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다른가요? 흔히 대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이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주저하게 됩니다. 자주 쓰는 말인데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 하고 있지요. 워낙 영어를 열심히들 배우니 fact와 truth로 대비하면 의미가 좀 분명해질까요. 그래도 잘 모르겠지요. 저는 진실과 사실을 지(知)와 정(情)으로 구분하고자 합니다. 이렇게 대비하면 훨씬 쉬워질 겁니다. ‘진실성’은 ‘진정성’이라는 말로도 흔히 사용합니다. ‘진정(眞情)’은 ‘참뜻’으로 풀이됩니다. 진(眞)은 [설문해자]라는 한자 자원(字源) 해설집에서 ‘날아오르는 신선’을 의미하는 글자로 풉니다. 저는 그냥 흔히 하는 말로 ‘주님의 뜻’으로 이해할 것을 권합니다. 여기서 ‘주님’은 물론 특정 종교의 신격으로 곡해하지 말고 마음으로 모시는 그리스도(christ, 메시아)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니 진질은 마음 속으로 모시는 참된 뜻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실(事實)은 그냥 객관적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객관(客觀)이란 것도 좀 따져봐야 합니다. 좀 어려운 얘기라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루겠지만 보는 사람의 주관(主觀)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 세계라는 게 있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는지 하는 철학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힐 수 있다는 점만 알고 넘어가도록 합시다.
이제 정리해 봅시다. 지(知), 즉 앎이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엄연히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事實)을 안다는 의미입니다. 정(情), 즉 뜻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내 마음 속의 주님 목소리, 진실(眞實)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을 참 다르게 봅니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사람마다 달리 말하는 걸 자주 보지 않습니까. 그러니 내가 세상을 본다는 것은 내 마음 속의 뜻대로 세상을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뜻이 달라지면 당연히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됩니다. 인간은 세상을 경험하면서 사고방식이 바뀌어가고 세상 보는 눈도 달라지니 나와 세상은 살아가면서 거듭거듭 새로 태어난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탐구하지 않으면 옛날 시각 그대로 머물러 변해가는 세상을 두려워하거나 탓하게 되겠지요.
세상은 어떻게 변해갈까요? 좀 더 엄밀히 말해서 현실은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 것일까요? 우린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분투하기도 하고 현실의 변화를 좇아가지 못해 낙담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현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모르면 안 됩니다. 변화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는 사실을 파악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뜻도 읽어내야 하며 그 뜻이 모여 어떻게 성실(誠實)하게 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현실만 탓하고 있으면 변화의 흐름을 알 수 없고, 현실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현실을 변화시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성실(誠實)이라는 말이 나왔는데 ‘誠‘을 분석해 보면 그 뜻이 분명해집니다. 言(말씀 언)과 成(이룰 성)이 결합한 글자입니다. ’말한 대로 이룬다‘는 뜻을 갖고 있지요. 성실하다는 건 그냥 말한 대로 이루어낸다는 뜻으로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얘기가 더 복잡해진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단순 도식화하면 현실은 지(知)와 진실은 정(情)과 성실은 의(意)와 짝을 맺는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지정의(知情意)가 사람의 마음을 이루는 세 가지(枝)라고 한다면 이 마음의 가지가 각각 추구하는 것이 바로 현실(사실), 진실, 성실이라고 정리하면 대강 맞을 듯합니다. 마음의 한 축인 정(情)은 ‘뜻’으로 이해하면 되는데 이 ‘뜻’이라는 말이 애매할 수 있어 ‘주님의 말씀’이라고 했는데 동양에서는 이를 사단(事端) 칠정(七情)으로 이해합니다. 즉 마음 속으로 일어나는 느낌이 곧 뜻이라는 거지요. 그 느낌 중에는 탐욕에 지배받는 추한 것도 있고 주님의 가르침 같은 숭고한 것도 있습니다.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누는 게 적절치 않을 수도 있는데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 현실적인 욕망의 지배를 받는 느낌이고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보다 고귀한 인간적 품성에서 나오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정심, 정의감, 양보하는 마음,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은 자신의 욕망을 거역하는 이타적 심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고귀하다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어떤 느낌, 즉 뜻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을까요.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제 속의 뜻만 귀하다고 고집 부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 뜻이 아무리 고귀하여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면 그 뜻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욕심에 찌들었다고 손가락질만 한다고 뭐가 변하겠습니까. 그러니 현실을 무시한 나만의 진실은 성실할 수가 없는 겁니다. 세상이 망조가 들었다고 한탄할 때가 많은데 돌이켜 보면 현실은 언제나 진실과 함께 해 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떨어 보지만 인간은 진정성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합니다. 인간(人間)이라는 말에 間(사이 간) 자가 들어있는 게 참 오묘합니다. 남(他者)에게도 마음이란 게 있다는 걸 전재하지 않고는 마음을 나눌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나처럼 마음이 있다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우린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자명합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러니 내 뜻(느낌)만큼 다른 사람의 뜻도 소중한 겁니다.
제 아무리 세상이 욕심에 찌들어 간다고 하여도 세상이 그 욕심대로만 변해가기만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이 곧 그대 마음이고 그래야 우린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진실과 담쌓은 현실이란 있을 수 없는 겁니다. 세상이 혼탁하면 사람들이 주님의 뜻을 더 많이 품게 되고 그 뜻이 모여 성실(誠實)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세상이 변하면 사람들 마음 속 품은 뜻(眞實)도 달라지고 결국 세상(現實)은 우리가 품는 뜻대로 변해가는 겁니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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