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3년 의열단 김원봉을 그린 『암살』
1933년 의열단 『암살』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중근, 윤봉길 의사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 분들처럼 조국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결사체로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과 김원봉 선생이 조직한 ‘의열단’이 있었는데 ‘한인애국단’의 ‘윤봉길’ 의사는 잘 알고 있지만 의열단 ‘약산 김원봉’은 잘 몰랐습니다. 영화 『암살』은 의열단을 만든 ‘김원봉’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뭘까요.
실존 인물 ‘김원봉’을 다룬 영화가 만들어지고 역대 7위의 관객 수를 기록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런데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진실하게 드러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습니다. 영화에서 악한으로 등장한 ‘염석진’은 실존 인물 ‘노덕술’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그가 결국 죄 값을 치러 사살되는 것으로 그리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사실을 알면 『암살』을 보면서 통쾌하지만은 않을 겁니다.
『암살』에 등장하는 ‘김구’ 선생과 ‘김원봉’ 선생은 실존 인물이 분명하지만 다른 허구의 인물들도 실존 인물을 재구성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암살단의 단장 역할을 하면서 암살 계획 정보를 일경에 넘기는 등 밀정 역할을 한 ‘염석진(이정재 분)’은 영화 감독이 언급했듯이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가 소속되어 있었던 ‘백의사’를 만든 실존 인물 ‘염동진’과 일제시대 대표적인 친일 경찰 ‘노덕술’을 합쳐 놓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염석진’이 반민특위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로 풀려나는데 이는 수많은 독립투사를 고문하여 죽게 만든 악행을 저질렀으면서도 해방 이후에 이승만의 비호로 승승장구한 ‘노덕술’의 행적과 너무 닮았습니다.
‘노덕술’이 해방 뒤 좌우 대립이 심각할 때 파업을 주도 혐의로 체포된 ‘김원봉’을 취조하면서 뺨을 때리는 등 파렴치한 행동으로 그에게 수모를 주어 그를 원한에 사무치게 했으며 그가 이 일로 사흘 밤낮을 통곡을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남북협상 일로 북에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게 바로 이렇게 남한이 매국노의 세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란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면 조선의 해방과 독립이 얼마나 많은 치부를 감추고 있는지 알게 되고 영화 『암살』이 민족정기를 되새기게 하는데 오히려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까지 하게 됩니다.
암살단이 처단하려고 했던 ‘강인국(이경영 분)’을 닮은 실존 인물은 너무나 많아 일일이 언급하기도 어렵습니다. 영화에서 ‘강인국’이 광산채굴권을 얻어 부자가 되고 전투기 10대를 헌납하는 등 친일 행위로 엄청난 이권을 챙기는 것으로 그리고 있는데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쥐락펴락해온 재벌들이 하나같이 다들 ‘강인국’을 닮았습니다. 일제시대 때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방응모’는 대표적인 일제시대 광산 재벌이었습니다. 일본군에게 비행기를 헌납한 대표적인 인물은 동아일보 소유주이자 고려대학교 설립자인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입니다.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현 KBS 이사장 ‘이인호’ 또한 친일파의 후손들입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또한 친일파 후손입니다. 그의 모(母)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고모이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그의 조카가 됩니다. 대통령이 KBS 사장으로 ‘이인호’를 무리하게 낙점하여 조선일보와 KBS가 공방을 벌였다는 얘기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친일파들이 분열하여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는 세간의 풍문은 이 나라의 친일파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통해 발표한 친일파 명단은 4476명이었습니다. 정부 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공식으로 발표한 친일 인사 명단은 그 중 1/3 수준인 1006명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작성한 친일파 후손 명단은 1177명에 달합니다. 그중 장차관 국회의원 이상 고위 공직자 명단을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친일과 망각’이라는 광복 70주년 특집 프로그램에서 공개했는데 그 면면을 보면 놀랍습니다. 대통령 윤보선, 국무총리 김상협, 서울대 총장 이현재 등 그 명망에 놀라고 장차관 이상 고위 공직자 42명, 국회의장 김형오 등 전현직 국회의원 21명, 김유휴 서울고등검찰청장 등 법조인 30명 등 그 규모에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덕술’을 그린 영화의 ‘염석진’이 반민특위 재판정에서 웃통을 벗어부치며 큰소리를 떵떵 치는 장면이 과장이 아니란 걸 위의 수치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염석진이 1949년 반민특위 법정에서 무혐의로 풀려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가 경찰 고위 간부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거리에 나설 때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는데 그 시위대가 ‘북진 통일, 반민특위 해체’를 구호로 외칩니다. 실존 인물 ‘노덕술’은 반민특위 간부를 암살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밝혀져 반민특위에 체포되지만 이승만 대통령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체되고 풀려나 경찰 고위직으로 영전하고 이후 줄곧 대공 업무를 맡아 승승장구합니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그는 육군범죄수사단 대장자리에까지 오릅니다만 뇌물을 받아 파면되고 맙니다. 1960년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경력도 갖고 있습니다.
실존 인물 ‘노덕술’이 그렇게 반민족적인 악행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에도 떵떵거리며 살았는데 영화는 그런 악질 매국놈의 종말을 좀 낭만적으로 그렸습니다. 상해 정부의 지령대로 그는 살아남은 암살 단원에게 총살당하는 것으로 그려졌는데. 우리 현실과 너무 달라 불편하기도 했지만 이렇게나마 불편한 우리 양심을 위로받아야 하는가 싶기도 하고 싱숭생숭했습니다. 국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며 국정화를 추진한다고 하고 이념 갈등으로 편 가르기만 일삼는 지금 우리 정치의 모습은 『암살』이 그리고 있는 일제시대와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염석진이 총탄을 맞으며 죽어가는 모습이 통쾌하지만은 않은 게 저만 그런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