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마 톤즈]를 본 사람이 벌써 30만을 넘었다고 합니다. TV 방송 프로그램으로 본 사람까지 합치면 50만은 되지 않을까요.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거의 그대로 영화관에서 상영하여 30만 관객을 모은 건 좀 이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요. 신기하기만 합니다. 광고를 한 것도 아닌데 입소문으로 이만큼의 관객을 모았으니 이 작품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이미 많이 알려진 작품을 소개하는 글쓰기가 참 부질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이런 저런 의미를 부여한다는 게 좀 어줍짢기도 합니다. 아무 말이 필요 없을 듯합니다. 당장 보세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보면 더 좋을 듯합니다. 아마 한 사람도 빠짐 없이 눈물을 흘리게 될 겁니다.
저는 이 작품을 아들과 같이 봤습니다. 역시 중3인 큰아들도 눈물을 참기 힘들다고 하더군요. 부자가 같이 눈물을 훔치면서 영화를 보는 쉽지 않은 일이 벌어진 겁니다. 중학생 정도 연령의 남자 애가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훔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 나이 때가 그렇거든요. 좀 심하게 얘기하면 야수의 시절, 야만의 시절이거든요.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이런 정서적 불구 상태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해 왔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눈물이 가장 확실한 처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학 비평 전문 용어로는 '카타르시스' 정도가 될가요. 문학 예술이 인간을 이롭게 하는 여러 측면 중에 이 '카타르시스'를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울지마 톤즈]를 보면서 눈물의 위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터의 아이들은 눈물을 흘릴 줄 모른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수단이라는 나라는 오랫 동안 내전을 겪어 와서 어른 아이 할것없이 정서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진 상태이니 그 나라 사람들은 눈물이란 걸 잃어버렸을 겁니다. 한국인 이태석 신부는 그들에게 눈물을 찾아준 성직자입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온전한 사람으로 회복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이 이태석 신부의 얘기를 들으면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더불어 나도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눈물을 흘리며 저도 좀더 사람다워진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이 땅의 청소년들도 살벌한 전쟁터에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을 일상으로 겪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정해야 한다고 우린 늘 가르치고 배웁니다. 정글에서 눈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이런 정서 상태가 뭘 의미하는지 되돌아 보게 만드는 적절한 영화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내전을 다룬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너무 끔찍하여 다 보아내기가 어려운 영화입니다. 반군에 가담하게 된 소년병들에게 마약을 투여하여 작혹한 짓을 서슴지 않도록 만드는데, 특히 10대 소년병들이 비협조인 주민들의 손목을 자르거나 부녀자를 강간하는 끔찍한 짓을 자행하는 장면을은 눈뜨고 볼 수가 없습니다. 이게 먼 나라 이야기일까요.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시에라시온의 소년병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가상공간이긴 하지만 늘 총칼로 사람을 죽이는 체험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처럼 별 죄의식이 없이 잔혹한 짓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아프리카 아이들만큼 이 땅의 아이들에게도 이태석같은 성자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우리 나라가 물질적으로는 참 풍요로와졌지만 정서적으로는 오랜 내전으로 처참해질 대로 처참해진 아프리카 수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요즘 우리 나라 청소년들도 눈물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우리는 어린 아이들을 싸움에 능한 비정한 전사로 길들이고 있는 게 아닙니까. 싸워서 이기려면 눈물 따위는 잊어야 합니다. 그렇게 길들여지면 물질적 척도로만 행복을 견주게 되겠지요. 그런 탐욕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할 것이란 걸 잘 알면서도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우리도 내전을 겪은 나라이지요. 동족상잔의 기억이 아직도 이 나라의 집단 정서를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광기와 싸워오면서 나 자신도 전사의 비정한 정서로 무장되어 왔던 건 아닐까요. 이런 나의 정서적 불구가 그대로 대물림되어 우리 아이들도 전장의 전사처럼 길들여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누군가를 꺼꾸러트려 패자를 짓밟고 승전가를 부르는 쾌감은 결국 우리 모두를 눈물 없는 야수로 만들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프리카 수단 못지 않게 이 땅도 이태석 신부님같은 성자를 간절히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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