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5강 ; 미적 범주 - 골계미(滑稽美)

체거봐라 2010. 10. 25. 09:04

5강 ; 미적 범주 - 골계미(滑稽美)

 

‘골계’라는 말을 참 어려운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낯선 말일 겁니다. 가르치는 저에게도 이 말은 어렵습니다. 골계는 풍자로 이해하면 될 듯합니다. ‘풍자’라는 말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諷刺의 諷(풍자할 풍)은 ‘바람 같은 말’입니다. 쉽게 ‘바른말 하다’는 의미입니다. ‘바른말’은 주로 높은 사람에게 하는 간언(諫言)을 의미합니다. 바른말 하다가 미움을 사는 경우가 많으니 ‘諷’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諷’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刺(찌를 자)는 가시(朿)와 칼(刂)이 결합한 말입니다. 朿는 나무(木)에 가시가 돋은 모양이고, 刺가 찌르다는 의미인 것은 쉽게 이해될 겁니다. 그러니 종합하면 諷刺는 ‘날카롭게 찌르는 바른말’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滑稽(골계)의 滑(익살스러울 골)은 물(氵)과 뼈(骨)가 결합된 말로 물처럼 매끄럽게 흐르면서 뼈가 있는 말이라고 풀면 거의 정확합니다. 諷刺의 諷에는 바람이 들어있고 滑稽의 滑에는 물이 들어있습니다. 두 글자가 다 물 흐르듯이 바람이 불듯이 매끄럽고 수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滑稽의 稽(상고할 계)는 ‘재물’을 의미하는 禾(벼 화)와 ‘결점’을 의미하는 尤(더욱 우, 尢절름발이 왕) ‘맛보다’를 의미하는 旨(뜻 지)가 결합한 글자입니다. 합해서 ‘따져 셈하다’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풀어 보면 滑稽는 諷刺와 같은 의미를 갖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계는 참 기발하여 웃음을 자아내지만 속으로 많이 계산한 말입니다. 諷刺도 바람 같지만 찌르는 가시를 품고 있는 말로 골계와 다르지 않은 말입니다.

 

풍자는 유머(humour = 익살, 해학)와 다릅니다. 유머는 보통 익살, 해학으로 번역되는데 익살은 웃기는 말과 행동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고 해학은 같은 뜻을 갖고 있는 한자어입니다. 諧謔은 諧(어울릴 해)와 謔(희롱할 학)이 결합한 한자어로 ‘서로 어울려 희롱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풍자가 뼈가 있는 우스갯소리인데 비해 해학은 그냥 웃기는 말과 행동을 의미합니다. 감동을 주는 아름다움으로 인정할 만한 웃음은 어떤 것일까요. 우스갯소리 중에는 아름답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하지요. 반면에 우스갯소리 중에서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아름다운 것들도 있습니다. 아름다움 중 ‘골계미’라는 말 속에 그 답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해학미라고 하기보다 골계미라고 하는 게 적절한 것은 바로 풍자 속에 들어있는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아름다움(美)은 긴장과 균형 조화를 본질로 하는데 풍자에는 바로 이런 속성이 내포되어 있거든요. 웃음은 본질적으로 긴장을 해소해 버리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머 해학은 이완과 나태를 본질로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은 삶의 고달픔을 덜기 위한 좋은 휴식의 기능을 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적 모순을 감추고 도전적 비판의식을 해체시키기 위한 훌륭한 지배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 없는 유머는 비인간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해 봅시다. 약자를 희롱하는 웃음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웃음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비웃음의 대상이 권력이어야 합니다. 비웃는 행위가 자칫 잘못하면 권력에 의해 탄압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한 것일 때 긴장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뛰어난 희극은 대부분 풍자의 칼날이 권력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 앞에서 비굴해지는 것이 추하듯이 약자 앞에서 으스대는 것은 추합니다. 그 반대로 약자에게는 연민으로 강자에게는 비판과 풍자로 대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부조리한 세계에 맞서 비장한 각오로 헌신하는 것도 아름답지만(悲壯美) 부당한 권력을 비꼬는 것도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아름다움을 골계미라고 합니다. 우리 삶이 너무 힘겨워 가끔 한바탕 웃고 모든 고달픈 것들을 잠시 잊고 싶은 마음은 그리 탓할 게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삶은 그렇게 잊어질 수도 없을뿐더러 웃어넘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권력자가 보기에 누가 다스리기 쉽고 편하겠습니까. 잘 잊어 주고 시시덕거리며 웃어넘기는 사람들이 쉬울까요, 꼬치꼬치 따지고 기억에 담아두는 사람들이 쉬울까요. 뻔하지요. 뭐 그렇게 어렵게 살 것 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에도 누군가 부당하게 짓밟히고 있는 이가 있으며 그의 희생으로 우리의 안락이 보장되는 것이란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그걸 모르거나 모른 척하는 것은 더러운 짓입니다. 그러니 웃음은 경계해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들의 웃음 대부분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