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행복의 관계 - [참새들의 합창]
우리한테는 [천국의 아이들]로 알려진 이란의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작품입니다. 조사를 해 보니 이 분의 작품이 꽤 여러 편 나왔더군요. [참새들의 합창]과 거의 같은 시기에 나온 [윌로우 트리]가 있고 [천국의 미소]라는 작품도 있네요.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실상은 몸과 마음에 별로 좋지 않은 영화들을 즐겨 보는 풍조를 어떻게 바꿀 수 없나 고민하는 사람들에겐 대안이 될 만한 영화들입니다. 감독이 믿음이 갑니다. 저는 [천국의 아이들]을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그의 작품으로 [참새들의 합창]이 두 번째이네요. 여전히 아름다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습니다. 가족 영화로는 더이상 좋은 영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질이 지배하는 우리들의 약은 속마음을 되돌아 보게 하는 아주 설득력 있는 교훈성도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가난이 뭔지 아는 우리 세대는 물질을 단순히 욕망의 대상으로만 볼 수가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좀 있겠지만 물질을 신성시하는 관념을 다들 갖고 있습니다. 물질을 소모해고 버리면 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바로 이 세대의 특징적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빈곤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를 뼈저리게 경험한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우리 세대가 갖는 물질에 대한 본능적인 애착은 나름대로 정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벌어서 저축하고 나중에 어려움이 닥칠 때를 대비하는 마음은 우리 세대 건강한 삶의 기본 철학이라고 할 있습니다. 그런데 바야흐로 물신주의의 비인간성을 논하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물질은 가치의 척도이기보다 일종의 휘발성 에네르기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물질에 어떤 영속성을 부여하려는 사고방식은 아주 유치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물질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인간관계의 패턴까지 바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덕 약속과 신의는 아집과 우둔함으로 평가절하될 정도가 된 듯합니다. 끊임 없는 혁신과 변화는 정체되어 있는 것을 도태시켜버리는 일종의 사회 작동 원리로 자리잡은 듯합니다. 한 해 뒤처진 구모델을 쓰레기로 취급하는 시장의 역동성이 인간관계까지 바꿉니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이윤 극대화의 원리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며 모든 인간관계는 게임파트너쉽의 양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부부간은 말할 것도 없고 부모 자식 간에도 물질을 매개로 하지 않으면 관계의 지속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 관계의 변화는 경제 질서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봅니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혁신'은 자본제적 풍요의 근본 원리이기도 하기만 인간성 상실과 소외의 근원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린 이런 물질적 풍요로 인해 행복해진 걸까요? 옛날에 비하면 너무 풍족해졌는데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요. 사람들이 다 그래요. 사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그래서 요즘은 다들 간소한 시골 생활을 꿈꾸고 하나 봅니다. [참새들의 합창]은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 주기보다 오히려 행복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재미있으면서 진지하게 보여 줍니다. 한창 크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 더욱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처럼 부모와 자식이 함께 보면 더욱 좋겠지요. 요즘 자식 기르는 부모치고 힘들지 않은 부모 없을 겁니다. 건강 걱정, 돈 걱정, 자식 걱정이 3대 걱정거리라고 하는데 이 중에서 자식 걱정이 제일 힘겹답니다. 다른 걱정들이야 내가 조심하고 노력하면 될 것 같은데 자식 걱정은 내 맘대로 안 되니 제일 골치아픈 문제가 분명하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이들 문제는 곧 어른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더 좁혀서 내 자식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자식더러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정신 무장을 하라고 다그치고 있으면서 비인간화에 대해 낙담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자가당착입니까. 자식이 맘대로 안 된다고 탓할 게 아니라 내 속의 욕심과 비인간화를 가만히 들여다 볼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새들의 합창]은 어른들에게 좋은 교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학생들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는 물질욕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지만 요즘 학생 중 특정 상표의 옷가지 한둘쯤 안 갖고 있는 학생이 없을 겁니다. 하나에 수십만 원이나 하는 홑겹 외투가 국민복처럼 되어버린 황당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합니다. 한두 가지의 상표가 이렇게 많은 구매자를 지배하고 있는 게 이해가 잘 안 됩니다. 특정 상표와 상품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의 이런 물질욕은 참으로 보기 안 좋은 모습인데 이를 어떻게 고칠 수 있을지 속수무책입니다. 누구나 다 짐작할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유행처럼 사입고 그 욕심 때문에 도난사고가 끊이지 않고 하는 걸 목격하면서 물질의 마력(魔力)이란 걸 실감했습니다. 물질이 우리의 행복을 파괴하고 있는 실상을 너무 가깝게 접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