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승리할 수 있도록 만든 분수령이 되는 사건 테르모필레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페르시아와 싸운 전투 중 마라톤 전투, 테르모필레 전투, 살라미스 전투가 유명하다. 이 중 특히 테르모필레 전투는 수많은 전쟁드라마의 상상의 원천이 되는 사건이다. 영화 [300]은 이 사건의 극적인 면을 과정되다 싶을 정도로 환타스틱하게 그리고 있다. 대전을 맞이한 그리스 사회의 정치적 대응을 입체적으로 그리진 못 했지만 서구인들에게 서구 사회의 우월성의 역사적 시원을 신비하게 그려내어 웅변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헤로도투스의 [역사]는 스파르타가 강력한 군국주의 국가라고 서술하고 있다. 스파르타에서 태어난 아이는 지금 나이로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 훈련과정이 참으로 혹독했다고 한다. 위의 장면은 스파르타의 청소년 군사훈련 과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일곱 살날이 되면 테스트를 거쳐 강한 남자로 자랄 가능성이 없는 아이는 버려져 죽게 된다는데 고증할 수 없는 먼 옛날의 일이니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작은 도시 국가 몇이 연합하여 엄청난 대군을 몰고 온 페르시아와 맞서 싸워 이겼다고 서술하자니 상당한 과장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페르시아가 그리스 정복에 실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 천제지변이 아니었을까. 헤로도투스도 1차 원정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로 바다의 높은 파도와 거센 조류를 서술하고 있는데 해전에 약한 페르시아가 살라미스 해안에서 바다에 익숙한 그리스의 전술에 말려든 것이 페르시아를 궁지로 몰아넣은 것이라고 보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페르시아가 살라미스와 스파르타를 봉쇄하고 장기전을 펴지 않고 서둘러 전쟁을 마무리 하려고 덤빈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페르시아의 내부 사정에 대해 더 면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크세르 크세스가 장기간 본국을 비워둔 것이 아마 내정의 위기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위 지도의 원 안이 테로모필레 협곡입니다. 이 협곡에서 적의 시체를 산더미처럼 쌓아서 진격을 막아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군은 우회하느라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그리스군은 살라미스 섬으로 탈출하는 시간을 벌었지요. 아래의 사진은 영화의 장면인데 해안과 절벽 사이의 협곡에 벌어진 전투를 그리고 있습니다.
[세계사를 뒤흔든 전투 2부-테르모필레 전투] HC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두 차례에 걸쳐 그리스를 원정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아테네 파괴라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에게 그 위업이 넘겨진다. 크세르크세스는 대군을 직접 지휘하여 원정에 나서고 페르시아 군은 테르모필레 골짜기에서 그리스 군과 격돌한다. 이 전쟁을 과장된 이미지로 그려낸 영화가 바로 [300]이다.
[세계사를 뒤흔든 전투 1부- 마라톤 전투] H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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