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민족자결주의 사상이 널리 확산되고 러시아 혁명과 중국 모택동 대장정으로 사회주의 사상이 세계사 판도를 크게 바꾸게 되면서 조선 사회도 혁명 이념이 지식인 사회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1930년대는 제국주의가 광기를 더해가는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1937년에 일본은 중국 본토를 침략해 들어가고 독일이 1939년에 폴란드를 침공하며 2차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일본의 중국 침략이 어떠했는지 보려면 난징대학살 사건을 보면 됩니다. 일본은 난징에서 너무나 끔직한 짓을 저질렀어요. 조선의 지식인은 그 소식을 다 듣고 있었지요. 조선 독립에 대한 희망이 뿌리째 뽑혀 나갔고 많은 지식인이 일제에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는 일본 제국을 위해 충성을 바쳐 일본인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역설했지요. 내선일체(內鮮一體 일본과 조선은 하나)이니 대동아공영(동아시아의 공동 번영)이니 떠들고 다녔습니다. 영혼까지 팔아먹은 자들이 수두룩했습니다.
1930년대 격동의 조선 사회를 리얼하게 간접 체험하려면 어떤 작품을 읽어야 할까요. 사회주의 이념을 형상화한 소설도 많고 암울한 현실을 회피하는 관념적 작품이 판을 치는 분위기였으니 당대 사회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건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복잡한 시대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채만식의 소설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채만식은 흔히 동반자 작가로 분류합니다. 이념 위주의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일제에 빌붙는 처세술이 보이지도 않는 작가로 사실주의를 소설로 구현해낸 작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태평천하]는 그의 대표작으로 일제 말기 조선의 암울하고 혼란한 분위기를 아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1937년에 발표된 작품인데 그 암울한 시대에 이런 세태 풍자 소설을 발표한 그의 작가 정신이 참 놀랍습니다. 엄혹한 시대이니만큼 일제의 강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겁니다. 그도 친일 작품을 몇 남기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뻔뻔하지 않았지요. 해방 직후에 그는 반성문이라고 할 수 있는 [민족의 죄인]을 발표하고 다들 단체를 만들고 세력을 모을 때 그는 낙향해 버렸지요. 그가 친일 작가로 매도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태평천하]가 그리고 있는 윤직원이라는 인물의 행태는 풍자를 위해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 당시에는 그에 못지않은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털끝만큼의 부끄러움도 갖지 않는 참으로 뻔뻔한 종자들이 넘쳐났다고 봅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당대에는 자신이 얼마나 부끄럽고 추악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일제가 참으로 사악했다고 알게 되었지만 내가 그 시대 속에 살았다면 윤직원처럼 실속 있는(?) 현실 인식을 했을 수도 있는 겁니다. 이 작품은 70여 년 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에게도 놀라운 감동을 줍니다. 나는 윤직원처럼 열심히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보면 가슴이 울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채만식의 작품 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김동인의 문학활동과 비교해 보는 것을 권합니다. 김동인의 삶을 살펴보면 그의 예술지상주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는 아주 멋쟁이였습니다. 엄청난 대부호의 자손이었으며 일본 유학 시절 조선인 유학생의 문학 써클을 주도했고 문예지를 창간하기도 했습니다. 1910년대에 일본으로 유학하여 미술을 공부하였으니 그 귀족적 생활을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경성에서의 방탕한 생활도 유명했습니다. 최고의 호텔에 묵으며 매일 기생들과 파티를 벌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의 문학이 예술지상주의일 수밖에요. 나중에는 빈털터리가 되었고 아편쟁이고 골골 하다가 한국전쟁 때 피난을 갈 수도 없는 몸으로 혼자 앓다가 죽었습니다. 야박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인과응보이지요.
채만식은 군산의 부잣집에서 나서 자랐지만 김동인처럼 허랑방탕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미두에 미쳐 가산을 탕진하였기 때문에 그럴 돈도 없었지요. 지금도 남아있는 그의 집필실을 보면 그가 말년에 얼마나 가난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엄청난 부잣집 아들로 당시 최고 학벌이었던 서울 중앙고보와 일본 와세다대를 나와 신문 기자까지 했던 그가 이렇게 찌들게 되었으니 그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어쩌면 이런 집안의 추락과 비참한 가난이 그의 문학을 성숙하게 만든 밑거름이었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개인적 불행이 한국 문학에는 큰 복이 되었지요.
채만식의 집안 내력은 그의 작품에 많이 반영됩니다. [탁류]의 주인공 초봉이 아버지는 미두(米豆) 노름으로 재산을 다 날리고 [태평천하]의 주인공 윤직원은 고리대금으로 가난한 이들의 어려운 형편을 이용해 돈을 긁어모읍니다. 소설 속의 이런 부정적 인물은 미두로 가산을 탕진한 작가의 아버지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편으로 [태평천하]의 종학이 같은 혁명 사상을 가진 지식인은 작가 자신의 로망이 반영되었다고 봐야지요. 그가 41년 태평양전쟁 이후 벌인 친일 행각을 두고 비난이 쏟아지기도 하지만 그는 깨어있는 지식으로 시대의 비극을 어떻게든 직시하려고 노력한 작가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진보적인 문인단체에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혁명 사상에 공감한 동반자 작가로 분류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태평천하]를 일제강점기 세태 풍자 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하는 게 옳습니다.
EBS 문학산책-태평천하 ; 왼쪽부터 증손자 경식, 아들 창식, 윤직원, 큰손자 종수, 아들 태식(앉은 이)
[태평천하] 주인공 윤직원은 어릴 때 화적패들한테 아버지를 잃고 변혁운동 세력들에게 원한을 품게 됩니다. 그리고 집안 살림을 지킨답시고 일본 권력에 빌붙어 제 잇속만 채웁니다. 이런 이야기는 중국과 러시아가 사회주의 혁명으로 체제가 바뀌고 일본이 중국 대륙 전체를 점령하여 거대 제국으로 강대해지면서 그 사이에 껴 국권을 상실한 조선의 형편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윤직원의 아들 창식이 노름에 빠져 방탕하고 큰 손자 종수는 기생놀음에 재물을 탕진하며 둘째 손자 윤종학은 일본에 유학 가서 사회주의자가 되는 등 집안이 엉망이 되는데 작가는 1930년 조선의 현실을 윤직원 집안의 풍비박산 이야기로 풍자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