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전망은 너무 멀고 현실은 너무 가깝다

체거봐라 2008. 5. 24. 10:50

전국교육연구소네트워크 2006 세미나에 토론문으로 낸 글입니다. 우리 교육 문제의 원인을 외재적 요인에서 찾는 논리 관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은 마음으로 썼습니다.

 

 

전망은 너무 멀고 현실은 너무 가깝다



  발제자의 논지는 우리 공교육이 붕괴의 위기에 놓여 있으며 이의 근본적 원인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세계적 추세에 적응하기 위한 시장화 개방화에 있다는 정도로 요약 가능하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도 우리 사회의 위기는 외부적 요인(국제적 질서)에 기인하는 측면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 사회 변혁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것이고, 일하는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고 봅니다. 논리 전개가 너무 거칠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반세계화 국제적 연대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할 때에는 이런 세계화 흐름에 어떻게든 적응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현단계 한국사회의 화두가 아닌가 싶습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우리 사회를 이런 상황으로 되어가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변수라고 보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 사회의 이런 변모가 바람직하냐, 사회 구성원 다수가 이런 변화에 동의하는가 따져 보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작업이 계급적ㆍ이념적 지향에 따라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런 계급 계층적 대립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우리 민족이 생존 번영하는데 어떤 변수로 작용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 편승하는 방안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평등 평화 정의 등과 같은 이념적 가치가 보잘것 없는 공염불로 보일 수밖에 없으며, 반세계화 자주 자립 전망을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세계화의 반민중적 자연파괴적 속성이 혐오스럽게 보이는 게 자명합니다. 뒤집어 얘기하면 세계화론자들은 국가간 불평등과 식민지 종속 심화에 대한 마땅한 처방을 갖고 있지 못하며 반세계화론자들은 살벌한 국제 질서 속에서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는 국가 경영 비젼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 됩니다.

  아무튼 우리 논의의 출발점은 현단계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국면이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무성한 논의들이 이러한 문제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 처방과 대안은 문제 인식에 걸맞지 않게 미시적이고 파편화되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떡 줄 놈은 생각도 없는데 우리끼리 티격태격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한국 경제가 부존자원이 많지 않고 대외무역 의존도가 과도하게 큰 구조로 고도 성장을 해온 것이 지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규정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런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국민들이 '지속가능한성장'을 고민하기에는 아직 사회의식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형편이고 시스템 또한 성장주의에 바탕해서 형성된 것이라 속도를 늦추면 쓰러질 것 같은 불안한 국면이 영속화하는 갑갑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IMF 외환 위기는 이러한 현시기 상황을 대중들이 극적으로 확인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보는데 향후 얼마 동안 한국 정치는 IMF의 연장선 위에서 놀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서 지금의 정치 상황을 바라볼 때, 현 정부의 개혁의지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또 그만큼 전향적인 소위 '노무현 때리기'는 인식과 전망의 불합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됩니다. IMF를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지금도 그 악몽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노동자 민중에게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생존의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고, 미국 월가의 재채기가 한국 경제에 태풍으로 밀어닥칠 수 있다는 대중적 인식이 한국 정치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반외세 자주이든 세계화 신자유주의 반대 기치가 대중들에게 얼마 만큼의 설득력이 있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교육철학적으로는 교육은 종속변수가 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으며 정치사회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학원에 등록하는 학부모들은 교육을 생존을 위한 무기이며 영어는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기본 화기(火器)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생각이 이론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거의 정확한 정치경제학적 이해라는 겁니다. 교육에 대한 이러한 이해의 격차가 교육개혁 세력의 고립과 위축의 원인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런 오류는 진보 진영 전체가 저지르고 있는 인식과 전망의 불합치와 궤를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노동자 민중들에게 세계화에 맞서기 위한 지속가능한 성장, 자립경제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얘기인 것처럼 실업의 위기감 속에서 자녀 교육에 전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학부모에게 평등교육은 철없는 소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경제가 자생성을 갖추고 저성장을 견디어 내는 힘을 가지며 국내 시장을 건강하게 일구어내어 호혜적이고 통합적인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일이 정치적 구호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일이 가능해지려면 성숙된 사회 의식이 광범위하게 자라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국제 질서 속에서 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상을 확보하는 것 또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단계 한국사회의 조건에서 상부구조가 하부구조를 견인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당분간 사회경제적 토대가 정치 지형 형성을 규정하는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봅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모르겠다고 할 사람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발제자가 논증한 것처럼 세계질서는 한국정치를 규정하고 한국정치는 한국경제 위기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 교육의 기형성(奇形性)은 이런 위기 의식에서 비롯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국제 질서 속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하며 자주노선이 엄청난 대가를 치루어야 하는 위험한 전망일 수 있다는 인식이 좌우를 포괄하는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략과 사회 발전 전망에 대한 주의 주장은 격심한 갈등을 동반하며 분열을 거듭하고 있는 현상황은 우리를 무척 난감하게 만듭니다.

  현정부 정책 입안자들이 수요자와 공급자 이분법을 끌어들인 책임을 따지는 일도 필요하지만 교사, 학부모, 학생 모두 이러한 사회적 상황의 피해자임이 분명한데도 강한 연대의식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성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반교육적 상황이 냉혹한 세계질서에 기인한다는 인식을 갖는 일과 그러한 인식을 표명하는 일, 결과적으로 어떤 개혁 정책도 신자유주의에 포섭되고 말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이 과연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고통 받는 피해자들의 연대의식을 강화시킬 것이지, 반세계화 투쟁의 교두보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지 고민해 봐야 하겠습니다. 모든 언설이 일파만파 분열과 회의를 키우는 상황이 우려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