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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공부하는 철학 - 이성은 인간의 본질인가? [이미테이션 게임]

체거봐라 2017. 8. 21. 22:04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2차 세계대전 때 암호 해독 기술을 개발하여 영국의 승전에 기여한 수학자 앨런 튜링의 일대기이다. 그가 개발한 정보 처리 기술은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의 기초를 놓은 컴퓨터를 탄생시킨다. 더 나아가 미래 사회를 결정지을 인공두뇌 아이디어까지 낳게 된다. 인공지능은 대량의 정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전산기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세계를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 이런 철학적 난제까지 제기되는, 인류 문명사의 대변혁 또는 인류의 종말까지 연상시키는, 실로 놀라운 화두(話頭)이다.


이미테이션 게임(Imitation Game)은 인공지능 개념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이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연구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는 인간과 다름없는 기계를 판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테스트 방식을 고안했다. 테스트에 참가한 사람이 실험실에 들어가 온라인으로 연결된 사람과 컴퓨터랑 각각 대화를 나누어 보고 둘 중 누가 사람인지 판단하게 해서 다수가 컴퓨터와의 대화를 더 자연스럽다고 응답하면 그 컴퓨터가 이성을 갖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런 튜링이 이 제안을 한 게 1950년이었는데 65년이 지난 2014년에 비로소 이미테이션 게임에 통과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그렇게 탄생한 최초의 인공지능이 ‘유진 구스트만’이다. 이 실험은 ‘이성이라는 것이 인간다움의 본질인가?’ 하는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처음으로 인공지능 개념을 제시한 앨런 튜링이라는 수학자는 암호 해독법을 개발하여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이 독일과 싸워 이기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사람이다. 당시 독일은 모르스 부호를 암호화 하는 신기술을 개발하여 전시 작전에 유효하게 활용한다. 모르스 전파는 멀리까지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쉽게 도청당하는 단점이 있어 암호화하게 되는데 그 암호화 규칙이 풀리면 군사용으로 아무 소용이 없다. 독일이 개발한 ‘에니그마’라는 암호화 기술은 아주 뛰어난 방법이라 영국군은 도저히 그 암호를 풀 수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애니그마 내부 모습


전국에서 최고의 수학자들을 모집하여 연구팀을 꾸리는데 그 연구원으로 뽑힌 앨런 튜링은 독특한 방법으로 암호 해독법을 고안해 낸다. 독일이 개발한 ‘에니그마’라는 암호체계는 1500억의 10억 배에 달하는 경우의 수가 발생하는 코드 조합법이라 어떤 수학적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는데 앨런 튜링은 계산을 기계화하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는데 이 아이디어가 곧 컴퓨터 작동 원리로 개발되어 인류의 미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다. 그가 제시한 ‘인공 지능’ 또한 인류 미래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혁신적인 개념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앨런 튜링이 개발한 암호 해독기


영화에서 앨런 튜링은 “나는 기계인가? 나는 인간인가?” 스스로에게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인간다움의 근원은 곧 사고(思考)라고 할 수 있는데 컴퓨터의 생각이 사람을 능가한다면 우리는 인간성(人間性)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말하며 인간 이성(理性)의 본원적 가치를 설파했다. 컴퓨터가 인간보다 더 생각이 깊어지면 인간의 사유를 조작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인간은 컴퓨터 인공지능의 피조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탄생한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의 이성이 인간다움의 척도라고 본 데카르트의 철학은 윌슨에 의해 창안된 사회생물학에 의해서도 많이 허물어졌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 뇌세포의 조합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인간의 마음은 다른 동물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본질이 있다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뉴런(neuron)이라는 신경세포와 이 신경세포를 이어주는 시냅스(synapes)가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패턴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에 따라 뉴런은 신경 전달 물질(호르몬)을 분비하는데 그 분비 패턴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그래서 마음도 개인마다 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본질적으로 동물의 자극 반응과 다르지 않으며 개인이 성장하면서, 세대가 바뀌면서 부단히 변화하고 있다는 기능주의적 관점은 인간 이성에 대한 보편적 이해로 자리 잡게 된다.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하면 결국 인간의 이성이란 시넵스의 신경 전달 물질 조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이 메커니즘은 컴퓨터가 정보를 처리하는 시스템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앨런 튜링은 이 시스템을 고안하여 컴퓨터를 탄생시켰다. 예를 들면, 어떤 사물의 수가 세 개임을 인지했다는 것을 기호로 나타내면 ‘3’이 되고 컴퓨터는 이진수로 이 정보를 처리하며 인간의 뇌는 도파민, 세로토닌, 엔돌핀 등의 신경 절달 물질 조합으로 정보를 처리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정보 ♣♣♣ -  기호 3  - 컴퓨터 신호 00011 – 시넵스 DSEES


언어가 의사 소통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소리(시니피앙)과 의미(시니피에)의 결합체계가 안정적이라야 한다. 인간이 특정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 양상이 반복되면 일종의 습관이 생기며 이렇게 형성된 습관의 조합이 곧 문화(文化)를 이룬다. 인간의 이성은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습관화된 자극 반응 패턴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문화 다양성은 곧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패턴이 복잡하고 풍부해진 정도를 의미한다. 인류 역사가 진보해온 원리를 단순화하면 이질적인 문화 충격으로 기존 자극 반응 패턴이 허물어지고 재구성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졌고 할 수 있다. 희랍 사회가 오리엔트 문화에 충격을 받아 이데아가 무너지고 데카르트의 근대 철학은 지리상의 발견으로 허물어진 것이다. 인공지능의 탄생은 우리에게 신대륙의 발견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인공지능은 이진수의 조합으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빛의 속도로 처리할 수 있는 무한대의 문화 수용체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세계가 확장될 것이며 인간의 이성을 조작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