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아름다워지려고 합니다. 누군가 마음 속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람마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마음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짝사랑하는 그 사람이 어떤 걸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알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쉽게 납득이 안 가겠지만 똑같은 걸 두고 어떤 이는 참 아름답다고 하는데 어떤 이는 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눈에 예쁘게 보이려면 그가 무엇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의 미적 감각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미적 감각이 뭘까요. 사람의 미추(美醜 ; 아름다움과 추함) 판단 기준을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너무 뻔한 걸 어렵게 얘기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미적 관점을 가만히 살펴 보십시오. 매체(TV, 인터넷)를 통해 길들여진 미감이 아닐까요. 그런 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의 마음에 들려면 TV나 인터넷에 자주 나오는 연예인처럼 되어야겠지요. 그런데 그런 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내 짝으로는 어떻습니까. 좀 노골적인 말이긴 하지만 섹시한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섹시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괜찮겠습니까. 성적(性的) 아름다움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내 짝으로 맞는 게 괜찮겠습니까.
아름다움이라는 게 그리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름다움에 대해 따져 보아야 하며 나의 미감에 대해 반성적으로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되돌이킬 수 없는 곤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아름다움(美)이 무엇인지 차근 차근 살펴보도록 합시다. 美는 羊(양 양)과 大(큰 대)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물질적 풍요를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궁핍한 사람들에게는 이게 가장 중요하겠지요. 우리 살림이 너무 어려우니까 물질적인 것을 선호하는 풍조가 생겨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물질이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는데 필요조건은 될지 모르지만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는 걸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인간은 물질만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역사가 발전할수록 아름다움을 비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는 모양입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물질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의 미감이 너무 즉물적(물질에 집착하는 경향)이면 정신적으로 깊이 있은 미감을 분별하는 안목을 갖출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런 미감을 갖고 있는 사람과 어울리게 마련이지요. 미감이 그런 사람은 나를 즉물적으로 대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나를 그렇게 대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요. 그러니 나의 미감에 대해 반성적으로 살펴 봐야 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딜타이의 미학을 공부해 봅시다. 사람들이 좀 어려워하는 이론인데 가급적 쉽게 풀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나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말로 어떤 말이 제일 듣고 싶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섹시하다'는 말을 들고 싶어하고 그런 칭찬을 들으면 기분좋아 합니다. 이 말은 '육감적(肉感的)'이라는 의미입니다. 고기 육(肉)이 들어있으니 대충 어떤 의미인지 추측이 될 겁니다. 자신의 미감에 대해 반성적 고찰을 한 사람은 이런 말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 칭찬하는 말로 어떤 말이 더 있을까요. 멋있다, 예쁘다, 곱다, 참하다 등등 듣기 좋은 말이 많습니다. 딜타이같은 미학자들은 크게 넷으로 나눠 아름다움의 특질을 구분했습니다. 우아, 숭고, 비장, 골계 넷으로 나누고 각각 어떤 아름다움을 말하는지 글자를 분해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우아(優雅)의 優(뛰어날 우)는 요즘 말로 하면 ‘스타(star)’라는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이니 기분 좋은 말인 게 분명합니다. 優는 사람(人)과 (憂 근심 우)가 결합된 글자이지만 憂를 '근심'으로 풀면 안 되고 여기서는 ‘춤추는 배우’로 봐야 합니다. 그러니 優를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스타’로 이해하면 딱 맞을 겁니다. 참고로 憂(근심 우)는 가면(頁 머리 혈)과 夂(천천히 걸을 치)가 결합한 夏(가면을 쓰고 춤춘다는 의미)에 마음(心)이 결합한 글자입니다. 춤을 추는 배우의 명연기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니 ‘근심’이라는 의미로 발전한 것입니다. 雅(맑을 아)는 음을 나타내는 (牙 어금니 아)에 새(隹 새 추)가 결합한 글자로 원래는 새의 이름이었습니다. 당연히 아주 예쁜 새이지요. 그러니 우아(優雅)라는 말은 ‘아주 멋있다’는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우아한 아름다움을 흔히 귀족적 아름다움이라고 말합니다. 조동일이라는 국문학자는 '세계와의 갈등이 없는 조화로운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기품이 있다, 엘레강스하다 등의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저는 균형과 조화의 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갈등이 없을 수 없겠지요. 갈등이 없는 곳에서는 창조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도 긴장과 갈등은 아름다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긴장과 갈등이 과도하면 피곤할 수 있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놓아 자리를 늘 흥겹게 만드는 사람이 참 아름다울 수 있는데 늘 문제삼고 시비를 걸며 따지기 좋아 하는 사람은 가까이 하길 꺼립니다. 즉 추한 느낌을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갈등이 이렇듯 양면적인 것처럼 조화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동이불화(同而不和 ; 똑같은 놈들이 모여있지만 늘 찌그락찌그락 다툰다는 의미)와 화이부동(和而不同 ; 저마다 다르지만 모여 잘 어울린다는 의미)을 말했나 봅니다. 우아함은 개성이 강하면서도 조화로운 것에서 느끼는 미감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숭고(崇高)'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그 뜻이 쉽고 분명합니다. 崇(높을 숭)은 산(山)과 꼭대기(宗 마루 종)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高(높은 고)는 잘 알고 있는 글자이지요. 그러니 '숭고'라는 말을 '아주 높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말입니다. 따라서 숭고미는 아주 높고 위대한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높고 위대한 사람일까요. 모두 두려워하는 권력자가 숭고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 것입니다. 권력자를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은 아부하는 사람말고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권력자는 추하지요. 사람들이 다들 욕심내는 걸 갖고 있는 사람은 아름답기 힘듭니다. 욕심에 반하여 값진 걸 내어놓는 사람이 아름답지요. 탐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버리는 게 어렵지요. 아무나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보통 우리가 내어놓을 때에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내어놓은 것도 아니지요. 내어 놓은 만큼 얻은 게 있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정말 내어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숨을 내어놓으면 대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내세에 천당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위로가 되긴 하겠지만 보통 사람이 쉽게 행할 수 없다는 건 분명합니다. 이렇듯 내어놓기 힘든 걸 내어 놓는 사람은 숭고합니다. 그런 사람한테서 느낄 수 있는 미감이 숭고미라고 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각박하여 대가 없이 내놓는 사람을 바보라고 비웃는 모양인데 진짜 내어놓는 사람은 그런 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보가 되면 어떻고 비웃으면 어떻습니까. 워낙 계산하지 않으니 내어놓은 행위가 의미가 있는지 우스운지 따질 일도 없습니다. 아무도 몰라 주면 어떻습니까. 그게 진짜 내어놓는 것이니 말입니다.
비장(悲壯)이라는 말을 살펴 봅시다. 悲(슬플 비)는 非(아닐 비)와 마음(心)이 결합된 글자입니다. 非는 새의 두 날개가 맞붙어 있는 모습을 본 뜬 글자인데 대립하다, 아니다, 나쁘다 등의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라는 것과는 많이 다를 때 생기는 슬픈 마음을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悲는 패배를 의미합니다. 壯(씩씩할 장)은 爿(나무조각 장)과 士(선비 사)가 결합된 글자입니다. 쉽게 도끼로 장작 패는 남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비장(悲壯)은 패배에 당당하게 맞서는 씩씩함을 뜻한다고 보면 됩니다. 그냥 단순하게 이기면 기분이 좋고 그걸 표현하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게 쉽고 편한데, 져서 비참해진 것을 보고 감동할 수도 있으며 그런 미적 체험을 비장미라고 한다니 인간의 마음이란 게 참 알 수 없구나 싶겠지요. 하지만 일상 생활에서 이런 체험을 많이 합니다. 길을 가다가 거지가 한 푼만 달라고 갑자기 손을 쑥 내밀면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마음 속에 어떤 느낌이 일어납니까. 너무 불쌍해서 거지의 더러운 손을 잡아 이끌어 따뜻한 처소로 인도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속으로 ‘더럽게 왜 이래’ 하면서 피하면서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실패한 자는 더럽고 추하며 승리한 자는 아름다운가요. 그래요. 그렇지 단순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골계’라는 말은 참 어려운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낯선 말일 겁니다. 가르치는 저에게도 이 말은 어렵습니다. 골계는 풍자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풍자’라는 말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諷刺의 諷,(풍자할 풍)은 ‘바람 같은 말’입니다. 쉽게 ‘바른말 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른말’은 주로 높은 사람에게 하는 간언(諫言)을 의미합니다. 바른말 하다가 미움을 사는 경우가 많으니 ‘諷’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諷’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刺(찌를 자)는 가시(朿; 나무에 가시가 돋은 모양)와 칼(刂=刀)이 결합한 말입니다. 刺가 찌르다는 의미인 것은 쉽게 이해될 겁니다. 그러니 종합하면 諷刺는 ‘날카롭게 찌르는 바른말’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滑稽(골계)의 滑(익살스러울 골)은 물(氵)과 뼈(骨)가 결합된 말로 물처럼 매끄럽게 흐르면서 뼈가 있는 말이라고 풀면 거의 정확합니다. 諷刺의 諷에는 바람이 들어있고 滑稽의 滑에는 물이 들어있습니다. 두 글자가 다 물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매끄럽고 수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滑稽의 稽(상고할 계)는 ‘재물’을 의미하는 禾(벼 화)와 ‘결점’을 의미하는 尤(더욱 우, 尢절름발이 왕) ‘맛보다’를 의미하는 旨(뜻 지)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합해서 ‘따져 셈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풀어 보면 滑稽는 諷刺와 같은 의미를 갖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계는 참 기발하여 웃음을 자아내지만 속으로 많이 계산한 말입니다. 諷刺도 바람 같지만 찌르는 가시를 품고 있는 말로 골계와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풍자는 유머(humour = 익살, 해학)와 다릅니다. 유머는 보통 익살, 해학으로 번역되는데 익살은 웃기는 말과 행동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고 해학은 같은 뜻을 갖고 있는 한자어입니다. 諧謔은 諧(어울릴 해)와 謔(희롱할 학)이 결합한 한자어로 ‘서로 어울려 희롱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풍자가 뼈가 있는 우스갯소리인데 비해 해학은 그냥 웃기는 말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감동을 주는 아름다움으로 인정할 만한 웃음은 어떤 것일까요. 우스갯소리 중에는 아름답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반면에 우스갯소리 중에서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습니다. 아름다움 중 ‘골계미’라는 말 속에 그 답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해학미라고 하기보다 골계미라고 하는 게 적절한 것은 바로 풍자 속에 들어있는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아름다움(美)은 긴장과 균형 조화를 본질로 하는데 풍자에는 바로 이런 속성이 내포되어 있거든요. 웃음은 본질적으로 긴장을 해소해 버리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머 해학은 이완과 나태를 본질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은 삶의 고달픔을 덜기 위한 좋은 휴식의 기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모순을 감추고 도전적 비판의식을 해체시키기 위한 훌륭한 지배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 없는 유머는 비인간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겨서 유쾌하기만 한 존재가 아닙니다. 패배한 자에 대해 연민을 느껴 눈물 흘린 수 있는 게 인간다움 감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짝짓기할 때 유리한 성적 매력을 아름답다고만 느낄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타락과 방종을 경계하고 절제를 미덕(美德)으로 여기는 게 인간성의 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린 보다 인간다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그런 노력과 도전의 과정이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고 더불어 행복해지기 위해 야수의 본성을 극복해 왔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한순간의 쾌감으로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인간만이 행복감의 영속성을 위해 쾌감을 억제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인간다움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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