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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문학 3 - 샤롯 브론테 [제인 에어]

체거봐라 2011. 8. 20. 19:36

 

[제인 에어]는 세계 명작 목록에 꼭 들어가는 작품입니다. 청소년기에 소설을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은 거의 모두 이 작품을 읽었을 것이니 이 작품이 우리나라 성장기 청소년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인 에어]가 성장기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작품으로 선정되는 것이 마땅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문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아 얼마 만큼의 연구 성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충 살펴 본 바에 의하면 대체로 이 작품이 페미니즘 문학으로 주로 검토된 듯합니다. 제인이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숙모 손에서 자라나며 온갖 역경을 견디어 내고 나중에는 당당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성장소설의 모범으로 권장되기도 하지만, 남성 중심의 봉건적 인습이 여전히 남아있던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귀족 가문의 미천한 가정교사로 고용되어 있으면서도 부와 귄위에 종속되지 않고 당당하게 사랑을 획득해 나가는 제인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주체성이라는 주제의식을 추출해 내는 게 일반적인 독법인 모양입니다. 필자가 이 작품을 다루는 건 물론 청소년 독자가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지 살펴보는 이른바 효용론적 관점에 의해서입니다. 우선 이 작품에 작가의 성장기 상처가 얼마나 표현되어 있는지, 이 작품이 발표된 당시 시대 상황이 작품에 얼마나 녹아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표현론적 관점과 반영론적 관점으로 살펴본 연구 성과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나서 이 작품의 교육적 의의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인 에어]는 작가 샤롯 브론테의 자전적 소설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장기 소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작품도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이 이야기의 바탕이 됩니다. 샤롯은 5세에 어머니를 잃고 이모의 손에서 자랍니다. 제인도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에게 맡겨지지만 외삼촌마져 금방 죽어 외숙모 리드 부인의 손에 길러집니다. 외숙모와는 사이가 안 좋아 거의 학대를 받는 수준이었는데 작가인 샤롯을 기른 이모도 샤롯 자매들에게 냉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냉대를 받으며 더부살이를 할 때 제인을 가장 괴롭힌 사촌 오빠 존 리드는 샤롯 브론테의 남동생을 모델로 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설 속의 존 리드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젊어서 죽는데 샤롯의 남동생 브란웰은 죽기 전에 알콜과 아편 중독이었다고 합니다. 제인은 결국 리드 부인의 집에서 쫓겨나다 싶이 하여 기숙학교로 보내어지는데 이 학교에서의 불행한 생활도 작가 샤롯의 실제 경험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기숙학교는 규율이 너무 엄격하여 학생들은 학대를 받는 수준이었는데 이런 학교 분위기는 작가의 기숙학교 생활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가 전염병으로 죽는데 샤롯은 기숙학교에서 누이 둘을 폐결핵으로 잃었습니다. 샤롯은 나중에 다시 벨기에의 기숙학교에 입학하는데 그기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가 사랑하게 된 기숙학교 에제 교장은 이미 결혼한 사람으로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제인에어]에서 그리고 있는 로체스트 경은 에제 교장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샤롯은 실제로 가정교사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경험이 손필드의 대저택에 가정교사로 고용되는 제인으로 그려집니다. 제인은 신분과 계층을 뛰어넘어 대저택을 소유한 귀족 로체스트와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순탄하게 행복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제인이 로체스트와 결혼식을 올리던 날 그의 감춰진 과거를 알게 되고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손필드 대저택을 뛰쳐나와 황야를 해멜 때 가난한 목사 세인트 존이 그녀를 구해줍니다. 그리고 이 가난한 목사 또한 샤롯에게 청혼한 친구 엘렌 내시의 오빠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이런 정도만로도 작품 속의 제인과 작가 샤롯이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인에어]는 작가 샤롯 브론테의 성장기 경험담이며 그가 어린 시절에 입은 정신적 상처를 취유하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은 시대와 무관하게 성립될 수가 없으니 [제인 에어]에 드리워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추출해 내는 작업도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제인 에어]는 성장 소설, 멜러물로 읽힐 수 있는데 당대의 사건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제인 에어]가 정치 풍자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됩니다. [제인 에어]를 페미니즘(여성주의) 관점으로 읽으려는 사람들은 작품 속의 등장인물 중 가장 불명확한 존재인 '버사 메이슨'에 주목합니다. 그녀는 로체스트 경이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서 맞아들인 혼혈 상속녀입니다. [제인 에어]에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로 등장하는 '버사'는 왜 미치광이가 되었으며 어떻게 다락방에 갖혀 있게 되었을까요? [제인 에어]에서는 그 사연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다만 독자는 제인이 로체스트와 사랑에 빠져 환희에 휩싸여 있을 때, 제인의 성장 과정에 늘 드리워 있던 비극적 그늘을 한층 더 어둡게 만드는 운명의 장난처럼 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버사 메이슨'은 등장인물 정도로도 취급되지 못하고 다만 제인 인생에 드리워진 비극의 장막같은 암시로만 그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버사 메이슨'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페러디작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를 통해 우리는 '버사'를 아주 흥미로운 전형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버사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자와 자메이카 원주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으로 제국의 시민이 될 수도 없고 원주민들에게도 백안시되는 디아스포라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샤롯이 이 인물을 좀더 구체적으로 그리지 않은 것은 일종의 비겁한 외면일 수 있습니다. 그녀가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녀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에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객관적 한계였을까요. 샤롯은 휘그당 토리당의 정파적 갈등과 당대 변혁운동인 차티스트 운동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계급 문제 등 여타의 모순에 대해 눈감는 여성주의의 한계에 대해 비판적 관점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페미니즘 소설로 읽혀지고 있는 독서 행태에 대해 이런 저런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정도로 이해했으면 하고 [제인 에어]에 드리워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발굴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주목했으면 합니다. 영국 역사에서 빅토리아 여왕은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64년간 재위하며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을 이루었으며 자녀들를 유럽 유수의 왕실과 혼인시켜 유럽의 할머니로 군림한 대단한 여제였습니다. 그가 복잡한 정치 정세를 어떻게 뚫어나가며 여제로 우뚝 설 수 있었는지 살펴 보는 일은 너무 힘겹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등극은 영국 국내의 복잡한 정치 상황, 유럽 제 왕가의 얽히고 설킨 혈족 관계,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정부(의붓 아버지)에 의해 길러진 야릇한 집안 내력 등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인과 관계의 대강을 파악하는 것도 버거운 일입니다. 그러니 배경 지식 없이 영화 [영 빅토리아]를 보는 것은 참 무망하다는 생각마져 듭니다. 그러니 [영 빅토리아]를 감상하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읽기를 권합니다. [영 빅토리아]와 [제인 에어]를 같이 감상하면 작가가 [제인 에어]를 쓸 당시 시대적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게 됩니다. 작가는 여왕 빅토리아의 즉위와 재위 기간 동안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했을 것이고 은연중에라도 작품 속에 반영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저는 제인과 빅토리아의 유사점을 찾아어 [제인 에어]가 작가 샤롯 브론테의 시대 상황에 대한 정치적 발언이라는 점을 규명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빅토라이가 즉위한 해가 1837년인데 샤롯이 [제인 에어]를 발표한 해가 그 10년 뒤인 1847년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개연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대중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던 빅토리아의 즉위과 그 직후 벌어졌던 여러 사건들이 작품 속의 인물이나 사건에 투영되었음이 분명합니다. 빅토리아와 제인의 공통점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제인은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외숙모의 손에 의해 자랍니다. 빅토리아는 태어난 이듬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정부(의붓 아버지) 존 콘로이에 의해 길러졌습니다. 제인과 외숙모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처럼 빅토리아와 존 콘로이 사이도 무척 좋지 않았습니다. 콘로이 경은 빅토리아의 큰아버지 윌리엄 4세가 후세가 없어 그의 사후 빅토리아가 왕위를 물려받게 될 것을 확신하고 빅토리아를 통해 자신의 정치력을 극대화할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막상 빅토리아는 즉위하자 그를 쫓아버립니다. 어머니도 멀리했지요. 제인을 맡아 기른 리드 부인은 제인이 백부로부터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제인을 이 세상에 없는 아이로 만들려고 합니다. 이런 음모와 술수를 극복하고 당당한 인격체로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둘은 많이 닮았다고 봅니다. 빅토리아는 자기의 친어머니 켄트 공작부인보다 멜버른 수상과 남편 알버트를 더 신뢰했습니다. 남편 알버트와의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멜버른 수상에 대한 신뢰는 전폭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차티스트 운동(영국 19세기 민권운동)에 대한 시각의 차이가 보일 때, 식민지 자메이카 관리 실패로 실각했을 때 이외에는 전적으로 그를 신뢰하고 그의 정치적 조언을 따랐다고 봐야 합니다. 남편 알버트와는 처음에 묘한 관계였지만 사랑으로 극복하게 됩니다. 알버트는 어머니 켄트 공작부인의 조카였으니 어머니를 멀리하게 된 그녀로서는 알버트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영화 [영 빅토리아]에서 그리고 있듯이 저격사건 이후 빅토리아는 알버트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좋아졌다고 합니다. 물론 어릴 적 후견인이었던 레오폴드 1세와도 신뢰를 회복하게 되었지요. 레오폴드 1세는 알버트의 삼촌이며 빅토리아의 어머니 켄트 공작부인의 친정오빠입니다. 알버트는 [제인 에어]의 세인트 존 목사를 연상시킵니다. 이보다 로체스트가 멜버른 수상을 연상시키는 것은 더 구체적입니다. 멜버른 수상이 식민지 자메이카를 잘못 다스려 실각 위기에 처하듯이 로체스트는 자메이카 출신의 부인 때문에 파멸하게 됩니다. 결국 제인이 파멸한 로체스트를 대등한 관계로 맞아들이듯이 빅토리아가 주체성을 획득하면서 멜버른 수상, 남편 알버트,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까지도 포용하게 될 만큼 당당해집니다. 이런 정도만으로도 샤롯이 [제인 에어]를 쓰면서 알게 모르게 영국 당대의 정치적 사건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억측일지 모르겠지만 아주 상징적으로 당대 사회 정치 문제에 대해 발언했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인 에어]에 반영된 시대 상황이나 작가의 성장통을 제대로 분석하면 [제인 에어]가 올바른 여성성을 담보해냈다고 보기가 어렵다는 비판적 시각에 대해 공감하게 됩니다. 제인이 신데렐라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지적을 받을 만한 요소가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제인이 미치광이 다락방 여자의 방화로 파멸하게 된 레오폴드를 다시 찾을 때 그녀는 이미 엄청난 재산을 상속받은 상태였습니다. 로체스트가 제인이 연모할 수밖는 없는 매력적인 남성상인가 하는 점도 문제입니다. 로체스트는 돈 많은 혼혈 상속녀와 결혼하고 아내를 다락방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리고 그 사실을 숨기면서 여러 여자와 애정 행각을 벌이고 결혼까지 하려고 듭니다. 어떤 점에서 그가 당당한 주체로 선 제인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제인은 자신이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 초라한 신세일 때에는 손필드 대저택의 레오폴드는 선망했다가 그가 몰락하여 초라한 신세가 되었을 때에는 세력가로서 포용력을 발휘하여 레오플드를 품어주게 되었으니 그 심리가 그리 아름다와 보이지 않습니다. 계층 상승의 욕구와 지배 욕구가 범벅이 된 것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레오폴드는 영광의 역사를 일구어냈지만 실상은 식민지 착취라는 더러운 욕망에 찌들어 있다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 대영제국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욕을 드러내고 만 레오폴드를 포용하는 제인은 사랑과 순정마저도 권력투쟁에 이용하는 권력의 화신 빅토리아 여제를 그대로 본뜬 게 아닙니까. 작가 샤론 브론테는 추악한 욕망에 휩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국 영국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샤롯 브론테가 이 작품으로 성공하게 된 진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영국인들은 이 작품에 그토록 열광했을까요? 불행에 빠진 가여운 아이가 아름다운 여성으로 자라난 얘기이면서 동시에 추악한 욕망 덩어리이지만 세계 지배의 위업을 이룬 조국 영국과 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여왕 빅토리아에 대한 무한한 자긍심이 영국인의 심중을 울린 게 아닐까요? 이렇게 본다면 이 작품을 세계 청소년에게 권장할 만한 성장소설을 선정하기가 주저됩니다. 더러운 권력욕과 제국의 만행을 바르게 가르치려면 [제인 에어]보다 차라리 [광막한 사르가소의 바다]를 권하는 것이 어떨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