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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원 이광수 변절의 역사 – 영화 [춘원 이광수]

체거봐라 2021. 5. 5. 20:41

영화 [춘원 이광수] 이광수 어린 시절

 

이광수는 열한 살 때 전염병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 친척 집을 전전하며 지냈는데 열두 살 때 동학 두령의 집에 얹혀살다가 그 집 딸과 눈이 맞은 적이 있다. [무정]영채는 그 여인을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동학당이 일제의 탄압으로 변절하며 만든 단체인 일진회에 들어가면서 일본 유학의 기회를 얻었다. 학비를 구하지 못해 귀국하여 떠돌다가 김성수의 도움으로 다시 일본 유학을 가게 되고 그때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무정]을 연재하게 된다. 이십대 중반 나이의 학생이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였으니 그의 천재적인 소질이 참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한국 언론을 주무르고 있던 매일신보 사장 아베와 배후 실권자 도쿠도미 소호눈에 들어 지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 가족 실사

 

일본 극우주의 언론인의 지원을 받으며 명성을 날렸던 그가 어떻게 3.1운동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 2.8 독립선언의 주동자로 선언문을 작성하게 되었을까. 그는 조혼한 아내와 헤어지고 한국 최초 여의사 허영숙과 결합하여 함께 상해로 망명하게 된다. 상해에서 독립운동에 가담하고 상해에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지원을 받으며 독립신문 발행에 혁혁한 공을 세우기도 했고 귀국 후 비밀 결사 조직 흥사단의 한국 지부인 수양동우회에서 핵심으로 활동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민족개조론>을 발표하며 친일 노선을 걷게 되었을까. 그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고 6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고 난 뒤에 완전히 변절자가 되고 만다.

 

이광수의 변신은 세계 질서의 변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최초 근대 소설 [무정]을 발표한 1917년 무렵은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인 때로 신흥 강대국이 식민지 쟁탈에 뛰어들면서 세계 질서에 큰 변화가 있었던 때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새로운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주변 국가를 식민지로 지배하기 시작했고 후진국인 한국은 1910년 일본에 병합되고 말았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계몽주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광수의 [무정]은 한국의 근대 계몽사상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1918년에 1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면서 러시아와 미국은 새로운 폐권 국가로 등장했다.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은 세계 질서 재편의 시발점이 되었고 한국의 지식인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광수가 독립운동에 뛰어든 것도 이런 세계 질서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으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국의 임시정부 대표들이 파리강화회의 조선독립청원서를 제출하며 윌슨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하고 만다. 말만 민족 자결(自決)이지 실상은 세계대전 승전국의 폐권 선언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는 급격히 확장되어 나갔고 급기야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중국 대륙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이광수가 노골적으로 친일 행보를 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