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씨네마

청춘 사랑가 두 편 [소셜 네트워크], [산사나무 아래]

체거봐라 2010. 12. 3. 13:29

미성년자의 연애를 어떻게 보십니까? 이 문제만큼 세대간의 인식 차이가 큰 주제도 없을 듯합니다. 10대 후반의 자녀를 둔 부모는 이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요. 혈기 왕성한 10대 후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육체에 대한 노골적 표현이 거리낌 없이 횡행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성년이 되지 않은 자식이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화들짝 놀라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사랑은 생물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나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권장(?)되어야 할 일인데도 말입니다. 인류의 문화가 고도로 복잡성을 띄게 되면서 성장기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연유로 인해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보는데, 욕구를 거세당한 젊은이나 뻗쳐 오르는 욕망을 통제해야 하는 부모나 참 못할 노릇입니다.

 

생물학적으로나 문화인류학적으로 10대 후반의 사랑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요즘과 같은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는 미성년자의 사랑과 깊은 관계는 자칫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트라우마(심리적 외상)를 입히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얼마전 소개했던 영화 [회오리 바람]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영화는 학교 밖의 모든 문화를 일탈로 몰아븥이는 제도 교육이 참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타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제대로 기르지 못한 채 사랑에 빠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지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고 봅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사랑의 몸짓이 잘 어울리면 지극히 아름답고 행복하지만 마음과 몸짓이 어긋나면 그것만큼 불쾌하고 추한 것도 없다는 것을 요즘 젊은이들은 어떻게 배우고들 있는지 걱정스럽습니다. 그래서 청춘기의 사랑을 다룬 좋은 문학 작품을 잘 골라 소개하는 일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야동으로 사랑을 배우다니요. 터무니 없는 얘기입니다.

 

미국 청년들의 사랑 이야기 [소셜 네트워크]와 중국 문화혁명기의 젊은 사랑을 다룬 [산사나무 아래]는 젊은이들의 사랑에 대해 함께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명작이라고 봅니다. 세계 최고의 명문대 하바드 대학교 학생들은 이성을 어떻게 사귀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 [소셜 네트워크]는 그 단면을 아주 잘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하바드 대학교의 기숙사 생활을 해보지 않았으니 이 영화가 얼마나 그들의 삶을 잘 반영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이 영화를 통해 그들이 영위하는 삶의 단면을 함부로 재단하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소설로 발표된 이 작품이 대중들에게 인기 있었던 까닭이 뭔지 엄밀하게 분석해 봐야 할 것입니다. 선민에 대한 열등의식이 작용한 결과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이를테면 그들도 별게 아니구나 하면서 자위하는 심리가 반영된 대중적 인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좀 찌질한 심리잖아요. 이런 조심스러운 면이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이 어느 정도 그들 사회의 단면을 반영했다고 인정합니다. 상류사회의 선민의식과 뒤틀린 열등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적이니까요.

 

스물 세 살의 나이에 1조 4200억원 상당의 거부가 된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주크버그의 학창시절을 그린 [소셜 네트워크]가 그린 그들 청춘의 연애담은 참 가소롭기 그지 없습니다. 공부만 한 이들이라서 그런지 그들의 연애 감정은 유치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치기 어린 애들의 연애라는 게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게 당연한 것이고 이를 보태거나 과장됨이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낸 작품의 진실성이 돋보인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 비해 [산사나무 아래]는 젊은 남녀의 사랑을 너무나 아름답게 그렸습니다. 한 세대 정도의 시간적 격차가 있고 동서양의 문화가 격하고 있긴 하지만 어찌 이리도 사랑 얘기가 다를 수 있을까요. [산사나무 아래]의 두 젊은이가 서로를 위해 주는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서로 상대를 너무나 애틋하게 위하여 자신의 절절한 감정을 짓누르기만 하는 둘의 아픈 절제가 관객을 가슴 저미게 합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인민 대중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혁명 정신이 몸에 베어서 그런 것일까요. 한편으로는 선전 영화의 혐의도 받을 만하다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 영화 [회오리 바람], 미국 영화 [소셜 네트워크], 중국 영화 [산사나무 아래]는 저마다 시대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학도 못 가는 찌질이가 감히 사랑을 꿈꾸다가 처참하게 무너지는 [회오리 바람]의 고딩 태훈, 여자 친구한테 버림받은 분풀이로 악플을 퍼트리는 과정에서 페이스북 아이디어를 얻은 [소셜 네트워크]의 찌질한 천재 마크, 여자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마저도 감추려 하는 [산사나무 아래]의 순수 청년 라오산, 이들은 모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사람들의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그렇게 선량하지만도 않고 사악하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모든 개인은 이런 다중적인 면을 다 갖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다만 살아가면서 어떤 면모를 자주 사용하느냐, 타인과 접할 때 어느 면이 주로 닿느냐에 따라 당사자의 인생도, 그 인생들의 집합체인 사회도 그 나름의 문화적 특성을 가진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가 너무나 아름다와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를 사랑할수록 그가 아름다와지는 것일까요. 좋은 사람은 다른이의 고운 면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인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평가보다 동기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소셜 네트워크]와 [회오리 바람]의 비수와도 같은 해부도 필요하겠지만 우리에게 지금 어느 때보다 [산사나무 아래]와 같은 착한 거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