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스토리텔링

파자(破字) 개념론 - 비유와 상징은 예술의 본질

체거봐라 2009. 3. 20. 13:50

과학이 객관적 사실을 개념으로 드러낸다면 예술은 주관적 정서(느낌, 감정)를 형상으로 드러냅니다. '드러내다'는 말이 의미가 모호해 확실히 구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술은 '표현한다'고 하고 과학은 '규명한다'고 합니다. 사실 표현과 규명은 으미가 그리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表現(표현)은 겉으로 드러난다는 뜻이고 糾明(규명)은 풀어 밝힌다는 뜻입니다. 둘다 드러내어 알게 하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규명하다와 증명하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證明(증명)의 '證'도 말이 들어있고 糾明(규명)의 糾에도 말을 뜻하는 '丩'가 들어있습니다. 표현의 '表'는 옷(衣)에 털이 붙은 모양으로 겉(표피)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現'은 구슬이 보인다는 의미로 '나타나다'는 뜻입니다. '糾'는 실마리를 찾아 말하다는 의미로 푸는 게 적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과학이든 예술이든 뭐가 잘 모르겠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과 과학의 차이점은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분명히 구분됩니다. 예술이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주관적 정서(느낌, 감정)이고 과학이 드러내려고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입니다. 정서가 무엇인지는 앞에서 얘기했으니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事實이란 개념을 살펴봅시다. 事는 손(彐)이 무엇(깃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제사 지내는 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글자입니다. 實은 집(宀)과 돈(毋;꿰어놓다, 貝;재물)이 합친 글자로 재산이라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다. 그래서 事實은 재물과 제사로 보면 되는데 이는 문질과 문화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적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니 事實은 事物이라고 해도 되는데 事物의 物에는 소(牛)가 들어있으니 사물(事物)도 정신 문화적 요인과 실물적 요인을 포괄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과학이 다루는 사실은 상당히 넓은 의미라도 할 수 있는데 외형을 갖고 있는 물건이나 문화적 행위를 포괄하는 것이라고 보면 어느 정도 맞을 거라고 봅니다.

 

과학이 드러내려고 하는 '사실'에 대해 좀 장황하게 말했는데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예술이 다루는 '정서'와 과학이 다루는 '사실'의 차이점입니다. 보통 예술은 '주관적 정서의 표현', 과학은 '객관적 사실의 규명'으로 대비를 시키는데 한자를 풀어서 설명하면 그 뜻의 차이가 비교적 분명해집니다. '정서'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심리현상임에 비해 '사실'은 외형을 가진 물건 또는 행위라고 보면 맞습니다. 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 '개념'을 사용하고 예술은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비유'를 사용합니다. 개념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상하위 개념들과의 위계 질서를 드러내어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정의, 분류, 분석은 모두 개념들 사이의 층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술이 주관적 정서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비유'에 대해 살펴봅시다. 비유(比喩)는 견준다는 의미의 比와 깨우친다는 의미의 喩가 결합된 말입니다. 比는 사람이 나란히 앉은 모습이니 견준다는 뜻이 되고 喩는 입(口)과 兪(점점 유)가 결합된 글자이고 兪는 배(舟)가 물결을 가르고 나아가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 전한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喩는 말로 깨우쳐 알게 하다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비유는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는 두 사물을 견주어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원관념인 '정서'이고, 이 정서(느낌)을 빗대는 사물이 바로 보조관념이 되는 것입니다. 정서는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눈으로 볼 수 있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사물(이미지, 형상)에 빗대어(견주어) 간접적으로 드러내어 보여 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문학 이론에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유사한 속성을 갖고 있는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보고 문학 창작은 결국 두 사물의 유사점을 발견하여 빗댐으로써 묘한 '정서'를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구체화(具體化)는 앞에서 배운 抽像化(추상화)의 반대말로 具(갖출 구)는  두 손(卄)으로 재물(貝)을 받들고 있는 모양으로 눈에 보이는 물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체화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형체를 갖게 한다는 의미로 풀면 됩니다. 따라서 '정서'를 구체화한다는 것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마음 속 느낌을 어떤 사물에다 빗대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