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향자들의 반성문 『대안교과서』
이한수
뉴라이트 단체 [교과서포럼]이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발간하여 일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사실 필자에게는 새로 발간된 역사 교과서가 별다른 관심거리가 아니라 이 글을 쓰는 일이 좀 생뚱맞지만 저들이 전교조를 비방하니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대안(?) 교과서가 왜 필요하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수년 전에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모 출판사의『한국근현대사』가 좌파적 편향성이 심각하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검인정제를 이해하지 못한 구시대적 발상도 문제지만 한나라당 집권 시절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편찬되었으며 한나라당 의원들이 내용을 검토해 문제점을 수정한 교과서를 다시 한나라당 의원이 문제 삼은 것은 그 배경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교과서는 학교 구성원의 민주적인 심의 과정을 거쳐 채택되는데, 좌편향 교과서가 자유민주주의 법질서를 위협한다고 주장했으니 학교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교과서포럼]이 만들어졌고 『대안교과서』 집필활동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안(代案)’이라는 말은 기성(旣成)의 통념에 도전하여 새롭게 내놓는 방안이란 의미로, 기존의 것을 보호하고 지킨다는 의미의 보수(保守)와는 상반되는 개념인데, 신보수주의를 주창하는 인사들이 『대안교과서』를 낸다고 하니 아리송하단 생각부터 먼저 들었다. 저들이 문제 삼는 특정 출판사 교과서의 역사관이 언제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는지 필자에게는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일이다. 『대안교과서』의 역사관은 최근 10년을 포함해 반세기 넘게 한국 역사학을 지배해온 주류 사관에서 벗어난 점이 없어 보였다.
『대안교과서』가 <식민지근대화론>을 적극 받아들이고 있는 점은 눈에 띈다. 그러나 일제가 조선을 수탈한 점만 부각할 게 아니라 근대화에 기여한 점도 인정해야 한다는 <식민지근대화론>이 대안적 사관(史觀)이 되어야 할까. 『대안교과서』 대표 집필자 이영훈 교수의 정신대 관련 망언은 대안적 관점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이영훈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낙성대경제연구소]를 세운 안병직 교수에게는 혁명적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안병직 교수는 80년대 운동권에게 <식민지반봉건론>이라는 좌파 이론을 공급한 분으로 80년대 중반에 <식민지반봉건론>를 버리고 <중진자본주의론>으로 전향하면서 일본의 나카무라 사토루 교수의 이론을 상당 부분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나온 『대안교과서』는 안병직 교수의 대안 모색이 낳은 결과물로 이해될 수 있겠다.
『대안교과서』를 낸 [교과서포럼]은 뉴라이트 사상운동을 시작한 [자유주의연대]가 주도해 만든 [뉴라이트네트워크]에 속해 있는 단체이다. [자유주의연대]를 주도한 김영환 [시대정신] 편집위원과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뉴라이트네트워크] 고문으로 있는 안병직 후쿠이현립대학 교수는 사상 이념적으로 전향적(轉向的) 변모를 보여준 인사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김영환은 주사파의 이론적 지도자로 필명 ‘강철’로 유명했던 인물이고 신지호는 [인민노련]의 핵심이었으며 [진보정당추진위]에서 노회찬 전 의원과 함께 활동했던, 좌파 인사 이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이렇듯, 핵심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안교과서』가 추구하는 대안(代案)이 전향한 자들을 위한 대안일 수 있으며, 그들 나름대로 고뇌의 결과물임을 짐작할 만하다.
『대안교과서』가 강조하고 있는 ‘일제의 근대화 기여론’이나 ‘친북 민족주의의 척결’은 뉴라이트 사상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들이 개인 과거사를 청산하고, 좌파 지식인에서 신보수주의자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로 보인다. 안병직 교수는 <식민지반봉건론>을 벗어나기 위해 고뇌했으며 강철 김영환은 <주체사상>을 극복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했으리라 짐작된다. 『대안교과서』는 이런 고뇌에 찬 자기 부정의 결과물이 아닌가. 그들에게는 참으로 눈물겨운 반성문이 아닐 수 없겠다. 이번 총선에서 뉴라이트가 얻은 정치적 성과는 그 반성의 대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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