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란 무엇인가? 하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겠습니까. '文'은 글을 뜻하니 언어로 된 것은 다 문학의 대상이 된다고 해도 되긴 합니다. 그런데 '學'이라고 하니 뭔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겠거니 생각하고 대답하기 꺼려지기도 합니다.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말에 대해 배우는 게 바로 문학입니다. 문자 그대로 살펴보면 별로 어려울 것도 없지만 사실은 동어 반복(했던 말 또 하기)에 지나지 않음을 곧 알게 됩니다. 이런 식의 풀이는 감동, 마음의 꿈틀거림을 불러일으키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문학을 뭐라고 하는 게 좋을까요?
문학을 '연애 공부'라고 하면 어떨까요. '戀愛(연애)', 이 말이 통속적으로 쓰이다 보니 너무 즉물적(그냥 신체적이라고 이해합시다)으로 들리는데 문자를 풀어보면 '연애'는 '문학'이라는 어려운 말을 아주 쉽고 정확하게 풀어놓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戀(그리워할 연)'은 '말로 마음을 맺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言(말씀 언), 絲(실 사), 心(마음 심) 세 글자가 합쳐진 글자이지요. '愛(사랑 애)'는 어떻게 만들어진 글자일까요. 爪(손톱 조), 冖(덮을 멱), 心(마음 심), 夂(뒤쳐져올 치)가 결합한 글자로 ‘마음을 열기 위해 머뭇거리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연애란 말로 마음이 통하는 것이요, 마음을 전하기 위해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로 빗대어(비유) 마음을 전한다는 의미가 되지요. ‘연애’라는 말은 문학의 본질을 정확히 담고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어떤 관계를 맺을까요? 개체 발생은 종족 발생을 되풀이한다고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은 인류가 진화를 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의미입니다. 인류가 처음 지상에 직립했을 때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유인원이 나무에서 내려와 직립하면서 손이 자유로와지고, 손을 사용하면서 뇌가 점점 발달했다고 합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는 것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밟습니다. 기어다니다가 일어나서 아장자장 걷기 시작하고 말을 배우면서 의사를 표현하게 됩니다. 이때까지의 말은 문학적 언어와는 거리가 멉니다. 문학적 언어는 본질적으로 연애를 위한 언어입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사춘기 무렵이 되면 짝짓기가 가능해집니다. 일단 몸의 변화가 먼저 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인간의 문명은 사회적 관계를 굉장히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몸의 변화만으로 짝짓기는 불가능합니다. 인간은 연애라는 짝짓기 이전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때부터 문학적 언어에 대한 욕구가 생긴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 문학은 청춘의 꽃이요 젊음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문학이 연애관계만 노래하는 건 아니고 인간이 맺는 관계가 연애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이 이성에 눈을 뜨면서 타자(나 아닌 남)를 통해 대자적 존재(관계 속의 존재)로 거듭나게 되니 연애관계는 모든 관계의 바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연애를 통해 비로소 타자를 인식하게 되고 타자와의 소통이 점점 정교해지면서 인간관계는 복잡해집니다. 복잡해진 인간관계는 다시 연애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진정한 첫 관계인 연애관계는 인간관계의 알파(처음)요 오메가(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연애를 통해 타자와의 진정한 관계에 눈뜨면 분열된 자아의 관계(철학적 관계)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진정한 연애관계에 눈뜨지 못하면 다른 관계 즉, 우주론적 관계나 사회적 관계, 영적 관계를 맺는, 사유하는 존재로 성장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학은 연애를 위한 언어이고 문학을 통해 진정한 관계를 배우며 문학에서 출발하지 않은 관계는 없다고 봐야 합니다. 인간이 위대한 문명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짝짓기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인류의 문명은 문학이라는 독특한 짝짓기 방식을 만들었습니다. 연애를 위하여 이제 문학의 세례를 기꺼이 받읍시다.
앞에서 문학을 연애술이라고 얘기한 것은 문학이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언어의 산물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요즘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문학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 느낌이 있는 문학 이야기를 펼쳐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끌어보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은 연애'라는 설명은 문학의 본질을 흐리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정서를 형상으로 표현하여 다른 이와 공감하기 위한 언어 조작이고 할 수 있는데 [정서]의 서(緖)가 '실(絲)'이란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인 걸 보면 '정서'와 '연애'는 거의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애의 '연(戀)'도 '마음의 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제 문학을 좀더 이론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앞에서는 문학의 글자 뜻을 풀어보았다면 이제는 문학을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 대조하여 문학의 특징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어 보겠습니다. 보통 어떤 대상을 명확히 드러내는 방법으로 제일 많이 쓰는 것이 비교 대조의 방법입니다.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식물과 비교 대조하는 방법보다 더 수월한 게 없겠지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문학을 무엇과 비교 대조해야 할까요. 이럴 때 흔히 상하위 개념을 살펴봅니다. 여기서 '개념'이라는 말은 참 어려운 말인데 그냥 분류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생각합시다. 문학의 상위 개념은 '예술'입니다. 예술에 속하는 것으로는 문학말고 미술, 음악, 무용이 있지요. 사진, 영화도 예술의 한 장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진이 시각적 이미지를 이용해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니 미술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영화는 이런 예술 장르가 합쳐진 것이니 기본 장르로 언급하지 않는 게 맞을 겁니다.
예술(藝術)을 파자하면 참 복잡합니다. 藝는 埶(심을 예)와 芸(시운 운)으로 일단 나눌 수 있습니다. 埶는 土와 丸(둥글 환)이 결합된 글자로 땅에다 풀을 심는다는 뜻을 갖고 있는 글자입니다. 芸은 풀(艹 = 艸 = 草)과 구름(雲) 또는 云(말할 운)이 결합한 글자로 풀이 나부끼듯 구름이 피어나듯 묘한 노래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 종합하면 藝는 ‘재주’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術(재주 술)은 行(갈 행)과 朮(차조 출)이 결합한 글자로 찹쌀처럼 착착 달라붙어 가다는 의미로 이 글자도 결국 ‘재주’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재주는 재주인데 여럿이 손발이 척척 맞으며 뭐든 잘 일구어내는 재주를 말합니다. 예술이 감동을 불러일으켜 너나없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니 글자가 담고 있는 의미가 참 기막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각의 예술 장르는 표현수단(매재)에 의해 나뉩니다. 문학은 언어로 그린 심상(心像 ; 마음 속으로 그린 그림), 음악은 청각 이미지, 미술은 시각 이미지, 무용은 몸짓 이미지를 표현 수단으로 합니다. 차이점에 대해서는 많이들 얘기를 하는데 공통점(이미지, 형상)에 대해서는 별로 말은 안 하는 게 이상합니다. 사실은 표현수단의 차이보다는 각각의 감각 이미지가 전달하려고 하는 느낌(정서)이라는 공통분모가 더 중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우리 문학 교육이 이 문제를 소홀히 하여 아이들이 교육받을수록 문학을 싫어하게 된다고 봅니다. 뭐든 감동하지 않는 건 다 소용 없는 법이거든요. 감동(感動), 느껴서 마음이 꿈틀 하고 움직인다는 의미잖아요. '感'을 보세요. '咸'과 '心'이 붙어서 만들어진 글자인데 '咸'은 '戈(창 과)'과 '口(입 구)'가 합쳐서 된 말로 원래는 '병사가 함성을 지른다'는 의미였답니다. 그러니 '感'은 마음 속에 느끼는 바가 있어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지른다는 의미이지요. 어떻습니다. 뭐든 이래야 하지 않습니까. 마음이 꿈틀거려 절로 입이 벌어지고 탄성이 나오는 그런 일이 벌어져야 비로소 문학현상이 일어나는 것 아닙니까.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문학은 예술의 하위 장르로서 예술이 갖고 있는 일반적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일반적 속성이란 마음 속에 일어나는 느낌(정서)를 이미지(형상)에 실어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술은 정서의 형상화라고 말하면 간단하고 정확합니다. 예술을 과학과 대조하면 예술의 특성이 더 분명해집니다. 예술이 주관적 정서를 형상에 실어 표현한다면 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개념으로 논증합니다. 예술이 이미지를 사용한다면 과학은 개념을 사용합니다. 개념(槪念)이라는 말은 꽤 까다로운 말이지만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말입니다. 과학적 이론도 다 언어로 전달되는 것이니 전달 수단인 말(개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형상이 예술의 전부라면 개념은 과학의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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