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욕으로 왜곡되는 사랑 - 박상우 단편소설 [내 마음의 옥탑방]
우리 사회 현실 얘기를 꺼내는 일은 참 마음을 무겁게 만듭니다. 이런 얘기 너무 자주 하면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자꾸 피하고 싶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문학 수업 시간에 이상의 작품 <날개>를 가르칠 때 교사인 저는 슬픈 감정을 가눌 길 없어 창밖으로 눈을 돌리고, 배우는 학생들은 “선생님 그만해요.” 하면서 침울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대 조선의 현실이 너무나 끔찍했다 하지만 몸 파는 아내가 다락방에 틀어박혀 있는 남편이 일하는 동안만이라도 잠들도록 수면제를 먹인다는 끔찍한 얘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스럽기도 하고 문학 선생인 저도 솔직히 이런 끔찍한 이야기는 너무 거북합니다. 이런 우울감 때문인지 <내 마음의 옥탑방>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하니 요즘 같으면 피하고 말았을 겁니다. 십여 년 전에 읽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이 작품을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꺼내는 건 곧 현실에 부닥치게 될 우리 아이들에게 예방주사를 놓는 심정에서입니다.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건 젊은이의 특권이요 청년은 마땅히 높은 이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즉문즉설’로 중생들을 감동시키고 있는 ‘법륜’ 스님께서 ‘기대하기 때문에 불행해진다’ 고 하신 말씀은 저에게 너무 공감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기대가 너무 크면 만족하기가 어렵고 늘 패배감과 박탈감에 시달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심해지면 열등감에 빠져 자아를 상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꿈을 이루려면 현실적 조건에 맞게 꿈을 꾸어야 합니다. 꿈을 상실하고 무기력해지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너무 먼 꿈을 좇기 때문인 게 아닐까요. 그래서 현실 감각이 필요한 겁니다. 미리 간접 체험이라도 해두면 끔찍한 현실에 맞닥뜨리더라도 심한 좌절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그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도전정신도 미리 가다듬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직접 겪고 있는 현실은 이보다 더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미모의 백화점 안내원은 여학생들에게 로망일 수 있습니다. 주인공 ‘민수’가 그 로망을 가소롭기 짝이 없는 속물근성이라고 비웃을 때 독자는 이 작품이 현실을 그려낸 것이라기보다 지식인의 비현실적 관념을 그린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참 복잡합니다. 감정 노동자가 보다 나은 삶을 꿈꾸는 것은 현실에 굴하지 않는 의지로, 아름다운 게 아닙니까. 백화점을 드나드는 고객들처럼 자기도 가끔 쇼핑을 다니면서 생활을 즐기는 게 추한 세속적 욕망으로 비웃음을 살 수도 있다는 게 공감이 됩니까.
『EBS 문학산책』 <내 마음의 옥탑방> 장면
"주희에게 난 뭐지?"
옥탑방으로 가기 전, 술을 마시던 포장마차에서 나는 그녀에게 물었었다. 꿈을 꾸듯 몽롱한 표정, 그리고 자신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는 그녀의 일방적 무관심에 지쳐 결별을 염두에 두고 건넨 질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나를 만나지 않았다는 허망한 결론. 그래서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겪었던 감정적 당혹감을 나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고 또한 그것을 정리했다. 나, 이제 더 이상 그대의 빗장 질려진 가슴 앞에서 상처 받고 싶지 않노라.
그때로부터 삼십 분 정도, 그녀와 나는 아무런 대화도 주고받지 않았다. 포장마차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동안에도 마찬가지, 결별을 목전에 둔 사람들처럼 그녀와 나는 깊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녀가 버스를 타고 떠나면 다시 포장마차로 돌아가 술을 더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등을 보이고 서 있던 그녀가 차도로 내려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택시가 정차하자 돌연 등을 돌리고 내게 다가와 거칠게 손목을 낚아챘다.
"가요!"
삼십 분쯤 지난 뒤, 그녀는 도로와 인접한 주유소 앞에서 택시를 세워달라고 했다. 택시 안에서 입 한 번 열지 않고 내내 딴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택시가 정차한 뒤에도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를 선뜻 알아차릴 수 없었다. 한강을 건넜다는 것, 강북과 강남의 경계지점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타부타 말 한 마디 없이 여전히 화가 난 듯한 기세로 곧게 뻗어나간 주유소 옆길로 접어들어 저만큼 앞서 걷기 시작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팔진 언덕길이 나타났다. 하지만 경사각이 사십도를 상회할 것 같은 그 언덕길을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내처 걸어 오르기 시작했다. 고난스런 오르막이 절정을 이루는 지점, 놀랍게도 그녀의 거처는 그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의 평지에 지어진 삼층 양옥, 그것도 옥상 위.
그녀의 난폭한 초대로 난생 처음 방문하게 된 옥탑방은 이십오 평 정도의 옥상에다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옥탑방이 십오 평 정도의 공간을 점하고 있었으니 옥상 넓이에서 옥탑방의 넓이를 제한 십여 평 정도의 면적은 고스란히 콘크리트 마당이랄 수 있었다. 하지만 가파른 언덕 위에 자리잡은 삼층 건물 옥상, 거기서 내려다보는 지상의 밤풍경은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경사진 비탈을 따라 집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달동네와 실핏줄처럼 뒤엉킨 좁은 골목길, 그리고 강 건너편으로 내다보이는 고층 건물과 즐비한 차량의 행렬……. 그것은 보면 볼수록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가련한 고난의 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뒤틀린 심사로 굽어보면 한없이 가소로운 미물의 세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가 저런 곳에다 발을 딛고 살아왔던가.
나는 그녀가 가슴에 빗장을 지른 이유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현대판 가나안, 풍요로운 물질의 바다와 같은 백화점에서 가장 화려한 제복을 입고 가장 눈에 띄는 자리에 앉아 근무하는 상징적인 존재―그녀가 이렇게 옹색한 옥탑방에다 둥지를 틀고 있으리라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으랴.
할 말을 잃은 표정으로 그녀는 벽에 등을 기대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와 마찬가지, 나도 할 말이 없어 반쯤 고개를 들고 망연한 눈빛으로 맞은편 벽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그녀와 내가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그나마 나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녀와 나는 온전하게 교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어야겠으니 잠시만 밖으로 나가 있어 달라고 그녀가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했을 때, 교감에 대한 나의 확신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고 말았다.
십 분쯤 지난 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콘크리트 마당으로 나왔다. 그리고 옥상을 둘러싼 낮은 에움벽 앞에 붙어서 담배를 피우며 지상을 내려다보는 내 옆으로 다가와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한없이 미물스러워 보이는 인간의 세계, 그리고 가련하고 가소롭기 짝이 없는 인간들의 자만심을 되새김질하고 있다고 나는 그녀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팔짱을 끼고 지상을 내려다보던 그녀, 나와는 견해가 다르다는 듯 천천히 머리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금 민수 씨가 한 말은 신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예요. 여기 서서 그런 시선으로 세상을 굽어보면…… 저 낮은 곳으로 두 번 다시는 내려가기가 싫어져요. 저 가파른 언덕길을 하루에 두 번씩 힘차게 오르내리며 내가 무엇을 꿈꾸는지 아세요? 지금 민수 씨가 말한 저 가련한 고난의 세계, 저곳이 아무리 미물스럽고 속물스럽다고 해도…… 그래도 저곳으로 내려가 편안하게 안주하고 싶다는 게 아주 오래 전부터 키워 온 내 꿈이에요. 저곳의 주민이 되고, 저곳의 주민들처럼 미물스럽고 속물스럽게 사는 거…… 그게 나에게 남겨진 마지막 꿈이라구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꿈?"
젖과 꿀이 흐르는 현대판 가나안, 물질로 구성된 꿈을 성전을 떠올리며 나는 물었다. 꿈에 주린 사람들을 성전으로 안내하는 그녀의 꿈, 어쩌면 옥탑방처럼 높은 곳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을 지향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컨대 정신적 측면을 무시하는 꿈.
(박상우 [내 마음의 옥탑방] 中)
‘주희’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자라 대도시 백화점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안내 데스크 일에 취업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일은 비행기 여승무원처럼 여학생들에게는 로망일 수 있는 직업입니다. 지금은 판자촌 꼭대기 옥탑방에 세 들어 살고 있지만 곧 이곳을 벗어나 휘황찬란한 야경의 도심으로 내려가 자리잡을 것이라 야무지게 마음먹고 있습니다. 백화점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민수’는 세속적 욕망으로 뒤범벅이 된 도시의 삶에 염증을 느껴 겉돌다가 드나드는 손님이 없을 때 혼자 망연하게 서있는 슬픈 표정의 ‘주희’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둘이 가까워지고 그녀의 옥탑방을 방문하게 되는데 ‘민수’는 비탈길을 오르는 젊은 청춘이 ‘시치프스’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천상 세계로 오르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비탈진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며 꼭대기에 도달한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 또다시 굴려 올리는 게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겁니다. 저 아래 도시인들은 인간임을 부정하며 지상에 안주하는 추물들이라고 말하는 ‘민수’는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사람이 아니라는 걸 눈치챈 ‘주희’는 ‘민수’를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20대 청춘이라는 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열정이 아직 남아있을 때”이며 “높이에 대한 욕망의 구조에 두려움을 느끼고 선뜻 들어가지 못하는 떠도는 주변인 같은 의식”을 갖고 있을 때라는 겁니다. 나의 세속적 욕망을 이루는 데 필요해서 만난 사람을 진실하게 사랑하게 될까요. 진실하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오래 오래 같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진실한 사랑만으로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는 있는 건가요. 시치프스가 바위를 굴려 올리는 것처럼 고뇌에 찬 삶을 사는 사람과 함께 행복감을 공감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참 어렵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충 넘어갈 수도 없는 문제입니다. 어찌 보면 이게 삶의 본질이거든요. ‘주희’는 자신을 안고 싶어 하는 ‘민수’에게 자신의 몸을 안을 수 있도록 허락하면서 ‘사마귀처럼 안아 달라’고 말합니다. 사마귀는 짝짓기 할 때 암컷이 수컷을 머리부터 씹어 삼킨다는 것을 아십니까. 젊은 청춘의 사랑을 사마귀의 사랑으로 그리고 있는 작가의 발상이 참 끔찍하다 싶기도 한데 동상이몽으로 버성기는 우리들의 사랑과 그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의미심장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서늘해집니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외면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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