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에 맞으면 몰입하게 된다 - 은이결 단편소설 <두드ing>
부모님께서는 자녀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질문이 너무 막연해서 답하기 어려우시겠지요. 좀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해 보면, 자녀의 다중지능 유형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자녀의 직업 적성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혹시 자녀가 애니어그램 설문 검사에서 어떤 성격 유형으로 나왔는지 아십니까? 무슨 말인지 통 모르시겠다는 분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럼 가장 단순하게 질문해서 자녀가 우뇌형인지 좌뇌형인지 판단이 되십니까? 자녀의 성격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 뭐든 해보신 적이 있는 부모님은 거의 100% 자녀와 심각한 갈등을 겪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생깁니다. 알려면 관심을 갖고 자녀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잘 알게 되면 갈등은 줄어듭니다. 아는 만큼 이해하게 되고 친해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녀의 장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부모의 주관적인 관점으로 자녀를 재단하면서 잘 알고 있노라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성격 유형을 잘못 알고 자녀 공부에 적극 관여하는 건 도움이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다고 보면 됩니다. 자녀에게 바라는 게 많을수록 자녀를 잘 이해하기 힘들게 되고 자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수록 자
녀가 바라는 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게 만고불변의 법칙입니다.
저는 적성을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가 연구한 ‘몰입’으로 이해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적성에 맞는다는 것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지는 것, 즉 몰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그 자체가 좋아서 그 활동에 전적으로 빠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몰입하면 물이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적성에 맞지 않는 겁니다. 뭐든 1만 시간 동안 꾸준히 공부하면 그 분야에서 최고 수준이 된다는데 하기 싫은 공부를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 꾸준히 한다는 건 되지도 않을뿐더러 억지로 그렇게 하면 미쳐버리고 말겁니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이 곧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행복감에 빠져 있다면야 1만 시간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즐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건 절대 진리입니다. 그런데 이 몰입의 행복감을 성취와 보상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긍정심리학의 대가 ‘셀리그먼’은 "실패를 겪지 않고 계속 성공만 했다면 진정한 몰입을 경험할 수 없다. 또한 보상이나 높은 자존감, 자신감, 패기 등은 몰입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좌절을 꺼리고, 불안을 없애고, 어려운 도전을 피하는 태도는 모두 몰입을 방해한다. 불안과 좌절, 경쟁과 도전이 없는 삶은 바람직한 삶이 아니며, 몰입이라는 최고의 상태를 경험할 수 없게 막는다."고 했습니다. 실패와 좌절이 없이는 몰입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좋은 결과와 보상을 바라고 하는 공부는 몰입할 수 없게 만들며 행복감을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진정한 몰입은 실패와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 정신과 다르지 않으며 실패는 곧 자기 혁신의 기회이니 반갑게 맞아들이는 긍정적 의식이 곧 몰입할 수 있게 만들고 그것이 곧 행복의 요체라는 겁니다. 죽어라 공부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마음이 온통 딴 데 가있다고 걱정하는 부모님들의 마음, 참 안타깝지만 걱정만 할 일이 아니라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 한번 해보지 않겠습니까.
중학교 3학년 때 성적이 떨어지면서 반강제로 그만둔 드럼을 엄마가 다시 허락할 리 없었다. 나는 엄마 대답과 상관없이 이미 결정을 내렸다.
방학하는 날 그 음악학원에 찾아갔다. 뜻밖에도 강 샘이 학원을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었다. 여전히 만사 귀찮음으로 나를 맞는 강 샘이 더 이상 나무늘보로 보이지 않았다. 나무늘보 이미지는 강 샘이 자신을 숨기려고 꾸며 낸 것인지도 몰랐다. 돈을 탈탈 털어 석 달을 등록했다. 방학에도 학교와 학원에서 공부만 하는 줄 아는 엄마에겐 미안했지만 나는 종일 음악학원에서 살았다. 잊고 있던 드럼이 날 이렇게까지 끌어당길 줄은 몰랐다.
휴일에 엄마가 집을 비울 때면 집안 잡동사니를 드럼처럼 세팅해 놓고 음악 볼륨을 최대로 높이고 놀았다. 또 어느 날은 집안을 돌아다니며 장식장과 화장대 텔레비전까지 드럼으로 썼다. 그때마다 악기들이 제각기 다른 진동으로 날 감동시켰다. 그러다 둘 달 만에 엄마에게 걸렸다. 수시로 학원을 빼먹은 거에 금이 간 물건을 교묘하게 숨겨 놓은 괘씸죄까지 추가되어 2월 한 달은 학원에 붙박이가 되었다.
2학년이 시작되고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수능을 입에 달고 사는 담임의 잔소리와 살짝살짝 부는 봄바람이 나를 부추겼다. 야자를 권하는 담임에게는 학원을, 엄마에게는 야자 핑계를 대었다. 담임은 학원에 익숙한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물론 성적을 올린다는 조건에서였다.
나는 수업을 마치면 엉덩이에 발화 장치가 달려 있는 것처럼 튕겨져 나가 음악학원으로 내달렸다. 그러고는 수업 내내 황폐해진 영혼에 생명을 불어 넣듯 드럼을 쳤다. 강 샘이 나처럼 몰입하는 놈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둘렀다. 실력이나 재능은 잘 모르겠다. 이것도 강 샘이 내린 평가다.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거짓말이 들통 날까 조마조마했지만 나는 온전히 쏟아 붓는 이 시간을 포기할 수 없었다.
만날 야자, 학원으로 지칠 대로 지쳐 하릴없이 친구랑 거리를 헤매기라도 하지 않으면 짜증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무슨 운명처럼 내 영혼을 휘어잡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동네 공원에서 무슨 공연을 하는 모양인지 사람들이 모여 있고 떠들썩합니다.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어 무대 쪽을 보려는데 드러머가 혼이 나간 사람처럼 몰입해서 애드리브 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드러머는 내가 중학교 때 학원에서 나를 가르치던 강 선생이 아닙니까. 그의 연주에 관객은 신명이 났고 나는 전율을 느낍니다. 공부 한다고 꾹꾹 눌러두었던 드러머 열정이 그날 폭발하고 맙니다. 엄마한테는 야자 한다고 속이고 선생님한테는 과외 받으러 가야 한다고 야자를 재낍니다. 거짓말은 오래 못 갑니다. 들통이 나고 난리가 납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신명나는 드럼을 못 하게 되면 아무 것도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눈(snow) 결정이 자라는 모습이 자꾸 생각났습니다. 미세한 물방울이 얼어붙으면서 눈 결정의 얼음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저는 우리 뇌 속의 신경 세포 뉴런이 서로 연결되어 나가는 모습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감각 기관을 통해 새로운 자극이 뇌에 들어오면 뉴런들이 이 눈 결정 모양으로 가지를 쳐 나간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외부 자극을 받아들일 때 감동을 하고 몰입을 하면 뉴런의 연결망(신경망)이 얼음 결정처럼 아름다운 구조를 형성한다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구조화된 결정체는 잘 흩어지지 않고 다른 결정체와 잘 뭉친다고 합니다. 몰입이나 감동이 없이 구겨넣은 지식은 구조화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곧 흩어지고 맙니다. 그러니 힘겹게 공부한 게 다 소용없게 되어버리는 겁니다.
주인공은 드럼에 몰입하여 심취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릅니다. 몰입할수록 기예는 자라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시작하면 이는 곧 엔터테인먼트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창의적 사고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관객과 더불어 신명이 나려면 뭘 어찌 하면 좋을지 공부에 빠져들지 않겠습니까. 신명이 나서 에드리브 연주를 하게 되면 그게 곧 작곡이 되고 더 멋진 연주를 하고 싶어 화성학 공부에 몰입하게 됩니다. 눈 결정이 아름답게 자라듯이 마음속에서 공부가 가지를 벋어 나갑니다. 이 얼마나 행복한 공부입니까. 이렇게 행복하면 뭐든 못할 게 있겠습니까. 공부에 빠질 절호의 기회인데 그걸 그만두고 곧 흩어지고 말 콩가루 공부로 내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어야 되겠습니까.
【참고】 『EBS 다큐프라임』인간탐구 대기획 5부작 ‘아이의 사생활’ 4부 다중지능
『EBS 다큐프라임』공부 못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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