 말입니다.

 

병자년의 남한산성을 들여다보다가 당쟁의 기원을 찾게 되고 그러다가 퇴계를 만나고 퇴계와 동시대인으로 그와는 다른 면모를 가진 남명이 보이고 그의 계보를 훑다보면 다산을 만납니다. 퇴계는 중종조(朝) 혼란기에 거듭 벼슬살이를 그만 두다가 단양에 한동안 머문 적이 있는데 그때 자주 천변(川邊) 바위에 올라 쉬었다고 합니다. 바위에 탁오대(濯吾坮)라고 쓰고 귀감으로 삼았던 모양인데 그에게 ‘자신을 씻는다’는 이 말은 꽤 의미심장합니다. 굴원처럼 혼탁한 세상을 피한다는 의미인지, 난세에 환로(宦路)에 나가 두루 평판까지 좋았던 자신의 넉살에 대한 염치(廉恥)인지 가늠하기 힘듭니다. 물러나 근본에 몰두하는 선비의 풍모가 참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남명이 꼬집은 것처럼 먹을 게 나오는 것도 아닌 말만 너무 무성하여 민망하기도 합니다. 말싸움으로 지새우다 나라를 들어먹은 유자(孺子)들의 꼴불견이 그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고, 종주국에서 '해동주자'라 칭송한 지경에 이르면 낭패감마저 갖게 됩니다.

 

퇴계가 두루 잘 어울렸다면 남명은 고집스러웠다고 할까요. 퇴계의 제자들이 남인 계보를 잇고 남명의 제자들이 북인의 계보를 형성하게 되는데 각각 유성룡과 정인홍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남인은 상대적으로 처세에 능해 서인 노론 벽파의 숙청 때까지 살아남았는데 북인의 비타협 기풍은 인조반정 때 정인홍과 이이첨의 사형으로 박살이 나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유연한 남인은 만년 야당으로 끈질기게 살아남았지만 북인은 한때 반짝하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집니다. 그러나 천주학파가 주로 남인 계열의 사람들이라 정약용이 남인의 계보에 닿긴 하는데 그의 형 약현은 남명의 직계 제자라도 해도 좋을 비타협 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타협을 거부하는 남명의 학풍은 정약현을 위시한 신진 개혁파의 숙청을 잉태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서인의 계파에서 북학파 실용주의가 나온 것은 북벌론자들이 청나라의 안정화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현실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약용은 같은 실학자로 분류하지만 북학파 박지원과는 철학적 바탕이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합니다. 정약용은 남인의 학풍을 이어받아 근본주의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 있지요. 물론 그의 형에 비해 타협적 처세관을 갖고 있긴 했지만 말입니다. 다산의 큰형 약현이 생전에 당호를 수오재(守吾齋)로 지어 자신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지킨다는 ‘수오(守吾)’가 목숨과 바꾼 그의 신념을 고스란히 담는 말인 것 같아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산은 배교(背敎)한 대가로 살아남아 나중에 형님의 수오(守吾)를 거듭 되씹었다고 합니다. 나를 지키는 일은 나를 부정하는 것보다 어려운 모양입니다. 한편으로 주교(主敎)에게 고해 바쳐 신원(伸寃)을 꾀하려던 저들의 국제적 감각(?)이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탁오(濯吾)와 수오(守吾), 나를 씻는 일과 지키는 일. 근본을 추구하는 자가 끊임없이 자신을 씻으려(革) 하고 실용을 꾀하는 자는 자기 목숨까지 내놓으며 자신을 지키려(守) 했답니다. 그 역설도 역설이려니와 요즘 세태와 견주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어느 시대나 갈림길을 마주한 듯 결단을 요구해, 분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만, 말이 아성(牙城)을 구축하는 현란함이 너무 아찔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모두 저 나름으로는 최선이겠지만 난설(亂說)로 지새우는 저들이 남한산성의 최명길 김상헌만도 못해 보이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저들이 민(民)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말이 다 거짓인 줄을 삼척동자도 다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