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화수부두 사진전 'Remember 2004'

체거봐라 2016. 8. 12. 21:41


몇몇 지인들께서 '화수부두' 사진 전시회에 가신다기에 따라나섰습니다. 가끔은 혼자서도 그 부둣가에 나가보곤 했으니 그 정취를 어떻게 담아냈을까 궁금했습니다. 괭이부리, 만석부두가 이웃해 있는 이 동네에는 참 많은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 사연을 모르고는 그 정취를 공감하기가 쉽지 않을 듯합니다. 악취가 난다고 고개 돌릴 '똥바다'이거든요.


언젠가 직장 동료들에게 우리 직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천의 명물이 있는데 한번 가보지 않겠냐고 운을 띄운 적이 있는데 말은 꺼내놓고 내심 주저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정취라는 게 공감이 수월치 않을 것 같았거든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 정취라는 것도 매끈하게 상품으로 다듬은 게 무난한 세태이지 않습니까. 주저주저하는 자태가 측은했던지 한번 가보자고 따라나서는 동료들이 고맙기까지 했더랬습니다.



필자 촬영 북성포구


북성포구 똥바다 위에 얼기설기 엮어 세운 주점에 들어, 해지는 노을을 보면서 회식을 했는데 의외로 동료들이 그 퇴락한 풍치에 공감하는 듯해 푸짐하게 먹은 음식만큼 마음도 넉넉해졌습니다. 신명이 났던지 '똥바다'라는 제목으로 지은 자작시까지 낭송했더랬습니다. 창밖 난간에 날아와 앉은 갈매기들과 함께 읊조린 졸작이 남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고즈넉한 정취가 제법 그럴듯했습니다.



똥바다


세곡미(稅穀米) 산더미로 쌓이던 만석(萬石)부두

미쓰이 그룹 동양방적 공순이들 눈물 바다

양코배기 군홧발 내디딘 불바다 레드비치

난쟁이 오막살이 허물어진 낙원구 행복동

똥물을 뒤집어써도 꺼지지 않는 공장의 불빛

세창물산 깡순이들 새벽출정 나서던 뚝방길

기찻길 옆 작은학교 아이들 동네 괭이부리말

밴댕이 꼴뚜기 파시에 들썩이는 북성포구

사는 게 고달프다 응석 부리러 찾은 똥바다

쪼글쪼글 주름진 손 내미는 할망 개펄



화수부두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담은 사진전 <Remember 2004, 화수부두!>가 담아낸 정서를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서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2004년 기억을 담은 작품이란 걸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화수부두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어서일까요. 전시회 뒷자리에서 류재형 작가님과 술자리를 하면서 그 사연을 듣고 나서야 가슴 속이 짠해져 왔습니다.


겉보기에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10년 전만 해도 부둣가가 제법 흥성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남아 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사는 게 고달프기만 해 이웃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 적막한 곳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10년 전에도 그 분들의 고단한 삶에 온전히 묻어드는 건 되지 않을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난장을 트는 일마저 겉도니 한스럽기까지 하다는 말씀에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Remember 2004' 전시 작품


이 분들의 삶이 풍겨내는 정취를 담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다시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담아낸 이미지로 우린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술이 한낱 재주에 불과하지 않으려면 이 물음에 답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저 분들이 말씀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어미의 상심이랄밖에요. 고개를 주억거리게 됩니다.


선생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작품이 어버이 산소 봉분 같습니다. 무슨 영화를 보자고 저 봉분을 돋웠겠습니까. 삶은 죽음으로써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듯이 이렇게 기억되는 게 예술의 본질이지 않은가. 품 안의 자식이라지만 그 자식 온전히 자라려면 이 품마저 닫아야 하지 않나. 작가분의 말씀과 작품이 밤 늦도록 잠 못 이루는 저를 도닥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