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씨네마

생명의 근원, 자존감 -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

체거봐라 2011. 9. 8. 13:45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그래도 난 좀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도의 자존감만 있으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는 있다고 말하면 공감이 됩니까. 팔자 좋은 소리 한다고 나무라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자존감만큼 생을 위협하는 것은 없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단편 영화 [나, 그런 사람 아니에요]는 이런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자존감에 대해 아주 탁월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위선이 자존감을 얼마나 파괴하는지, 거짓말이 영혼을 좀먹는다는 걸 너무나 설득력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극 속의 등장 인물이 너무나 혐오스럽게 보이지만 가만 가만 따져보면 내가 그 인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아주 고통스럽지만 그 협오스러운 인물이 나랑 많이 닮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만큼 나의 자존감이란 게 허약하기 그지없어 쉬 나부낄 정도란 걸 말하는 것이겠지요. 난 저 사람과 다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학교 부적응 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구성을 위해 선택한 작품입니다.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되돌아 보고 반성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추하게 보일 수 있는지 보여주자는 것이 프로그램 구성 의도입니다. 대인관계를 어려워 하는 사람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강박관념이 있어서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거나, 과대망상에 빠져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잘 모르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외모에 집착을 하는데 이는 외모지상주의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 탓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픈 사연이 있는 경우도 있다고 봅니다. 여성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다루는 우리 사회 현실을 효과적으로 드러낸 작품으로는 [그녀의 무게]를 고르고 심리적 상처로 인해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야기로는 [고마워요]를 골랐습니다. 두 작품 다 한국 단편영화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뛰어난 작품으로 꼭 보기를 권합니다. 중학생 이상이면 이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하고 극적 요소는 주의를 집중시키기에 적절합니다.

 

대학생 상후는 거짓말을 밥먹듯 하는 사람입니다. 첫 장면에서부터 그의 됨됨이가 잘 드러납니다. 늦잠을 자는 다 큰 아들을 엄마가 몇 번이나 불러 깨워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온통 벌거벗은 몸으로 침대 속에서 꾸물댑니다. 핸드폰 벨이 울리자 마지못해 전화를 받는데 "지금 가고 있다. 10분이면 도착한다" 거짓말을 합니다. 10분이면 도착한다는 사람이 한 시간이 넘어 약속 장소에 도착하고 늘어놓는 사유가 전부 거짓말입니다. 오다가 사고가 나서 골치 아팠다고 둘러대지만 오토바이 배달부를 부딪혀 넘어뜨려 놓고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뻔뻔하게 와버렸으니 순 거짓말인 게 분명합니다. 공모전에 낼 작품이라고 내 놓은 게 다른 사람의 작품을 그냥 빌려 온 것입니다. 어디서 본 듯하다고 따지자 원래 자기 작품인데 게가 속인 거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나중에 들통이 날 게 뻔한데도 이리 저리 둘러대며 거짓말을 늘어 놓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속일 수 있을까요. 들통나지 않으면 다 괜찮을까요.

 

거짓말은 개인의 도덕적 심성 문제로만 다루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허영심을 부추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개인의 부도덕으로만 탓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신제품을 생산해서 팔아야 하는 기업은 구매자들이 구모델을 버리고 새 제품을 구입하도록 부추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유행에 뒤쳐지면 견디기 힘든 소외감이 들도록 세뇌시켜야 합니다. 다시 말해 자본제적 생산 메카니즘은 필연적으로 허영심을 부추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허영(虛榮)이란 '거짓 자존감'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화(榮華)를 추구하는데 문제는 너무 조급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진실로 꽃다우려면 가지를 벗고 싹을 틔우며 꽃을 피우는 노고가 필요한데 마음이 급하다 보니 이런 고된 과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꽃부터 피우려고 합니다. 그러니 가짜 꽃을 꾸며 달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는 진정한 자존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허영, 즉 거짓 자존감을 꾸미면 점점 더 속으로 허전해지고 나중에는 자신이 몽땅 거짓 껍데기라는 걸 자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걸 인정하는 일은 곧 자신을 죽이는 일입니다. 다시 말해 자존감의 바닥이 드러나면 더 이상 생을 유지할 수 없게 됩니다. 나쁜 기업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 자존감을 파먹고 있습니다. 아니 우리 생명을 착취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