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과 함께 르네상스 탐사
문명 중심 이동과 근대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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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가 서구 중심으로 서술되어 한계가 많은 가설이긴 하지만, 문명의 중심은 지중해의 동쪽 끝 아라비아 지역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서쪽으로 이동해 간 것으로 보는 것이 쉬운 이해 방식이다. 이스탄불 해협 동쪽에서 선진문명이 태동하고 해협을 사이에 둔 두 문화권이 서로 맞서 있으면서 지중해 극동지역은 문명의 중심으로 성장하게 된다. 고대사는 서양 그리스 문명과 동양 페르시아 문명이 이스탄불 해협을 경계로 대립 경쟁한 역사로 단순화시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 문명은 동방의 지혜로부터 충격을 받아 성장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겠고 동방 세계의 선진문물을 배워 서방의 미개 지역을 정복해 들어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서구 문화는 지중해 동편에서 서쪽 끝 스페인에 도달하면서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는데 이 즈음에는 동방의 기술문명에 대적할 만큼 큰 성과를 이루며 거대 로마제국이 성립한다. 스페인은 지중해 문명권의 출구에 해당하는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데 서구 문명은 지중해를 탈피하면서 동방 세계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기술 문명을 이루어냈던 것이다.
스페인의 이슬람 축출과 지리상의 발견은 지중해를 탈피하여 대양문명을 이룩했다는 측면에서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대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하면서 서구 문명은 바야흐로 광활한 망망대해로 뻗어나가게 된 것이다. 서구문명이 동방세계보다 빠른 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요인 중 바다는 아주 핵심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동방세계가 대륙의 문화를 근간으로 한다면 서방세계는 해양의 문화를 근간으로 성장한 것이라고 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이론이라고 본다.
절대왕정기 르네상스
엘리자베스 1세 초상화 작자 미상
셰익스피어가 살었던 시대는 크게 보아 대양 문명이 태동하던 때, 즉 중세시대에서 근대시대로의 전환기였다. 중세시대에는 신(神) 중심적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었고 권력의 정점은 교황이었는데 14세기 무렵에는 각 민족국가 제왕들의 권력이 많이 강해져서 교황의 힘을 능가하게 된다. 권력의 판도가 바뀌자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데 중세 말의 문화적 변혁을 흔히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이는 문예부흥이라는 뜻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의 문화를 다시 살려내자는 문화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일원론에 맞서는 운동이 여러 지역에서 각 민족들에 의해 다양하게 일어나면서 문화적 격변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권력은 민족국가 제왕에게 집중되었다. 이 시기에는 왕권이 크게 강화되어 흔히 ‘절대왕정기’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왕권이 절대적으로 강화된 것은 중세 때 지방 제후에 불과했던 제왕이 근대 민족국가의 수장이 되고 국가 간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권력 집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하나의 나라였지만 귀족 집안들 사이의 권력 다툼으로 백년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을 겪으면서 민족 감정이 강화되어 제각각의 민족 지도자 중심으로 똘똘 뭉치게 되면서 절대권력이 형성된 것이다. 백년전쟁으로 프랑스의 힘이 약화되고 유럽은 여러 민족국가들이 독립하여 서로 경쟁하게 된다. 영국은 당대 최강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대양 제해권을 장악하고 근대 최강국으로 성장한다. 이런 위업을 이룬 제왕이 엘리자베스 여왕이고 르네상스 최고의 극작가이자 셰익스피어는 엘리자베스 여왕의 숨겨진 아들로 추정된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1세 때 영국은 스페인과의 패권 투쟁으로 수차례 해전(海戰)을 벌이게 되고 결국 승리하면서 영국 절대왕정기 최강 군주가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로마 교황청과 대립하며 영국국교회인 성공회를 설립한 헨리 8세의 딸로서 중세의 해체와 근대 초창기 절대왕권을 이룩한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녀의 삶은 르네상스 혁명의 고난과 영광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아버지 헨리 8세가 새 부인을 맞이하기 위해 카톨릭과 대립하고 그의 두 딸 메리(피의 메리)와 엘리자베스도 서로 대립하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언니인 메리 여왕은 카톨릭을 지지하며 수많은 종교 개혁가들을 죽여 '피의 메리'로 불리게 되고 엘리자베스는 성공회를 옹호하면서 로마 카톨릭과 대립하였다. 배다른 두 자매는 극단으로 맞서 싸우게 되고 결국 엘리자베스가 승리하고 영국 해양 세력들을 후원하면서 정치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꺽고 영국의 패권을 이룩하였고 그로 인해 서구 세계의 패권은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넘어가게 된다.
대양 문명이 꽃피운 근대 문화의 아이콘 셰익스피어

영화 햄릿(1948) 장면
셰익스피어가 영국 절대왕정을 이룩한 엘리자베스 1세의 사생아 프란시스 베이컨의 필명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셰익스피어가 [헴릿]과 [맥베드]로 그린 인간 내면의 어두운 그림자는 프란시스 베이컨이 겪은 황실의 암투와 권력의 무자비함이 작품에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 연구자들 중 일부는 셰익스피어는 실재하지 않는 가공의 인물이며 프란시스 베이컨이 지혜의 신 아테나를 상징하는 ‘창(Spear)'을 넣어 만든 필명(Shaker+Spear)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의 진위 여부를 떠나 프란시스 베이컨이 정립한 근대 철학사상과 그의 필명으로 그려진 셰익스피어 비극은 절대왕권의 계승자이면서 어두운 그늘에서 숨어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비극적 태생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참으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영국의 근대문학과 철학은 엘리자베스 1세, 더 거슬러 올라가 그의 아버지 헨리 8세의 복잡한 스캔들과 귀족들간의 암투로 점철된 궁중 비화에서 비롯되었다니 말이다.
[햄릿], [오델로], [맥배드], [리어왕]을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라 하는데 네 작품 모두 가족 간의 갈등과 끔찍한 혈투를 다루고 있다. [햄릿]은 아버지의 죽음이 삼촌(클로디어스)의 왕위 찬탈 음모에 의해 일어난 비극임을 알게 된 왕자 ‘햄릿‘이 복수를 하려다가 실수로 애인(오필리어)의 아버지(플로니어스)를 살해하는 등 너무나 끔찍한 일을 겪는 이야기이다. 4대 비극 중 가장 슬픈 이야기로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햄릿]은 워낙 명작이라 수없이 많은 연극 또는 영화로 개작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잘된 작품이라 평을 받고 있는 것이 로렌스 올리비에의 48년작 [햄릿]이다. 4대 비극의 나머지 작품도 모두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세익스피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그린 영화도 많이 나와 있어 당대 시대상을 간접 체험하기에 좋다. 셰익스피어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무적함대를 격파하면서 절대왕정 국왕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다룬 [골든 에이지],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헨리 8세의 복잡한 결혼 관계를 그린 [천일의 스캔들]이 주목을 많이 받은 영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