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3강 ; 미적 범주 - 우아미

체거봐라 2010. 8. 30. 09:42

3강 ; 미적 범주 - 우아미

 

앞에서 우리는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희노애락애오욕 칠정으로 구분해 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눈치를 챘는지 모르겠지만 이 일곱 가지 감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묘한 감정이 있습니다. 좀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칠정은 본성적 욕망과 관련이 있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욕심이 채워지지 않거나 만족스러울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칠정 중 즐김(樂)과 슬픔(哀)은 본능적 욕망(식욕, 성욕 등)과는 좀 거리가 있는 감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 또한 욕심과 결부된 감정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에는 이런 욕심과 관련 있는 감정만 생기는 건 아닙니다. 내 욕심과는 상관없이 생기는 감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성리학자들이 말하는 사단(四端 ; 측은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수오지심)을 생각해 봅시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쉽게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런 감정은 내 욕심과는 상관없습니다. 동물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감정인 것이지요. 사양지심(辭讓之心)-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그릇된 것을 꺼리는 마음, 이런 마음을 선(善)한 마음, 착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마음은 나의 욕심과는 관련이 없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인간적이고 아름답다고 합니다.

 

예술 작품은 사람의 마음에 어떤 감정이 생기도록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당연히 좋은 감정, 아름다운 감정이 생기기를 바라겠지요. 사사로운 이익과는 관련 없이 아름다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형상물(이미지)이 좋은 예술 작품입니다. 선한 마음이 생기도록 하기보다 이기적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여 어떤 행동을 부추기는 것은 예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약이 건강에 해로운 것과 똑같습니다. 선한 마음과는 관련이 없고 강한 자극만 가득한 오락물을 너무 많이 즐기면 마음이 굳어버려 매력적인 감수성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게 분명한데 우리 주변에는 왜 이런 자극적인 오락물이 넘쳐날까요. 간단합니다. 건강에 해로운 걸 뻔히 알면서도 음식물에 나쁜 물질을 넣어 파는 이유가 뭘까요. 바로 건강을 해치든 말든 돈만 벌면 된다는 나쁜 심뽀 때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조심해야 합니다.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자극적인 건 대부분 해롭습니다. 반대로 몸과 마음에 좋은 건 깊은 맛이 있습니다. 깊은 맛은 일정한 수준의 입맛을 요구합니다. 다시 말해 감수성이 세련되어야 심미감(진정한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입맛, 감수성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앞에서 사람의 마음을 이루는 요소를 지성, 감성, 의지로 삼분했습니다. 그리고 예술이 추구하는 감응(감정적 반응)은 주로 감성 영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이 감정이라는 것이 워낙 복잡하여 성리학의 이론을 적용하여 분석해봤습니다. 그래서 우린 원초적 본능과 밀접한 감정도 있고 이성과 의지와 결부된 고귀한 감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좀더 복잡한 감정 반응을 경험해 보도록 합시다. 사실 불쌍한 사람을 보면 생기는 연민의 감정도 그리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우린 이 연민의 감정이 동물들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인간만의 고귀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보다 더 복잡하고 고귀한 감정이라는 것이 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앞에서는 동화를 통해 우리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가까운 이야기를 통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느껴봤습니다. 이번에 좀 멀리 가봅시다. 프랑스 혁명 전후의 시기로 가봅시다. 그 시대에 유행했던 음악과 미술을 감상하면서 복잡한 감정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 봅시다.

 

우선 여러분에게 두 개 클래식 음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나는 바로크 풍을 대표할 만한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고 다른 또 하나는 고전파의 대표 작곡가 베토벤의 [운명]입니다. 이 두 작품을 같이 들으면 비교적 쉽게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발디의 작품을 감상할 때에는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한 무도회 장면을 떠올리면 적절합니다. 베토벤의 작품은 반혁명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깃발로 세우고 성스러운 전쟁에 나서는 프랑스 청년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나폴레옹의 영웅적 모습을 떠올리면서 감상해야 합니다. 이런 감상 체험은 예술 작품이 인간의 이성과 의지와 얼마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지 잘 알 수 있게 만듭니다. 끓어오르는 열정, 현실에 대한 냉철한 비판, 현실을 변혁하고 미래를 설계하려는 강인한 의지, 이 세 가지 에너지가 한꺼번에 분출하여 엄청한 일이 벌어진 역사적 사건, 프랑스 혁명. 이 시대의 예술을 살펴보면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위대한 경지까지 드높아질 수 있는지 놀라운 감동을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만큼 모순이 심화된(문제가 심각해진) 혁명 직전 시대에 대해 살펴봅시다. 그래야 왜 혁명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왕을 광장으로 끌고 나와 목을 잘라 죽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때 죽은 프랑스 왕이 루이 16세이고, 숙청된 부르봉 왕가의 문화 유행을 '바로크'라고 부릅니다. ‘바로크’ 문화예술은 귀족의 화려함을 특징으로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성주의자가 보기에는 바로크와 로코코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성주의자들은 이런 화려한 예술을 퇴폐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바로크’, ‘로코코’라는 말 자체가 비웃음이 섞인 말이지요. ‘삐뚤삐뚤’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로크풍의 예술 작품에서 느끼는 미적 특질을 우아미라고 할 수 있는데 ‘우아하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 나빠할 사람 별로 없습니다. 조롱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우아(優雅)의 優(뛰어날 우)는 요즘 말로 하면 ‘스타’라는 뜻을 갖고 있는 글자이니 기분 좋은 말인 게 분명합니다. 優는 사람(人)과 (憂 근심 우)가 결합된 글자이지만 憂를 근심으로 풀면 안 되고 여기서는 ‘춤추는 배우’로 봐야 합니다. 그러니 優를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스타’로 이해하면 딱 맞을 겁니다. 참고로 憂(근심 우)는 가면(頁 머리 혈)과 夂(뒤져올 치)가 결합한 夏(가면을 쓰고 춤춘다는 의미)에 마음(心)이 결합한 글자입니다. 춤을 추는 배우의 명연기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니 ‘근심’이라는 의미로 발전한 것입니다. 雅(맑을 아)는 음을 나타내는 (牙 어금니 아)에 새(隹 새 추)가 결합한 글자로 원래는 새의 이름이었습니다. 당연히 아주 예쁜 새이지요. 그러니 우아(優雅)하는 말은 ‘아주 멋있다’는 의미를 갖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크 시대의 이런 아름다움을 왜 조롱하게 되었을까요?

 

바로크 시대의 문화예술이 왜 화려함을 추구했는지 나중에 왜 조롱거리가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그도 그럴 만하구나 싶은 게 있습니다. 바로크 시대상을 들여다보려면 영화 [왕의 춤]을 보시기 바랍니다. 프랑스 절대왕정을 이룬 루이 14세의 삶을 그리고 있는 영화입니다. 루이 14세 집권기의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한참 이런 저런 얘기를 해야 하는 만큼 여기에서는 바로크풍이 왜 생겨났는지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것만 다루도록 합시다. 이 시대는 중세의 종교적 세계관이 많이 약화된 때입니다. 그 대신 세속 왕권이 급격히 강화된 때이지요. 루이 14세는 지방의 봉건 귀족을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불러들여 아주 화려한 유행 풍조에 휩쓸리도록 했습니다. 왕인 그 자신이 발레 공연 무대에 서기도 했으니 그의 예술 취향은 놀라울 정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문화 풍조를 조장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극대화 했으며 그에 따라 지방 귀족들은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어 갔습니다. 당연히 존경을 받을 수 없게 되고 점차 지도력을 잃게 되었지요. 나중에는 집중된 권력이 부패하게 되고 민중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부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와토 [조망]

 

 

 

 

프로고나르 [그네]

 

 

위의 세 작품은 로코코풍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입니다. 한 눈에 봐도 화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퇴폐적이기까지 하지요. 귀족들의 이런 화려한 문화가 당대의 지식인과 서민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위의 작품이 어떤 측면에서 다른 예술 작품과 느낌이 다른지 잘 모르겠으면 바로크풍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고전주의 문화예술 경향을 살펴보면 됩니다.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주의는 쉽게 프랑스 혁명 정신을 문화예술에 구현한(드러낸) 유행 흐름이라고 보면 됩니다. 혁명 이전의 프랑스 귀족 계급의 미감(미적 감각)을 잘 표현한 로코코 풍을 배격하고 고대 로마의 기풍을 되살리는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다비드는 로마시대의 숭고한 도덕성을 예술로 구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가 현인이나 영웅을 주로 소재로 택한 것은 바로 이런 신고전주의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