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보다 더 진한 가족애
진광교 감독 영화 [할머니는 일학년]
가정은 불행을 낳는 화근이기도 합니다. 다른 집보다 잘 살고 다른 집 자식보다 잘나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게 우리 사는 솔직한 모습 아닙니까. 우리 사회가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사회에 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경쟁력을 갖도록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닦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리적 문제가 있는 학생이 참 많습니다. 정부가 모든 학교에 정신심리 상담 전문가를 배치하려고 하는 것도 이런 세태를 잘 말해 준다고 봅니다.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 심리적 불안으로 방황하는 경우에는 불쌍한 마음이 앞서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렇지 않고 가정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뿐더러 유복하다 싶은 가정의 자녀가 비행을 저지를 때에는 마음이 냉담해지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 세상에는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불쌍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러나 싶은 겁니다. 어찌 보면 물질적 풍요가 아이들을 몰인정하고 사납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시골에서 혼자 아들을 키워 서울 명문대학에 진학을 시키고 그 아들이 방송국 기자가 되었으니 범골댁 ‘오난희’ 할머니에게 그 아들 ‘재우’는 정말 금쪽같은 자식입니다. 그런데 그 금쪽같은 아들이 자기 만나러 시골 내려오다가 교통사고로 죽습니다. 하늘이 무너진 겁니다. 아들의 유골과 함께 아들이 데려다 키우던 여자 아이 ‘동이’를 맞은 범골댁은 도대체 ‘동이’에게 정을 붙이지 못합니다. 아들이 남의 애를 데려다 키우는 게 영 못마땅했었는데 그 아이를 이제 자기가 맡아야 한다는 게 참 답답할 노릇입니다. ‘동이’는 범골댁이 맡지 않으면 고아원으로 갈 게 뻔합니다. 동이도 그걸 아는지 한사코 범골댁한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렇게 잠시 돌보게 된 게 얼마인지, 까막눈 범골댁은 자식이 남긴 일기를 읽기 위해 느지막에 한글을 배우려 들고 마침 동이는 좋은 안내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동이와 범골댁은 같이 초등학교 1학년을 다니게까지 됩니다. 못난 남편 때문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베트남 새댁도 껴서 셋은 글공부 동무로 정이 듭니다. 범골댁은 동이가 손녀처럼 아끼게 되었습니다.
아기는 엄마의 헌신을 먹고 자라 인간답게 되듯이 가족의 이해타산 하지 않는 사랑은 참다운 인간관계를 몸에 배게 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의 자식 사랑이 많이 삐뚤어진 게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자식에게 자신의 욕망을 덮어씌워 대리만족하려는 건 아닌지 경계한다고 하지만 은연중에 구린 속이 내비치는가 봅니다. 그건 아이가 잘 압니다. 진정으로 자식을 위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욕망에 자식을 꿰맞추려 드니까 고마운 마음은커녕 반발심만 커지게 됩니다. 이렇게 자라면 진실하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익히지 못합니다. 경쟁에 잘 적응하면 모든 관계를 손익 계산하게 되고 경쟁에서 낙오되면 모든 걸 남탓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보면 가족은 사회악의 진원지일 수도 있겠다는 끔찍한 생각마저 듭니다. 범골댁의 아들 재우가 집 없는 아이를 데려다 키우는 마음은 동이한테서 한글을 배우는 범골댁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마음이 가족을 만드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더 커지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듭니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가족 간에도 살벌한 경쟁 원리가 자리잡았으니 이를 어찌 합니까. 가족의 평화, 가화(家和)가 구닥다리 관습이 아니라 이 시대 절체절명의 과제가 된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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