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인천참교육] 발간에 부쳐

체거봐라 2008. 5. 24. 10:46

인천참교육연구소 창립과 더불어 발간한 창간호 권두언으로 쓴 글입니다.  이 일로 좀 바빴지요. 교육운동이 노동운동으로 정치운동으로 변모해가는 걸 보면서 참 뿌듯한 마음을 가졌더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뭔가 영 잘못 엉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제가 나이가 들면서 비겁자가 되어 가는 건지 세상 돌아가는 게 잘못 되어서 그런 건지 분간을 못 하겠어요. '교육'이란 무엇인가. 다시 처음의 물음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좋은 내용을 담을 조건은 갖추어졌다 싶은데 다들 마음은 콩밭에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숨막히는 경쟁체제에서는, 느껴서 즐거운 교육이라는 게 가당키나 한 건지 암담해지기도 합니다.  

 

 

인천참교육 발간에 부쳐

  중장기적인 연구 과제를 소화할 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벌써부터 있어왔지만 이를 현실화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실 정책 연구라는 일은 참 재미없는 일이기도 하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사람들이 모여 뭔가를 꾸미는 일이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얼마나 공감할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고뇌에 찬 시대인식을 하고 있는 듯도 하다. 여로 모로 힘겹기 그지없는 일을 이제 막 벌이는 셈이다. 

  연구할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앞길을 내다보기 위해서도 지난 노정을 되짚어야 하고, 내다보는 일은 지금 발 딛고 있는 터전의 형편과 불가분으로 얽혀 있으니 행동하는 사람의 연구라는 건 참으로 고단한 노릇이다. 창간호를 내면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곱씹을 화두를 내놓아야 하건만 전전반측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앞일이 막막하기까지 하다.

  불의와 비굴을 내려치는 불칼이 아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물가물 이정(里程)이나 가늠하게 외로운 섬 등대이면 어떠한가. [인천참교육]은 문예지가 아니지만, 개념의 추상력이 과도하여 우리가 너무 구체적 현실로부터 먼 듯한 이때에 시대비평을 빙자한 아포리즘이 지친 발등에 붓는 시원한 한줄기 물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넉살이 좋다고 세상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해야겠다. 행동하는 이의 글과 말은 쟁이들의 그것과는 달라야 한다. 노동조합의 연구 집단은 민중의 고통과 꿈을 그려내는 붓이어야 하며 불의와 불평등을 겨누는 칼이요 미래를 쪼아야 할 정이어야 하겠기에 그러하다.

  깨어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시방 사념(思念)의 늪에 빠져버린 것인가. 초상집에 와서 실컷 울다가 누가 죽었소 묻는 꼴은 아닌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다수가, 쥐었던 종주먹을 깨물고 싶으리라. 어떤 이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빈곤을 나무라고, 또 어떤 이는 민족적 경세관(經世觀)의 부실을 질타한다. 식민시대가 근대화의 씨앗이었다고 선언한 소위 전향(轉向)은 또 무엇인가.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켜고 너스레를 떨어야 할 형국인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너나없이 손사래를 치는 판국에 가슴에 멍이 드는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볼 수가 없고, 세상일이란 게 뭐 별수 있겠냐며 눈치만 늘어갈까 두렵기도 하다.

  우린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 이 골 저 골에서 흘러내린 물이 큰 강을 이루어 ‘어느 시러베아들 놈이 퍼간다고 마르지’ 않게 되었는가. 어느 듯 하구(河口)에 다다라 부챗살처럼 갈라지고 있는가. 잠시 나뉘어 곧 바다에서 다시 다 만날 수 있는가. 저마다 다채롭게 울어도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조화로운가. 그래서 기꺼운가.

  조감(鳥瞰)은 짓는 자의 필수 덕목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자연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건조(建造)하는 것이니 그러하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듯이 구형식의 혁파와 새 제도의 도입은 더 나은 삶을 가꾸기 위해 필연적으로 밟아야 할 과정이 아닌가. 출혈과 파괴의 고통을 감내하는 이유가 바로 그기에 있다.

  다 같이 한번 생각해 보자. 우린 지금 장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대를 찢고 새 부대를 마련해야 하는가. 향기로운 술을 빚기 위해 누룩을 익히는 은근한 기다림을 맛보았는가. 돌이켜 생각해 보자. 우린 지금 간이역에서 달콤한 오수(午睡)를 즐기느라 애초에 어디로 가려고 했던지 잊어버리고 있는 건 아닌가. 너무 서두르고 있는가 아니면 게을러진 건가. 

  이런 의문 저런 회오(悔悟)가 시시각각으로 갈마들어 마음 한구석이 휑하고 더없이 스산하기만 한 사람들이 많은 시절이다. 그러면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종주먹을 쥐고 을러야 할 일이 벌어진다. 마음은 머리를 못 따라가고 머리는 손발을 못 따라간다.

  너스레를 떨든 삿대질을 하든 마주하자는 마음만은 간직하고 살자고 멍석 하나를 깐다. 외람되지만, 숲이냐 나무냐 선택할 문제 아니지 않냐고, 더 많은 국가와 진전된 자치, 이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게 우리 팔자가 아니냐고, 우리가 아름다운 건 저마다 별나지만 모여 어울리는 것 때문이 아니냐고, 외람되지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