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께 물었습니다. "학생과 상담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입니까?" 가장 많은 선생님이 '학생을 어디까지 도와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학생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 하고 어려워 하면 뭐 때문에 어려워 하는지 알아보게 되고 알아나가다 보면 학생의 가정 형편, 트라우마(외상성 스트레스 장애) 등등을 만나게 되고, 이쯤 되면 여기서 그만 멈춰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학생이 한두 명이 아닙니다. 이런 경험을 하면 할수록 판단이 빨라집니다. 대책없이 휘말려 들어갔다가 서로 상처만 받느니 처음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균형감각(?)을 터득하게 됩니다. '학생을 어디까지 도와줘야 모르겠다'고 응답한 선생님은 아직 그런 감각을 터득하지 못한 순수한 선생님인 게 분명합니다.
어제는 청소년 성장소설을 읽다가 가슴을 찌르는 대목을 만나 우울했는데 이 영화는 저를 더 우울하게 만듭니다. 소설 속에서, 신참 선생이 통과의례로 겪게 되는 '정신 줄 놓고 패기'라는 말을 접하고 우울해졌거든요. '정신 줄 놓고 패기'라는 건 선생이 이성을 잃고 마구 학생을 때리는 걸 말합니다. 어슬프게 건들거리는 아이들 중에 '씨발, 선생이면 다야' 하고 실수를 하는 애들이 종종 있는데,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선생은 대부분 이때 정신 줄을 놓칩니다. 그 다음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제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겁니다. 이런 장면 한 번도 못 본 사람 없을 겁니다. 익히 보아 왔던 뻔히 아는 이야기인데 새삼스럽게 우울해지내요. 그렇게 맞아본 경험도 있고 그렇게 정신 줄을 놓친 적도 있거든요. 적어도 미친듯이 학생을 패는 교사는 되지 말자고 그렇게 속다짐을 했건만 딱 한 번 10년 전 그때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네요. 저라고 뭐 별 수 있겠습니까. 그냥 빤질빤질해지면서 요령만 늘었다는 걸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적당히 거리를 두면 정신 줄을 놓칠 일도 없고 대책 없이 휘말릴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영화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었습니다. 부끄러워지네요.
'블라인드 사이드'는 '사각지대'라는 뜻입니다. 우리 말로는 '그늘'이 제일 적당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시의 그늘(사각지대)에 버려진 아이가 나중에 쿼터백(미식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의 사각지대를 보호하는 포지션(블라인드 사이드)를 가장 잘 소화하는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로 성장하는 감동 드라마입니다. 버려진 아이가 최고의 수호자가 된다는 이야기 구조는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안성맞춤이지요. 실존 인물 마이클 오어를 입양한 중산층 부인은 어떻게 그런 위험한 아이를 집안으로 들여놓았을까요. 그냥 소설 같은 이야기라면 또 '미국식'이군 하고 말텐데 실화랍니다.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엄마는 마약중독자라 아이는 국가기관에 의해 강제로 입양되었다 도망치기를 거듭한, 덩치는 산만한 거구의 흑인 청년입니다. 비 속을 걷는 그를 집으로 데려간 부인은 수백 개의 점포를 소유한, 농구 스타 출신 사장님 남편과 사립 고교를 다니는 예쁜 딸과 늦둥이 아들과 함께 그림같은 부자 동네 고급 주택에 삽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인기 있는 치어리더였고 지금은 잘나가는 디자이너이며 내로라 하는 귀부인들과 한 접시에 18달러나 하는 셀러드를 곁들여 한담을 나누곤 하는 그녀가 어떻게 그런 위험한 짓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런데 귀부인에게 이끌려 하룻밤 잠자리를 얻은 슬럼가 흑인 청년은 또 어쩌면 그렇게 착한지.
귀부인도 처음에는 자신의 무모한 행동에 대해 후회합니다. 저도 젊었을 때에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덥석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습니다. 젊음은 대책없는 낭만이잖아요. 지금은 그런 실수를 절대로 저지르지 않습니다. 나중에 감당하지 못할 것이란 걸 잘 알거든요. 누구나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젊음까지도 붙잡아둘 만큼 자기 관리에 치밀한 매력적인 귀부인이 어둡고 더럽기 그지 없는 시궁창 같은 블라인드 사이드 슬럼가에 성큼성큼 발을 들여놓다니요. 가끔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기에서 별 꼴 다 보고 자란 청년을 입양하여 집안에 들인다니요. 그의 가족은 하나 같이 탁월한 인품을 가진 그야말로 노블리스입니다. 혼란스럽습니다. 미국은 흑인 노예를 가축처럼 부려 부를 축적한 더러운 건국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 역사와 무관하지 않게 미국에서 생산되는 영화라는 게 하나같이 비참한 현실을 감추고 터무니없이 허황된 성공신화를 조장하는 것들이라고 경멸해 온 터였습니다. '이따위 황당한 신기루에 열광하는 한심한 미국인이라니' 하고 비아냥거리고 마는 게 습관처럼 되어 버렸더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 단순치 않네요. 우린 지금 어떤가요. 미국인들이 속물이라고 비아냥거리는 나는 어떤가요.
오늘은 학교 빠지기를 밥 먹듯이 하고 저의 짐작으로는 그만 둘 날이 멀지 않은 한 학생을 늦도록 붙잡아 놓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결국은 그 놈 눈에서 눈물이 흐르도록 하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그 학생을 내 마음 속으로 얼마나 들일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그만 두어야 할까요. 그 아이가 왜 학교 나오기 싫어 하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 거 모르는 선생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너 왜 그러느냐'고 수없이 다그치고 결국 눈물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이런 거 우습다는 거 다 압니다. 이러다 보면 결국 위선의 탈을 쓴 나와 마주하게 된다는 거 압니다. 경멸해 마지 않던 미국 영화가 젊은 시절 저질렀던 뒤감당 못하는 선의의 과오를 되살아 나게 말들었습니다.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 다시 위선을 탈을 보게 될까요. 병든 교육제도가 매년 수십만의 어린 영혼을 패배자로 내몰고 있는데 애 하나 붙들고 눈물이나 짜내어서 어쩌자는 것인지 제 노릇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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