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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배달부 퀵맨의 슬픈 사연 이동한 단편소설 <캥거루 남자>

체거봐라 2012. 12. 14. 10:24

 

오토바이 배달부 퀵맨의 슬픈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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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한 단편소설 <캥거루 남자>

 

  퀵서비스가 어떤 일인지는 다들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이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 규모가 얼마나 되고 보수는 어느 정도 되는지, 노동 조건은 어떤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냥 젊을 때 알바처럼 한때 하다가 곧 그만둘 일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이 직종에 대해서는 잘 파악이 안 되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전국에 퀵서비스 업체가 얼마나 되는지 퀵서비스 기사가 어느 정도인지 기본적인 통계조차도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못하다고 합니다. 대충 7,8천 개 정도의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고 기사는 대략 15만 정도라고 추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 잘 파악이 안 되는 이유는 이들 노동자들이 업체에 고용되어 있는 게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모두 사업주라는 데에 있습니다. 오토바이나 트럭 등 운송 수단을 기사가 직접 자비로 구입해야 하고 업체는 다만 주문이 들어오면 가사와 연결해 주는 일만 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쉽게 대리운전 업체와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그러니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모든 사고에 대해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루에 12시간 중노동을 하고 수입은 한 달에 150 정도밖에 못 벌고, 사고라도 나면 끝장입니다. 이들의 영업은 엄연히 불법이라 법의 보호는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화물연대나 용달협회처럼 조직화되어 있지 못해 입법 활동은 엄두도 못 냅니다. 그러니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유상운송 행위 단속에 걸릴까봐 노심초사해야 합니다.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돈 받고 물건 나르는 일은 엄연히 불법이니까요.

 

  자가용 차량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오토바이를 보면 신경질을 내거나 욕설을 내뱉곤 하는 게 버릇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그냥 막연히 참 불량한 놈들이라는 선입견이 아주 강하게 자리잡아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생기기란 참 어렵습니다. <캥거루남자>는 이런 몰염치한 저를 구제해준 위대한 은총이었습니다. 이 작품을 읽고 나서 비로소 그 분들이 제 마음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어쩌면 이 사회는 가난하고 힘 없는 자들에게 이리도 냉혹할 수 있는가 하고 분노하면서 여태 그 분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내온 부끄러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작품을 통해 퀵서비스 기사들이 얼마나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지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정한지 새삼 확인했습니다.

 

  주인공은 화물 자동차 기사였는데 사고로 모든 걸 날리고 퀵서비스 기사로 전락했습니다. 가정이 해체되고 보호소에 맡겨진 아이를 되찾아 오긴 했지만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해야만 하는 처지는 정말이지 암담합니다. 오토바이 짐칸 바구니에 아이를 싣고 배달을 다닙니다. 몇 푼 되지 않는 수입이니 잠은 찜질방 목욕탕에서 자야 하고 비라도 오면 아이를 데니고 다닐 수 없으니 일을 빠지게 됩니다. 업체가 일을 주지 않게 되니 또 다른 업체로 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공은 한 눈에 봐도 퀵서비스 라이더 베테랑인데 관리소에서 굽신굽신 약한 모습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기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고 다들 궁금해 합니다. 비가 와서 일을 나가지 못할 때에는 찜질방에서 아이와 지냅니다. 찜질방 구석에서 아이를 도닥이며 동화책을 읽어 주는 그를 발견한 동료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를 재우고 근처에서 소주를 마시며 들려준 그의 사연이 참으로 기구합니다. 험난한 퀵맨(퀵라이더) 일을 하면서 아이를 품고 다니는 그를 캥거루남자라고 부릅니다.

 

 

 

학생들이 이런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참 궁금합니다. 공부 못 하면 인생이 참 끔직해진다고 생각하게 될까 좀 걱정이 됩니다. 사실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은 자기 인생이 희망이 없다고 낙담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속이 다 타들어 갑니다. 90%가 루저(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마음이 급하니 우선 나부터라도 살고 보자는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만 살고보자는 경쟁이 우리 전부를 끔찍하게 만든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가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좀 걱정스러운 겁니다. 너무 불쌍한 저들을 위해 보탬이 될만한 일이 없을까? 이 사회가 좀더 살만한 사회가 되려면 저들의 권익을 보장해 주는 장치가 필요한 게 아닌가? 이 이야기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 봐라 공부 안 하면 너도 저렇게 된다.’고 말하는 건 정말이지 끔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