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복지 당리당략을 그만두라
교육복지 당리당략을 그만두라.
교육부가 내년 예산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우선 편성하라고 지방 교육청에 요구하자 교육감들은 정부 지원 없이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라는 것은 지방 교육청의 사업, 특히 무상급식 사업을 중단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의 아전인수를 성토하고 나섰다. 누리과정은 대통령의 공약이니 이것부터 먼저 지원하라는 주문은 아이들 밥그릇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는 꼴이 아닌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 예산 지원 중단을 선언함으로써 무상급식이 먼저냐 무상보육이 먼저냐 하는 논쟁으로 번져 논의의 격은 더 떨어졌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정책의 입안과 실현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상급식 복지정책은 2009년 경기교육감 보궐선거에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 다음 해 2010년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는 무상급식 공약을 내세운 야당이 승리하면서 보편 복지냐 선별 복지냐 하는 쟁점이 형성되고 이 문제는 이후 우리 사회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2011년 오세훈 서울 시장이 발의한 무상급식 찬반 주민 투표에서 투표율이 25.7%로 나와 개표도 하지 못하고 오세훈 시장이 사퇴하면서 민주 진보 진영에서 주장하는 보편 복지 정책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지지를 받는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재보선에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게 된다.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보수 진영의 선별 복지 정책 선호 기조에 어긋나는 무상보육 정책 누리과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데에는 이런 보편 복지 대세에 편승한 측면이 크다.
2014년 교육자치 선거 결과도 교육 복지 정책의 성장 발전을 추동했다. 17개 시도 중 13개 시도에서 민주 진보 후보가 당선되면서 무상급식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확대되고 있다. 전국 초중고등학교 중에서 72.7%(초등학교 94.1%, 중학교 76.3%, 고등학교 13.3%)가 무상급식을 실시하게 된 것은 교육 복지 성장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여전히 지역 주민들의 정치적 지지 동향에 따라 교육 복지 정책에 대한 선호도가 달리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교육 복지 성장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다. 일례로 무상급식 실시율이 전남은 94.5%로 전국 최고인데 비해 대구는 19.3%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격차가 작금의 정쟁을 낳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정부 여당 인사들이 하나같이 보편 복지 정책을 비난하고 나서는 형국이다. 재정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표심만 얻으려고 난데없는 ‘공짜’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리즘이라고 이구동성인데 이는 교육 복지 제도의 성장 발전 과정을 잘 알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천의 경우만 보더라도 시민단체들이 고생 고생해서 2004년에 3만 8천 650명 주민 발의로 인천시 학교급식지원조례를 만들어냈으며 그 이후로 친환경 학교 급식의 성장 발전을 위해 힘들게 일해 왔다. 그 노력들이 모여 작금의 무상급식 중학교 확대라는 결실을 이루어낸 것이다.
무상보육 정책도 이러한 교육 복지 제도 성장의 한 축으로 기여하기를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으니 재정 형편이 여의치 않으면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하건만 내 공약 남의 공약 편 가르기 하는 것은 무슨 상황인지 다들 의아해 하고 있다. 어려운 재정 형편인 건 맞는 것 같다. 지방교육청의 예산은 90% 이상이 중앙 정부로부터 받는 교부금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하는 국고 보조금으로 편성된다. 정부 지원 없이 무상보육 정책 누리과정에 예산을 우선 배정하라는 것은 무상급식을 포기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무상보육이나 무상교육이나 같은 보편 복지 패러다임에 속하는 게 아닌가. 이제 와서 서로 나뉘어 대립하는 건 무슨 속사정이 있어서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시도 교육청이 어려운 형편에서도 내 공약 남의 공약 가리지 않고 두 정책 다 무산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예산을 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 교육청은 2015년 예산에 무상급식 389억을 편성했다고 한다. 내년도 초등학교 무상급식 소요 예상액은 약 983억원, 중학교는 약 661억으로 합치면 약 1644억에 달한다. 소요 예상액의 23.7% 정도를 예산으로 편성한 것이다. 누리과정에 1130억을 편성했다고 한다. 소요 예상액 2700억의 41%까지 편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 예산은 3개월 정도면 바닥이 날 수밖에 없는 적은 액수라고 한다.
중앙 정부는 시도교육청의 어려운 재정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시도로부터 지원받는 법정전입금이 시도교육청 예산 세입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데 중앙정부가 교부금을 늘리지 않으면서 대통령 공약 누리과정 예산을 먼저 편성하라고 하는 것은 보편 복지 누리과정 공약이 득표 전략에 불과했으며 복지국가 비전에는 관심이 없고 당리당략에만 골몰하는 후안무치가 아닌가 하고 곡해할 만하다. 섣부른 오해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교육비 걱정 때문에 아이 낳기가 겁난다는 국민의 고통을 염두에 둔다면 누구 주장이 옳으냐 왈가왈부 할 게 아니라 어떻게 부족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어야 옳다.
[시민과대안연구소] 기고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