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씨네마

아버지와 아들, 형과 동생 만날 수 없는 평행선 - 걸어도 걸어도

체거봐라 2010. 1. 3. 16:15

부모의 자식 사랑은 혹시 욕심이 아닐까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하는 부모가 참 많은 것 같은데 우리 교육은 왜 점점 더 아이들을 힘들게 만드는 쪽으로만 가고 있을까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는 바람에 우리 나라 교육이 또 한 번 세상의 주목을 끌었는데 정작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생뚱맞은 소린인가 싶고 의아하기만 합니다. 이 나라 국민은 미국인들이 부러워할 만큼 세계 일류의 교육문화를 누리고 있는가요. 그렇게 생각하는 한국인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가 문제는 많았다지만 그래도 그때 시험 과목은 주로 문학과 수신(修身)이 아니었습니까. 말로만 끝날 수도 있겠지만 바르게 사는 게 무엇인지 늘 읊조리기는 했지 않았을까요. 요즘 학생들은 살아가는데 어떤 쓸모가 있는지 도대체 가늠할 수도 없을 뿐더러 배울수록 야심만 키우는 소위 입시과목을 들볶느라 온통 젊음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선량한 마음은 사라지고 욕심만 들어차게 됩니다. 교육이 젊은이들이 그렇게 변하도록 채찍질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게 다 자본의 이윤 추구 때문이겠지요.

 

어제는 침술과 사상의학에 일가견이 있으신 도사분을 만나러 온 가족이 나들이를 했습니다. 사람의 얼굴 빛만 보면 몸의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금방 알아내시는 게 진짜 도사 같기도 하고, 빙긋이 웃으시면서 쉽게 쉽게 진단을 하시는 모습이 좀 믿기지 않기도 했지만, 그 분의 말씀 중 마음에 와 닿는 얘기가 몇 있었습니다. 그 분은 대뜸 저에게 '방안의 물건이 제자리 있지 않으면 그냥 두질 못 하는 성격이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큰놈과 아내가 큭큭 웃더군요. 내막을 다 꿰뚫어 보시는 듯 도사님은 '나랏님이 행패를 부려도 어쩌겠느냐 임기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소낙비가 오면 맞을 수밖에 없지 별 수 없지 않느냐' 하시면서 너무 아득바득 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고 아프게 만드니 마음 속에서 많은 일들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처방을 하셨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그런 정도는 이미 알 것 같았 거든요. 새 정부 초장에는 당선자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밉더니 이젠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보신하면서 견디는 것이 상수라'고 자주 말하곤 했으니 말입니다. 도사님이나 나나 세상 보는 눈이 별만 다르지 않아 보여 갑자기 믿음이 갔습니다.

 

그런데 아는 만큼 실천이 잘 안 되는 게 문제입니다. 큰 놈은 도사님이 쪽집게라면서 킥킥거립니다. 내 성격이 너무 깐깐해서 자신이 평소에 무척 답답했다는 걸 공인받은 눈치였습니다. 맞습니다. 이 나라 교육이 미쳐가고 있다고 개탄을 하면서도 제 자식 교육에 대해서는 떠벌이는 말과는 다른 통속적 기준을 들이대고 있었던 게 맞습니다. 제 자식만 잘 되길 바라며 뒷바라지에 골몰하는 여느 부모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던 거지요.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그런 성적으로는 엄두도 내지 말라며 큰놈을 주눅들게 한 게 맞습니다. 목사의 자식이 강단의 설교와는 다른 아버지의 일상적 태도로 심각한 가정불화를 겪을 가능성이 많다는 뒷담화가 남의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교사도 비슷한 직업병을 앓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지요. 이러니 당사자인 나도 마음 속으로 병이 깊어지고 가족들은 또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돌파리든 도사님이든 상관 없습니다. 그 분께서 하신 말씀은 쉽고 간단하면서도 지키기 쉽지 않은 진리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마음이 너나 없이 다 벼락부자가 되고 싶은 도눅놈 심뽀이니 그런 나랏님이 들어선 것이 아니냐. 누굴 탓하겠느냐.' 맞습니다. 누굴 탓할 일이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서 더러운 욕심을 씻어내야 합니다.

 

[걸어도 걸어도]는 아버지와 아들 얘기입니다. '지나고 보면 안다. 너도 자식 낳아 길러봐라'는 영화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왜 아비와 자식은 다 지나 뒤늦게 서로를 바라보게 될까요.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게 된 이후에나 말입니다. 아비는 큰 아들에게 병원을 물려주려고 했는데 사고로 잃습니다. 둘째와는 영 사이가 안 좋아 늘 어긋납니다. 큰 아들의 제삿날 온 가족이 모이면서 시작되는 잔잔한 집안 얘기입니다. 둘째는 겸사겸사 곧 결혼한 여자를 데리고 오는데 아이 하나 딸린 과부랍니다. 아비는 영 못마땅합니다. 저라도 똑 같았을 겁니다. '멀쩡한 젊은 놈이 뭐가 모자라 애 딸린 과부라니.' 노발대발 난리가 나는 게 상식적인 풍경이겠지요. [걸어도 걸어도]는 일본 얘기입니다. 참 거북한 자리인데 감정이 묻어나는 거슬리는 말은 철저하게 절제합니다. 이게 일본이거든요. 서로 못마땅한 게 뻔한데 안 그런 척합니다. 우리 문화와는 참 다르지요. 식구들끼리도 쌍소리를 하며 멱살까지 잡는 일이 다반사인 우리 문화는 미개한 건가요. 이런 문화의 차이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저는 이 영화를 아비와 아들의 만날 수 없는 평행선으로 읽었습니다. 드러나는 풍경이야 문화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본질적으로 아비와 아들의 긴장과 갈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오늘은 위장과 대장을 들여다 본다고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병원 침상에서 글을 쓰면서 또 한번 되짚어 봅니다. 내장 속을 들여다 본다고 내 병통의 원인을 규명할 수는 없을 겁니다. 뭐가 문제겠습니까. 모든 게 다 내 마음 속의 찌든 욕심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일 아침에는 내장 속의 모든 찌거지를 다 씻어내게 될 겁니다. 그와 함께 내 마음 속도 좀 말끔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병원을 나설 때에는 내 얼굴이 맑아지고 따스해져서, 큰 놈이 저를 보고 '똥꼬 안 아파?' 하고 한 마디 농이라도 걸어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러면 찬바람이 불망정 가슴을 열고 거리로 나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