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강 ; 극기 훈련 - 의지란 무엇인가
이번 수련회의 주제는 '의지(意志)'입니다. 의지(意志)란 무엇일까요? 저는 의지가 자유(自由)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여름 수련회의 주제, 자유(自由)는 ‘나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意志의 意(뜻 의)는 音(소리 음)과 마음(心)이 결합한 글자입니다. ‘마음의 소리’라는 뜻이지요. 志는 선비(士)의 마음(心)입니다. 사(士)는 하나(一)를 들으면 열(十)을 아는 사람이니 깨우친 사람, 배운 사람을 의미합니다. 之(갈 지)와 마음이 결합한 글자로 분석해도 좋습니다. 이렇게 분석하면 志는 '마음 가는 대로'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니 의지(意志)란 ‘깨우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라는 의미이지요. 또는 '마음이 하라는 대로 간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이렇게 푸나 저렇게 푸나 ‘나로부터 비롯된 것’ 자유(自由)와 비숫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가만히 따져보면 나에게서 나온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自我)가 있기나 한지 증명하기 쉽지 않지요. 내가 갖고 있는 취미, 흥미, 의견, 주장 이런 모든 것들이 진정 나에게서 시작된 것일까요? 전부 다 누군가한테서 들은 것, 누군가 주입해 준 것이 아닙니까. 사실 우리 취향이라는 것은 대부분 매스컴을 통해 우리에게 주입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 나로부터 나온 것은 없습니다. 그러니 自我(자아)도 없습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없는 것은 주체적 존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꼭두각시와 돼지처럼 말입니다.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닌 것을 하나 하나 걷어내면 무엇이 남을까요. 남는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런 자각으로부터 존재는 자라납니다. 비로소 나(自我)를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깨달은 존재를 실존(實存)이라고 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것’을 말합니다. ‘존재함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지요. 그런 실존은 ‘자유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을 품고 있으니 말입니다. 속으로 품고 있는 그것이 밖으로 나온 게 바로 ‘의지’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 울려나오는 소리(뜻)이 바로 의지인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자연을 극복한 역사의 현장, 강화 간척지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 역사적 사업의 의미와 공과에 대한 고찰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엄청난 사업의 현장이었던 간척 제방을 직접 걸어보면서 만분의 일이라도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느껴보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녀온 마니산 주변의 간척지가 조성된 시기에 대해 조사하면서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사의 현장이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드러내 보이기에 적합한 장소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던 것입니다.
마니산 남쪽 지역 도보 횡단 코스(간척 재방)
원래 마니산이 있는 강화도 남쪽 땅은 강화도 본도와는 떨어져 있던 섬(고가도)이었습니다. 조선 숙종 때 강화도 길상면 선두리와 고가도 화도면 사기리를 잇는 제방을 쌓고, 양도면 능내리와 화도면 상방리를 제방으로 이어 엄청나게 넓은 가릉평과 선두평이 만들어지면서 본도와 이어졌지요. 이 간척사업이 이루어졌던 때가 1710에서 1711년까지이고 이 사업을 지휘했던 행정관이 민진원 강화유수입니다. 제가 이 간척지를 아름다운 인간 의지의 결과물로 흔쾌히 소개할 수 없는 것은 이 사업이 조선시대 여러 당파 중 가장 오랜 집권기를 누렸던 노론의 영수 민진원이 지휘하여 관주도로 이루어졌다는 점 때문입니다. 민진원은 1년 동안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왜 이런 엄청난 사업을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추진했을까요.
민진원은 조선 궁중비사 중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인 장희빈 사건의 핵심인물 중 하나인 인현왕후의 오빠입니다. 숙종 왕이 장희빈을 후궁으로 맞아들이고 인현왕후를 쫓아냈을 때 민진원은 정치적으로 잠시 밀려나지만 인현왕후가 궁으로 되돌아왔을 때에는 다시 벼슬을 얻었고 이후 줄곧 권력의 핵심에 있었습니다. 그는 서인 세력의 실세 중 실세였으며 서인의 한 분파인 노론의 영수(우두머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노론의 이론적 구심 송시열과도 인척 관계였습니다. 송시열이 인현왕후의 외삼촌이었거든요. 송시열이 이론적으로 노론의 구심이었다면 민진원은 실력으로 노론을 대표했습니다. 민진원의 강화도 간척 및 강화산성 개축 정비 사업은 노론의 배청 사상을 실천적으로 뒷받침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병자호란 때 당한 치욕을 씻기 위해 청나라를 쳐야 한다는 것이 노론의 정치적 명분이었거든요.
그런데 객관적으로 조선의 청나라 정벌은 말이 되지 않는 허황된 주장입니다. 명나라를 양쯔강 이남으로 밀어내면서 곧 중국 전체를 통일할 수 있는 실력을 이미 갖고 있는 청나라를 조선이 쳐서 이긴다는 게 말이 안 되지요. 노론의 북벌론은 실천 계획이라기보다 정치적 이벤트라고 봐야 합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백성을 속인 셈이지요. 반대파를 공격하기 위한 명분으로 아주 유효하기도 했습니다. 청나라가 대세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매국노라고 매도해 버렸지요. 노론의 이론적 구심이었던 송시열도 북벌이 비현실적임 알았습니다. 효종과 독대하면서 줄곧 내치를 강조했거든요. 그런데도 민진원은 강화도를 요새로 만들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했습니다.
강화도 마니산 주변 들녘에 나가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수레와 농기구로 이런 대규모 간척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인간 의지의 위력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집권자들의 잘못된 국정 운영이 백성을 괴롭히기만 하고 나라를 망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데로 생각이 미치면 불굴의 의지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마음이 섬뜩해집니다.
스스로 세운 뜻이 자유의지입니다. 뜻을 세우지 않은 자는 존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생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얕은 욕망을 극복하는 의지를 길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맙시다. 쉬 꺾이지 않는 뜻을 세우되 그 뜻은 바른 것이라야 합니다. 바르지 않은 의지의 칼날은 자신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다치게 할 수 있습니다. 뜻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혜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論說'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성지능, 사회적 지능(IQ, EQ, SQ) 추천 강의 -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 (0) | 2011.05.27 |
---|---|
7강 ; 아름다운 의지의 표상, 간디의 [아힘사] (0) | 2010.10.29 |
5강 ; 미적 범주 - 골계미(滑稽美) (0) | 2010.10.25 |
4강 ; 미적 범주 - 비장미(悲壯美) (0) | 2010.09.18 |
3강 ; 미적 범주 - 우아미 (0) | 2010.08.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