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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중 특집 추천할 만한 성장 드라마 5 - 학교 가는 길

체거봐라 2009. 1. 14. 18:50

내가 처음 마흐말바프 감독을 알게 된 건 압바스 키에로스타미 감독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작품 덕분이다. 온통 헐리우드 영화만 상영되는 극장가에서 이란 감독의 작품을 만나는 게 쉽지 않으니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감독이지만 이 두 감독은 이란 영화계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고 서구사회에 동양의 영화 예술의 자존심으로 알려진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참 괜찮은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인데 사람들이 잘 보지 않으니 좀 안타깝다. 특히 학생들이 이런 작품에는 눈길도 주지 않으니 좀 한심하단 생각까지 든다. 취향은 자유이지만 예술이 갖는 보편적 아름다움에 공감하지 못하는 취향이란 다 무엇인가. 화학 조미료에 길들어 닭장 속의 닭들 모양 한절부절 못하는 어린 친구들을 위해 진심으로 권한다. 이런 작가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된다. 처음에는 별 맛을 못 느끼겠지만 원래 깊은 맛은 슬로우 푸드 아닌가.

 

이란에는 마흐말바프, 키에로스타미 말고도 [천국의 아이들]의 마지드 마지디,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의 바흐만 고바디가 있다. 이런 정도의 심미안을 갖고 있는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는 나라 이란이 어떤 나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란이 이슬람 국가이며 비교적 원리주의적 경향을 갖고 있는 시아파가 집권하고 있으며 미국과 상당한 갈등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라는 정도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인류학적으로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선진 문명을 이룬 수메르인을 정복한 셈족이 광범위하게 아랍지역을 하나의 문명권으로 형성하고 뒤이서 철기문명을 이룩한 아리아인이 아랍지역으로 이동해 들어와 셈족과 뒤섞였는데, 이동해온 아리안족이 지배세력을 형성하여 이룩한 문명권이 이란과 인도이다. 인류학적으로는 서구인이나 유대인, 셈족과 아리안족은 친근성이 큰 족속이다. 고대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형성되기 시작한 세계종교의 성립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근현대까지 지속된 국가간 문명간 갈등을 잘 이해할 수 없다.

 

아무튼 이란을 중심으로 한 아랍권은 기독교화한 서구사회와 항상 대립 관계를 유지했으며 그 문화 또한 아주 이질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중심의 헐리우드 문화는 이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는 아주 혐오스러운 쓰레기 문화로 비칠 수 있다. 이를 다른 각도로 보면 이란의 문화를 이해하면 미국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자신을 휩싸고 있는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거울 없이 자신의 뒤통수를 보는 것만큼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이란의 문화예술은 우리에게 자각의 기회를 제공하는 생명수 같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쪼록 독자들께서는 이란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라.

 

[학교 가는 길]은 마흐말바프 감독 작품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카다하르]를 만든 그 유명한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아니고 그의 마내 딸 하나 마흐말바프 감독의 작품이다. 이란에서 마흐말바프 영화학교는 꽤 유명한 모양이다. 그의 가족 구성원은 대부분 영화를 만들어 봤는데 그들의 작품은 해외 영화제에서 하나같이 주목을 받은 것들이다. 아빠도 엄마도 큰딸 막내딸 모두 영화를 잘 만든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촬영을 하고 난 뒤에는 편집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카메라를 처분해 가면서 영화 작업을 한다니 어디서 그런 열정과 순수성이 나오는지, 수십 억, 수백 억 제작비를 당연시하는 우리 나라 영화 제작 풍도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영화의 첫머리와 끝에 유구한 문화유산인 암벽 불상이 파괴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란 혁명 과정에서 일어난 문화 파괴가 인도의 일상을 어떻게 왜곡시키고 있는지 보여주려고 하는 의도로 보인다. 가난한 집 아이가 학교를 가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겪는 이야기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 구조이지만 반복되는 좌절과 그 원인이 아주 뻔함에도 불구하고 심금을 울린다.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은 모두 답답증을 느꼈을 것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전쟁놀이밖에는 할 것이 없어 하루 종일 가짜 총을 들고 몰려 다니는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불상 파괴 장면은 아이들의 답답한 전쟁놀이와 소위 문화혁명이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우리의 일상이 이 아이들의 전쟁놀이와 다른 게 별로 없다는 자각이 뒤따라 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