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韓 우리 학교
학교에서 보는 청탁금지법
한 달 전 교사들을 대상으로 청탁금지법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했는데 서울시 교육청 설문조사에서는 교사 중 92% 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고, 서울시가 일반 시민을 대상으 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90%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긍정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법이 시행되면 접대 또는 선물이 줄어들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결국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기업의 접대 부담이 크게 줄고 매출은 오히려 늘어났다는 통계 자료가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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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에서는 ‘촌지’라는 말로 청탁이 관행이다시피 했다. 옛날에는 학동의 부모가 훈장님에게 촌지(寸志)로 정성을 표하는 게 미담이었는데 지금은 뇌물이니 불법이니 욕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세상 참 삭막하게 되었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근대 이전의 신분제 사회에서는 연고(緣故)가 출세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일가(一家) 친인척 관계를 통한 청탁과 특혜가 만연한 세도 정치로 조선 사회가 망하게 되었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근대 이전 시대에도 부정 청탁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분경금지법’을 예로 들 수 있다. 조선 초중반에 실시된 ‘분경금지법’은 관직에 있는 친척을 사석에서 만나기만 해도 벌을 받을 만큼 엄청 가혹한 법이었다. ‘분경(奔競)’이라는 말은 ‘분주하게 쫓아다니며 경쟁에 몰두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인데 이 시대만큼 경쟁이 극심한 때가 또 없으니 부정청탁을 벌하는 법도 더 가혹해져야 하지 않을까. 촌지(寸志)를 두고 ‘사람 사이의 정리(情理)’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바라보는 청탁금지법
요즘 학생들은 매일 시험을 치르듯이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수행평가와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이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교사가 특정 학생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면 바로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어떤 학생이 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 이는 곧 특혜를 구걸하는 비행으로 오해를 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에게 선물을 줄 형편이 안 되는 학생은 심각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 촌지는 공정성을 헤칠 뿐만 아니라 교육적으로도 심각한 적폐이다.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청탁금지법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한 학생이 의외로 적게 나와 처음에는 좀 실망스러웠다. 응답자의 29% 정도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했고 대다수 의 학생들이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한 학생은 15% 정도였다. 이 법률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다는 것은 관련 시행령 규정에 대한 인지도에서도 드러났다. 응답한 학생의 21% 정도만 담임 선생님이나 교과 담당 선생님에게는 선물을 할 수 없다는 시행령 규정을 알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학교에 다니면서 촌지를 받아본 기억이 없다. 청탁금지법에 대한 무관심은 학교 구성원들이 부정 청탁과 관련되어 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제정된 법률에 대해 응원하는 의사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은근히 자부심도 느끼게 된다. 사과 반쪽을 나 눠 주면서 “김영란법에 안 걸려요.” 농담을 하는 학생의 모습이 참 정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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