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자의 사랑
열매 맺지 않아서
늘 꽃답다
했지만
열매를 맺고
초라하게 시들어 버리는
낙화(落花)가
인생이란 걸
난 이미 알아버렸거든.
자연의 욕망을
다스리는 게
인간답다고 배워
인문주의자가 되었다가
인간만이 이성으로 모든 걸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믿었다가
이젠 자연의 노도(怒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소아(小兒)가 되어
단풍잎 같은 작은 손 모아
인본(人本)의 오만을
참회(懺悔)한다.
열매 맺지 않아
늘 꽃답다는 건
얼마나 자연(自然)하지 못 하냐
열매를 맺으려
모든 정념을 바치고
초라하게 낙화하는 것이
합자연(合自然)이거늘
나는 오늘도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숫컷들의 찬란한 투쟁을
한낱 맹목(盲目)이라
할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