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산수유 닮은 동백꽃

체거봐라 2017. 3. 31. 17:30

산에 언덕에 피는 꽃들이 봄을 알립니다. 진달래, 목련, 꽃 몽우리 터지고 산수유도 피었습니다. 이 한 해가 질 무렵 저 꽃송이마다 빨간 산수유 열매가 열리겠지요. 김종길의 <성탄제>가 생각납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김종길 <성탄제> 일부 -

 

저리 고운 산수유 열매에 불쌍한 아이의 붉은 볼 빛이 어릴 줄이야……. 벌써 10년이나 되었네요. 집 뒷산에 올라 산수유 꽃 핀 걸 보고 가슴이 뭉클했었나 봅니다. 내려와 적어둔 <설화(雪花)>가 남아 있네요. 돌이켜보면, 만물이 깨어나는 봄을 왜 저승처럼 맞을것이라 했을까 가슴 한켠이 아려옵니다.

 

 

뒷산 꼭대기 / 외로이 선 산수유 / 가지마다 / 눈꽃이 피었습니다.

향기마저 얼어붙는 / 애달픈 사랑 노래 / 꽃송이마다 / 반짝입니다.

바람을 거슬러 / 피워낸 꽃잎이 / 저리도 아프게 / 반짝이니

저승처럼 맞을 봄이 / 멀지 않은가 봅니다. <雪花> 전문

 

눈밭에서 꽃을 피우고 꽃송이마다 얼음꽃이 달렸으니 산수유 꽃이 온전할까 싶었던 걸까요. 영롱한 빛을 내는 얼음꽃이 봄을 맞아 녹아 없어질 것을 아쉬워한 걸까요. 나를 위해 산수유 열매를 따오신 아버지 옷자락의 서늘한 기운 때문이었을까요.

 

생강나무                                                                         산수유

 

샛노란 꽃이 새봄 맞아 처음이라면 아마 산수유가 아니고 생강나무일 겁니다. 꽃이 많이 닮았어요. ‘수유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생강은 너무 익숙하잖아요. 생강나무 이파리를 손바닥에 올려 부비면 생강 향이 납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도 풋풋한 향내가 나지 않습니까. 김유정의 동백꽃이 생강나무라는 건 아시는지요. 생강나무 열매로 짠 기름이 여인네들의 머릿기름으로 쓴 동백기름을 대신했다 하여 이 나무를 동백나무로 불렀다고 합니다. 생강나무 꽃이 피는 이른 봄이 되면 소설 <동백꽃>점순이처럼 가슴 설레지 않습니까.

 

그리고 뭣에 떠다 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 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김유정 <동백꽃> 중에서 -

 

마름 집 딸 점순이는 소작농 아들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자꾸 집적거립니다. 남자 애가 제 마음을 몰라주니 신경질이 났을 겁니다. 맛있는 감자를 줘도 싫다고 하고 닭싸움 놀이를 하자는데 화부터 내니 미워 죽겠나 봅니다. 소작농 아들은 마름집 애가 그러니 자기를 업신여긴다 싶어 어깃장을 놓을 수밖에요. 큰 싸움이 날 지경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둘은 동백꽃에 파묻혀 쓰러지며 부둥켜안게 됩니다. 찌릿찌릿 뭔가 통합니다.

 

봄이 오면 설레는 마음 생강나무를 닮았습니다. 진달래꽃 피면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소월이 생각나고 굶어죽은 아이의 한이 서린 소쩍새 울음소리 들릴 듯 서럽기도 하지만 곧 피어오를 들판 아지랑이처럼 가슴 속으로 뭉게뭉게 그리움 일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