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 스트레스와 또래집단의 비행(非行)
박영란 장편소설 [영우한테 잘해줘]
과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며 과학고등학교 진학을 꿈꾸는 중학생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유명한 KBO(한국생물올림피아드 Korea Biology Olympiad) 수상 경력을 갖고 있고 이미 과고(과학 인재 양성이라는 본래의 취지에 맞지 않게 명문대 진학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특목고) 진학이 예정되어 있는 학생은 얼마나 좋을까요. 주말에는 학원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학업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겠지만, KBO에서 우수상을 받는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이고 미래를 확실하게 보장받는 일종의 보증수표이거든요. 힘들긴 하겠지만 누구나 나도 한번 그 정도로 공부 한번 잘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데 소설에서 그린 천재들의 이야기는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네요. 아니 어쩌면 공부 잘 하는 게 끔찍하게 보이기까지 하네요. 물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공부 잘 하려면 이런 고통쯤은 감내해야 하는 우리 현실이 참 서글프네요.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킨다 하여 2010년에 KBO가 폐지된 걸 보면 소설 얘기가 학원가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현실이 소설처럼 그러하다면 이는 참으로 기가 막힐 일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이 학업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비행(非行)에 빠지곤 한다는 게 현실이라니 이 현실에 대해 어찌 낙담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필리핀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기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나’는 과고 진학을 준비하는 입시학원 소수정예반에 들어가면서 ‘녀석’을 만납니다. ‘녀석’은 학원가에서 꽤 알려져 있는 괴짜입니다.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휴학 한 적이 있고 비행을 저질렀다가 부모의 빽으로 사건이 무마된 적도 몇 번 있는 좀 골치 아픈 학생이지만 과학올림피아드 성적은 학원가에서 단연 으뜸이라 여러 학원에서 스카우트(?) 경쟁을 할 만큼 명석한 학생이기도 합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이 마음씨도 곱다’는 상식(?)을 갖고 있는 어른들은 이런 얘기가 좀 당혹스러울 겁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 교육은 난마가 얽혀 있는 것처럼 복잡하다는 걸 웅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 뿐인가요. 중2, 중3은 그야말로 종잡을
요즘 청소년들에게 공부는 일종의 자기현시(自己顯示)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비행(非行)으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충동보다는 공부로 자기만족감을 갖는 게 훨씬 낫다고 볼 수도 있지만 남을 굴복시켜서 성취감을 갖는다는 점에서 이런 공부는 비행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공부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황폐화시킨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참다운 공부가 뭔지 고전의 가르침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용(中庸)’에서는 공부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천명(天命)은 곧 본성(本性)이고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 도를 닦는 것이 교(敎) 즉 공부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공부는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랍니다. 참다운 공부는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공부는 자기완결적 속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을 해주든 보지도 못하든 크게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다들 남과 비교하여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공부를 합니다. 그러니 학습 능률을 높이기 위해 흔히 자존감을 키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험으로 증명된 사실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세계 최고의 동기 부여 전문가로 인정받는 대니얼 핑크는 “수십 년간 심리학 실험을 통해 복잡하고 창조적인 업무에는 인센티브가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를 낸다는 게 입증됐다"고 말합니다. 실험에 의하며 인센티브(보상)을 많이 약속한 그룹일수록 성과가 낮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보상을 약속하면 공부 그 자체를 즐길 수가 없게 되고 공부가 성적을 내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려 공부 자체가 끔찍한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이 입증된 것입니다. 이런 공부는 자존감을 기르기는커녕 오히려 자아를 황폐화할 수 있습니다.
[영우한테 말해줘]에서 ‘나’와 ‘녀석’을 포함한 소수정예반 아이들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사소한 절도 행각을 벌입니다. 서점에서 책을 훔치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볼펜 따위의 사소한 물건들을 훔치는 일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설마 그럴까. 이 아이들이 뭐가 부족해서 저런 짓을 할까. 나중에 들통 나서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게 된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아이들한테는 이런 비행이 너무나 갑갑한 현실을 견뎌내기 위한 마지막 수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아이들의 주목받을 만한 학업 성적은 오히려 아이들의 자아를 점점 황폐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녀석’은 엄청난 부잣집 아이지만 가족들과 정서적 교감이 전혀 없고 아버지나 엄마는 각자 고가의 미용 관리와 크루즈 여행으로 거의 집을 비우니 ‘녀석’은 혼자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면서 지냅니다. ‘나’는 외국인 남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엄마와 둘이 사는데 엄마는 대형마트 종업원이라 걸핏하면 야근을 할 수밖에 없으니 늘 혼자 저녁을 때우곤 하는 가난한 집 아이입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공부가 자아실현의 과정이 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비정한 현실을 버텨내는 최후의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요즘 공부가 아이들의 본성을 가꾸어 발현되도록 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인성교육을 강조하고들 하는데 공염불에 지나지 않고 현실은 ‘성적이 곧 미래’라는 불가침의 공식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인간다움에서 멀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입니다. 도법자연(道法自然)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세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도(道)는 자연(自然)을 본받는다’는 뜻입니다. 본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니 도(道)라는 건 ‘그냥 놔두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냥 놔두는 게 천명(天命)이요 도(道)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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