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시

인문주의자의 사랑

체거봐라 2009. 4. 2. 08:47

인문주의자의 사랑

 

 

열매 맺지 않아서

늘 꽃답다

했지만

열매를 맺고

초라하게 시들어 버리는

낙화(落花)가

인생이란 걸

난 이미 알아버렸거든.

 

자연의 욕망을

다스리는 게

인간답다고 배워

인문주의자가 되었다가

인간만이 이성으로 모든 걸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믿었다가

 

이젠 자연의 노도(怒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소아(小兒)가 되어

단풍잎 같은 작은 손 모아

인본(人本)의 오만을

참회(懺悔)한다.

 

열매 맺지 않아

늘 꽃답다는 건

얼마나 자연(自然)하지 못 하냐

열매를 맺으려

모든 정념을 바치고

초라하게 낙화하는 것이

합자연(合自然)이거늘

 

나는 오늘도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숫컷들의 찬란한 투쟁을

한낱 맹목(盲目)이라

할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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