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제해권을 장악하고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한다. 내부적으로는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을 거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을 저력을 키운다. 이 무렵 스페인은 남아메리카 대부분을 식민지로 차지하게 되었고 프랑스는 인도, 아시아, 북아메리카 상당 부분을 식민지로 차지하고 있었다. 유럽은 식민지를 차기하기 위한 쟁탈전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전쟁의 도화선을 당긴 것은 통일 독일 건설 움직임이었다. 프로이센은 점점 덩치를 키우게 되고 프리드리히라는 불세출의 영웅에 의해 팽창 일로에 들어섰다.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와의 분쟁을 기회로 유럽의 강국으로 성장할 꿈을 꾸게 된다. 때마침 프랑스와 식민지 지배권 다툼으로 확전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영국이 프로이센과 뜻을 같이 했다. 이로써 전쟁은 유럽 전역으로 확대되었고 대부분의 나라는 전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7년전쟁은 유럽의 판도를 크게 바꿔 놓았다. 프랑스는 인도와 북아메리카의 지배권을 대부분 영국에게 내줄 수밖에 없게 되었고 내부적으로는 혼란기를 맞이하게 된다.
루이 15세가 영국과의 7년전쟁에서 패하고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독립전쟁을 지원하면서 프랑스의 국력은 급격히 약화되어 간다. 프랑스는 숙적이었던 오스트리아와 화친을 맺으면서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앙트와네트를 황세자비로 맞아들인다. 기근과 재정 악화로 굶주린 백성들의 불만은 높아만 가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삼부회의가 소집된다. 삼부회의는 국민대중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하지 못하고 평민 대표들은 국민회의를 결성한다. 로베스 삐에르가 주도하는 자코뱅당은 공포정치로 혁명을 추진하고 온건파인 지롱드당을 의회에서 몰아내기에 이른다. 혁명은 겆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안으로는 피의 숙청, 밖으로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영국의 침약으로 국민들은 혁명의 피로감을 견딜 수 없게 된다. 이때 위기에 빠진 프랑스을 소생시킬 나폴레옹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히스토리채널 제작 <1789, 프랑스 대혁명> 중 베르사이유 궁전
루이 14세가 1682년에 완성한 베르사이유 궁전은 프랑스 절대왕정의 상징이자 프랑스 혁명을 가져온 귀족적 퇴폐의 온상이었다. 파리에서 떨어져 지어진 궁전은 귀족들의 상층문화를 생산해 내면서 왕권을 강화하는 발판이었다.
[EBS 大國堀起 제5편] 중 루이16세
태양왕 루이 14세의 뒤를 이른 루이 16세는 자물쇠를 뜯어맞추는 것을 취미로 가진 특이한 사람이었다. 프랑스 왕정은 그의 무능으로 무너지고 말았는가?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 세계 경영을 두고 경쟁할 만큼 강성한 상태였고 루이 14세가 지휘한 수많은 전쟁을 통해 유럽의 맹주로 성장해 있었다. 이런 대프랑스가 어리석은 황제가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앉는 바람에 허물어졌는가?
이 그림은 들라크루아의 작품으로 프랑스 혁명을 상징하는 위대한 회화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은 1830년 왕정복고에 저항하는 민중봉기 프랑스 7월혁명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대혁명](1989) : 근대 민주 공화국의 시초가 되는 대사건 프랑스 대혁명을 소재 로 한 영화
[여왕 마고] : 루이 14세의 할아버지 앙리 4세의 부인
[당통](1982) : 1789년 경 프랑스 대혁명과 순수혁명가 당통 소재의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 2006년 제작 영화
[1789, 프랑스 대혁명] 히스토리채널 제작
[大國堀起 제5편] 중국 CCTC 제작
'공감 팩션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랑스 혁명 전후 예술 사조 이해 - 바로크, 고전주의, 낭만주의 (0) | 2009.12.14 |
---|---|
프랑스 혁명의 세계화와 나폴레옹의 등장 (0) | 2009.11.26 |
1777년 미국 독립전쟁 - 권력자들의 이권 다툼 (0) | 2009.04.30 |
BC 17세기 아리안족의 이동은 서구 문명 발생의 기원 (0) | 2009.04.25 |
절대왕권과 산업혁명의 합작 대영제국의 성립 (0) | 2009.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