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감성지수) 높이기

아들과 아버지의 화해 - 김문수 [성흔 聖痕]

체거봐라 2011. 12. 12. 15:44

자식이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생기는 불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심리학자들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개념으로 이런 현상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한다. 글 쓰는 사람들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많은 성장소설이 아버지와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표현론적 관점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일은 쉽게 말해 작품을 작가의 트라우마(스트레스 장애) 고백이라고 보는 방법론인데 많은 작품들이 아버지와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문학은 이런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는 유력한 방법임이 분명하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기의 심리적 상처를 내면에 갖고 있는데 작가는 이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고백해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니 소설을 읽는 일은 어린 시절 아픔을 치유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자식이 성장하면서 아버지와 부딪치는 건 아주 일반적일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체적 자아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의미일 수가 있으니 이렇게 자란 사람은 영원히 성인이 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아비와의 심리적 결별은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통과 의례 같은 것이다. 다만 그 갈등의 양상을 잘 살펴 보다 효과적으로 마음을 쓰도록 궁리할 따름이다. 대개 중뿔난 애비들이 자식에게 권위를 내세우는데 이는 자식과 함께 자신의 삶도 옹졸하게 만드는 짓이니 빨리 그만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의 역할이 참 중요하지만 문학이 엄마의 역할에 비근할 정도로 유효하다고 말하고 싶다.

 

[성흔]은 제목이 어려워 부담스러울 수 있는데 막상 읽어보면 아주 흔한 이야기이다. 성흔(聖痕)은 성스러운 흔적 또는 상처라는 의미인데 그냥 쉽게 아버지의 주름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토리가 너무 흔한 것이라 좀 식상한 느낌까지 줄 수 있는데 그런 면이 오히려 우리 삶의 보편성을 잘 담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간다. 아버지의 기대를 받고 자란 자식이 보잘것없는 신세라 고향집을 찾아가는 일이 마뜩찮다. 그래도 칠순 잔치인데 안 갈 수가 없다. 쪼들리는 살림에 이리저리 변통을 하여 양복감이라도 끊어 귀향 버스에 올랐다. 이런 저런 상념과 추억으로 뒤척이다가 깜박 졸았는지 어수선하게 내려 집에 당도해 식구들 다 모인 자리에서 풀어보니 물건이 바뀌었다. 윤기 흐르는 옷감 대신 구멍이 나고 긁힌 자국 투성이인 당구대 라사(천)가 펼쳐진다. 아뿔사! 옆 자리 사내와 버스 선반 짐이 바뀌었나 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