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만적 인센티브
인천참교육연구소 소장 이한수 hansu85@hanmail.net
김포외고 입시 문제 사전 유출에 가담한 학부모 중에 대학 교수도 포함되어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대하는 사람들의 심상한 태도에 더 놀랐다. 이번에 터진 일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일이요, 드러난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안의 심각성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부정과 비리가 만연해 있다는 얘기이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이니 논평을 하는 일이 참 부질없다. 교육의 양극화가 심각한 상태이며 교육이 부의 세습수단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누차 발표되었고, 자녀의 명문대 진학을 위해 해외로, 좋은 학군으로, 정예 학원으로 몰려가는 세태가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김포외고 입시부정과 삼성의 회계부정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검의 수사가 사건의 실체를 얼마나 규명해 낼지 모르겠지만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회계 부정은 경영세습 과정에서 저질러진 일이라고 다들 짐작하고 있는 모양이다. 자식에게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해 주려는 마음을 갖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만, 도둑질을 가르치는 풍조에까지 이른 세태를 보면 이것이 망국의 전조가 아닌지 걱정을 아니 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직면한 도전적 상황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 다 부질없어 보인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투명성과 공정성을 기본으로 해야 할 텐데 이런 상태로는 그 어떤 선택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자유주의적 전망을 제시하는 이들은 성장의 활력을 유도할 인센티브가 유효하게 작동하는 시스템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특권의식과 엘리트주의는 공정한 경쟁을 유도할 수 없다. 세습된 힘에 의지하는 2세들은 긴장할 까닭이 없으며 출발선부터 뒤처지는 소외 계층은 의욕을 상실하고 시스템 전반에 대해 불신하기 마련이다. 명문대학교와 특수목적고 진학, 좋은 학군으로의 진입이 건전한 경쟁과 성실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명문대학에 합격하기 위해 살인적인 입시 경쟁에 시달리다가, 합격하고 나면 공부 안 하는 풍조가 문제라고 수없이 지적되어 왔는데, 발달과정을 무시한 선행학습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고 사교육비는 나라 살림을 좀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릴 때부터 부모의 관리를 받으면서 자라나 명문대 간판에 엄청난 재산까지 물려받은 부유층 자제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누릴 자격이 있으며 그와 경쟁관계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특권의식을 갖고 공정한 경쟁을 회피하며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불공정한 짓을 서슴지 않게 되지 않을까. 다수의 낙오자들은 좌절과 실패의 원인이, 공정하지 못한 룰 때문이라고 불만을 갖고, 가진자들에 대한 혐오감을 키우게 되지 않을까. 이를 두고 경쟁과 인센티브에 의한 활력과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건전한 경쟁은 생산성을 높이고 나라 살림을 살찌울 수 있다. 이것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인센티브의 긍정적 힘이다. 그러나, 주가 조작에 의한 폭리는 아무런 생산적 기여도 하지 못하고 남의 재산을 약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의 세습을 위해 특권적 지위를 이용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해칠 뿐이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에만 골몰하고 경쟁력 향상에는 무기력하기 그지없는 소위 명문학교도 인센티브의 긍정적인 힘을 무너뜨리는 우리 사회의 암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해외체험을 인센티브로 제시하여 성적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비용을 국민의 세금에서 끌어다대는 인천 모 고등학교의 발상은 기만적인 인센티브의 또 다른 사례가 아닌가. 2007.12
'論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열과 이기주의 조장하는 정치 (0) | 2008.05.24 |
---|---|
격정의 시대를 넘어 욕망의 시대로 (0) | 2008.05.24 |
짝퉁의 품질 (0) | 2008.05.24 |
음식물 쓰레기 너무 심각해요 (0) | 2008.05.24 |
삼불정책 논의 유감 - 是非曲學阿世與 (0) | 2008.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