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사랑'만큼 위대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흔해빠진 게 사랑인데 위대하다고 할 것까지야 없지 않냐고 말하고 싶지 않은가요? 저는 그런 흔해빠진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오해는 하지 마세요. 흔한 건 자연스러운 거고 그러니 흔한 게 아름다운 것인데 요즘은 이게 거꾸도 뒤집혀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특이한 게 너무 만연하여 오히려 흔하고 자연스러운 게 귀하게 되어 버렸어요. 진정 사랑하여 짝이 맺어지고 그런 뒤에 새끼를 낳아 기르게 되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데 이게 지금은 너무 귀한 게 되어 버렸어요. 거래를 하듯 요목 조목 견주어 짝짓고 새끼한테 투자를 하는 게 요즘 아주 흔한 사랑(?)이 되어 버렸잖아요.
이기심이 자연스럽지 않다고만 할 수도 없겠네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존재를 뚜렷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이런 자기애(自己愛)는 너무나 강력해 웬만해서는 극복하기 힘듭니다. 이건 자연의 섭리 같은 것입니다. 자기는 손해를 보면서 다른 이를 위하는 건 자연의 섭리에 거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인 게 맞습니다. 그런데 참 오묘한 게 모든 생명체는 아주 이기적으로 다른 생명체와 경쟁을 하는데 유독 짝을 짖고 새끼를 기를 때에는 아주 자기 희생적으로 굽니다. 그게 참 오묘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이기심과 더불어 이타심도 자연의 섭리 일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랑에 빠지면 생명체는 자기 보존의 섭리를 거역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고 간혹 죽음을 불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사랑은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리하여 개체 보존과 종족 보존의 두 수레바퀴는 자연의 섭리로 온전하게 되는 모양입니다. 사랑은 자연의 섭리에 온전히 통달하게 하는 관문과 같은 것이라 진실로 사랑하지 않은 자는 온전하게 자연의 일부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장과 진화의 섭리가 온통 생산과 소비로 대체된 현대 문명은 사랑마저도 상품으로 거래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진실한 사랑은 흔치 않게 되었고 거래된 교합은 자연의 섭리와 통하지 않아 지혜를 낳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박제되어 전설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눈썹이 지워진 여인]은 우리에게 사랑의 위대함을 다시 일깨웁니다. 흔해빠진 우리 사랑이 실상은 얄팍한 욕심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냐고 묻습니다. 사랑은 기적이요 개벽과 같다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만듭니다. 문둥이가 사는 섬 '소록도'를 아십니까. 내 사랑하는 사람이 손발이 썩어드는 문둥병에 걸려 소록도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사람을 따라 소록도로 들어가 문둥이로 살아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내 사랑을 의심합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그를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요. 나는 그의 사랑을 의심하는 것일까요, 아님 그의 문둥병을 의심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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