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說

학교 밥이 위험하다

체거봐라 2009. 2. 4. 12:23

학교 밥이 위험하다

인성여고 이한수 hansu85@hanmail.net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학부모들이 자식을 학교에 보내면서 노심초사 전전긍긍 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선생 노릇은 참으로 고역입니다. 누굴 탓하겠습니까. 내가 속해 있는 이 나라의 학교가 아이들을 비정한 투견으로 길들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을 경악케 한 연쇄 살인범 사건이 이 나라의 교육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드니 이를 어찌해야 합니까. 이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듯이 인문계 고등학교는 전쟁터입니다. 고등학생이 되면 그야말로 전장의 병사처럼 살벌한 환경을 견디어 내야 합니다. 요즘 군대는 학교보다 덜 폭력적(?)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습니다.


  학교 급식소만 들여다 보면 학생들의 정서가 얼마나 피폐해지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은 15년간 유치원과 학교의 급식소에서 하루에 한 끼 이상 식사를 합니다. 환경 물질로 오염되어 있는 음식을 군대 훈련소와 다를 바 없는 급식소에서 10여 분만에 허겁지겁 삼켜야 하는 열악한 식사를 매일 경험합니다. 점심시간 시작종이 울리면 엎어지고 넘어지면서 급식소로 앞다투어 달려가는 진풍경이 매일 벌어집니다. 새치기 하는 놈들 때문에 고분고분 줄을 선 학생들이 바보가 되는 모습을 매일 수 차례 목격합니다. 우리나라 학생의 약 1/3이 비만 상태이고 1/4 정도는 아토피 증세가 있으며 환경 호르몬으로 인한 생리적 이상현상 등 식생활 습관과 직결되는 여러 문제점은 이미 심각한 상태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서 어떤 심리적 병리 현상 나타날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열악한 학교 급식의 현실을 정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도시 학교 급식소 좌석 회전율(학생수/식당 좌석수)은 4.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점심 시간이 50분 정도이니 1인당 식사 시간은 10분 정도밖에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정부의 권장 회전율을 2.5입니다. 학생들이 먹는 음식물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조리종사원 1인당 학생 300명을 감당해야 하니 단순가공 식품을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고 가공식품은 식재료의 생산지 및 유통 가공 이력을 밝혀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학교 급식에는 값싸고 조리가 수월한 식재료가 사용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정부는 조리종사원 1인당 학생 100명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위탁급식은 더 심각하겠지요. 이윤을 추구하는 영리업체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어떤 식재료를 사용할지 뻔합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위탁 운영하는 학교급식소의 94.5%가 수입산 쇠고기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대표적인 식재료인 밀의 자급률은 0.4%, 콩의 자급률은 7.2%에 불과합니다. 100% 수입산이며 GMO(유전자변형식품)라고 봐야 합니다.


  바람직한 식생활에 대해 교육하는 일은 국가적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과 2005년에 제정된 식육(食育;식생활교육)기본법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지산지소 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얼굴을 아는 관계로 맺어져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고 합니다. 이는 근래 우리 나라에서 안전한 급식을 위해 일하는 분들이 말하는 '급식은 교육'이라는 생각과 일맥상통합니다. 일본의 '푸드액션 21(NGO 법인)'처럼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식자재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을 체계적으로 벌여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소비자에게 지역에서 생산한 식자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전문가 집단을 양성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민간의 노력과 발맞추는 정부의 정책이 필요합니다. 일본에서 2005에 제정된 '식육기본법'이 식생활교육을 지덕체 교육의 기본이라고 명시하고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에서 식생활 교육을 구체적으로 추진하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지역에서 생산된 믿을 수 있는 생산물이 학교 급식 식재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현재 21%에서 2010년까지 30%로 늘인다는 구체적인 정책 목표를 명확히 한 것은 너무 부럽습니다.


  2월 정기국회에서 학교급식법이 개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2006년에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직영급식 원칙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먹거리가 아이들의 심성을 해치는 일이 매일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교육정책은 거꾸로 치닫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합니다.

 

2009.2.9 인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