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교육이 권력의 시녀인가

체거봐라 2008. 5. 26. 16:31
<인천일보>

교육이 권력의 시녀인가

 


  새 정부의 ‘어륀지’ 영어교육 소신이 한바탕 해프닝을 겪은 뒤에 많이 수그러든 것 같다. 한나라당이 총선 공약에서 영어몰입교육 정책을 빼겠다고 하는 걸 보면 ‘어륀지’ 영어교육이 득표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모양이다. 연초부터 영어몰입교육, 전국일제고사 부활 등으로 학부모들 마음이 무거워지고, 어린 학생들 입에서 대통령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으니 그도 그럴 만하다. 졸속 정책이 보완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지만 교육이 정치인들의 득표 수단으로 취급되는 세태가 걱정스럽기도 하다.

  새 정부의 좌충우돌 졸속 정책도 걱정스럽지만 시도마다 앞 다투어 내놓은 소위 공교육혁신 방안은 꼴사납기 그지없다. 특목중학교 설립이니 사설학원 시간제한 폐지니, 내놓는 교육정책마다 세간의 이목을 끌었는데, 알고 보니 선거를 준비한 꼴이지 않은가. 어찌 교육을 이리도 농단할 수 있는가. 3월 6일 실시한 중학교 1학년 진단평가를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결정하여 실시한 것이라고 하는데, 협의회가 법제화 되고 안하무인의 추진력을 인정받은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회장으로 있으니 앞으로 그 행보가 주목된다.

  인천시교육청은 새 학기부터 영어공교육을 혁신하기 위한 방안으로 초등학교 0교시에 영어 수업을 실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또한 중학교 진단평가 결과를 인천지역 전체 석차 백분위까지 산출하여 학부모에게 통지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영어공교육 혁신 방안과 학력향상 방안이 의도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아침에 일찍 등교하여 20분씩 영어방송을 시청하면 사설 영어학원 수강률이 줄어들까? 전국에서 동시에 같은 시험을 치러 인천 전체 석차를 매기면 학생들이 학원을 그만두고 학교 수업에 전념하게 될까? 수긍하는 사람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안타깝게도 이번 진단평가는 가뜩이나 버거운 사교육비 부담이 더 커지게 만들었다. 전국연합진단평가 출제를 맡은 서울시교육청이 진단평가 예상문제를 여섯 차례나 배포하고, 사설학원에 진단평가 문제가 사전 유출된 의혹이 있는 등, 진단평가 실시의 본래 목적은 온데간데없고 비교육적 무한 경쟁만 난무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의 아침영어수업, 영어교과 상대평가 등 소위 영어공교육혁신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저학년, 더 나아가 유치원부터 시작하는 영어 사교육 열풍을 조장하게 될 게 뻔하다.

  진단평가는 학습부진아를 가려내기 위한 목적으로 실시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석차를 알려 주고 학부모에게는 인천 전체 석차를 알린다니 이런 해프닝도 없다. 한 문제만 틀려도 수백 등 뒤지게 된다고 불만들이니 앞으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시험 난이도를 높이려 들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사교육에 들인 비용만큼 성적 격차가 벌어지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특목고 합격 여부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알 수 있게 되니 그 파장이 어떨지 참으로 걱정스럽다. 흔히 집안에 고등학생이 하나 있으면 온 식구가 살얼음 걷듯 조마조마 한 게 입시 위주 교육의 현실인데 앞으로는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뒷바라지를 하게 생겼다. 집안 식구 모두 근 10년 동안 피 말리는 입시 지옥을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두고 어찌 경쟁력 향상 운운할 수 있겠는가. 혁신도 아니고 경쟁력 향상도 아니다.  그냥 집단히스테리일 뿐이다.

  한 나라의 교육정책을 경제학자가 주무르는 것이나 지방교육이 단체장 선거의 볼모가 되는 것이나 교육을 정치적 득실을 타산하기 위한 방편으로 취급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간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지표가 무색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경쟁을 부추기는 일제고사로 인성교육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수업을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바라는 교육개혁인가.

 

2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