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팩션 세계사

프랑스 혁명의 세계화와 나폴레옹의 등장

체거봐라 2009. 11. 26. 10:03

 

루이 16세가 단두대로 처형당하고 12년 뒤에 프랑스 공화국은 나폴레옹을 황제로 선출한다. 프랑스 성인남성 절대다수(357만 명)의 지지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의 기운이 번져올까 두려워한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반프랑스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위협하게 된다. 혁명의 수호를 외치며 프랑스에게 영광을 가져다 줄 강력한 권력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분위기를 타고 그는 프랑스 제국의 황제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이 그림은 대표적인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1세대관식] 장면이다. 프랑스의 고전주의는 루이 14세 때에 활짝 꽃핀 문예사조인데 희랍시대의 합리적 사고를 따르는 분위기로 인해 이름붙여진 문예사조인데 문학에서는 몰리에르와 라신, 음악에서는 모짜르트, 회화에서는 다비드를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고전주의는 중세의 몽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르네상스 정신적 기풍을 예술에 구현한 것인데 이 문학예술 방법은 프랑스가 이웃 나라들과 전쟁을 하면서 떠받든 나폴레옹이 왕정복고를 추진하면서 함께 인기가 없어진다. 고전주의의 형식적 완고함에 반기를 들고 나선 새로운 문학예술 방법, 문예사조가 바로 낭만주의이다.

 

 

 

위 그림은 대관식 장면 중 나폴레옹과 조세핀 황후의 모습을 확대하여 보여 주는 것으로 고전주의자이자 프랑스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실제로 혁명에 뛰어든 자꼬뱅 당원 다비드의 영웅 숭배적 면모를 볼 수 있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다비드가 나폴레옹에게 많은 칭찬을 들었던 작품인데 실재로는 나귀를 타고 비탈을 힘겹게 오르던 나폴레옹의 모습을 아주 멋있게 그려 나중에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이런 일화는 프랑스혁명을 지배하고 있던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이 실재 진행과정에서 얼마나 왜곡되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폴 드라로슈가 그린 아래 그림과 비교해 보면 다비드가 얼마나 나폴레옹의 실재를 왜곡했는지 잘 알 수 있다.  

 

 

 * 참고 자료 *

1812년 [전쟁과 평화] : 나폴레옹이 일으킨 전쟁에 휘말린 제정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1812년 [역사를 바꾼 전쟁 -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1815년 [역사를 바꾼 전쟁 - 워털루 전쟁] - 영국 웨링턴 장군의 승전, 이는 자유주의 영국이 황제의 국가 프랑스를 격퇴한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다. 나폴레옹이 패전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무엇일까?

1815년 [워털루] 나폴레옹 엘바 섬 탈출 이후 워털루 전투까지를 그린 영화

1800년대초 [나폴레옹] : 프랑스 대혁명 이후 나폴레옹 황제정치 회귀와 그의 몰락, 워털루 전투를 담은 나폴레옹의 일대기 영화. 1970년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