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막 입학할 무렵 청소년들의 정신 세계는 어떨까요? 통계가 말해 주듯이 중학교 2학년 무렵이 가장 험난합니다. 이때 왕따, 폭력 등 문제적 상황이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의학적으로는 이 때 전두엽(뇌의 전면 부위)이 폭발적으로 성장을 하면서 뇌의 다른 부위와 혼선이 발생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감정 조절을 잘 못 하고 상대의 감정을 오해할 가능성이 많으며 극단적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 시기를 보통 사춘기라고 하는데 잘못 다루면 씻지 못할 트라우마(외상성 스트레스 장애)가 남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이 때부터 비로소 자의식을 갖게 되니 참 축복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보통 이런 청소년의 모습을 혐오하는 경우가 많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이 시기를 축복으로 맞아들이도록 함께 공부해 봅시다. 공부하면 너무나 신비한 시기임을 알게 되고 그 혼란과 에너지를 잘 다루어 창조의 힘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첫 작품으로 젊은 작가 조민희의 [우리들의 작문교실]을 추천합니다. 이 작품은 베스트극장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어 가족이 함께 감상하기가 좋습니다. 외국 작품으로는 최근에 나온 [자전거 탄 소년]이 아주 좋습니다.
[우리들의 작문 교실]은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작가가 74년생이니까 스물 여섯에 등단을 한 겁니다.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지만 이렇다 할 작가 수업은 받은 적이 없답니다. 11살 때부터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고 대학교 3학년 때에는 장편소설을 하나 썼다고 합니다. 그냥 혼자서 한 일이랍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을 풀어 놓은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주인공 은아는 열한 살입니다. 작가가 소설가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도 열한 살 때라고 합니다. 은아 엄마가 운영하는 카페테리아에 자주 드나드는 손님 중에 유명한 작가가 있는데 작가가 어린 시절에 직접 겪은 일로 짐작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자전적 소설이라고 봐야 합니다. 기교를 부리지 않아 어렵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어 그 나이 무렵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보기에 적합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내면 심리 공간이 큰 사람입니다. 말이 좀 어려운데 그냥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혼자 있으면 공상에 자주 빠지게 되고 그러니 상상력이 풍부해질 수밖에 없고 나중에 입담이 좋아질 가능성이 커지지요. 어린 시절에 혼자 있기를 즐기게 된 사람이 나중에 어른이 되면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의 작가 조민희도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음이 분명합니다. 주인공 은아는 유복자(한부모)로 태어났습니다. 엄마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은아를 낳았다고 합니다. 이러니 작가의 부모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소설로 그린 은아가 곧 작가 자신은 아니겠지만 작가가 범상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개연성이 있어 보입니다. 작가의 엄마는 왜 홀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었는지, 작가가 어릴 때 엄마는 왜 글쓰기 지도를 했는지 궁금해집니다. 아마 왕따의 경험이 있거나 외톨이로 어린 시절을 보내어 마음에 상처가 남았을 겁니다. 누구나 크든 작든 이 나이 무렵에 마음의 상처를 입는데 이 아픈 경험을 고백함으로써 그 악몽에서 해방될 뿐만 아니라 든든한 자아 정체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자기 얘기를 털어 놓는 일은 엄마의 배에서 나오는 것만큼 엄청난 일입니다.
작품의 화자가 초등학생이라 동화로 읽히고 있습니다. 출판이 된 책도 동화처럼 꾸며 놓았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은아가 참 조숙한 아이라 성장소설로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유아기를 벗어나며 겪는 분리 불안을 다룬 게 아니고 이미 자아가 형성되어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청소년기 심리를 다룬 작품입니다. 은아는 유복자로 태어났고 늘 TV를 켜놓아야만 하는 엄마와 단 둘이 생활을 하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빨리 심리적 자아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학기초에 후두염을 앓아 다른 애들은 새 친구를 사귀어 짝이 다 맺어지고 난 뒤에 새 학년 출석을 시작하는 바람에 왕따가 되어버렸지만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혼자 있는 게 익숙하거든요. 그런데 짝이 안 맞아 혼자 남게 된 새짝 '위니'는 좀 다릅니다. 위니는 은아와 짝이 되어 왕따를 면한 게 무엇보다 좋겠지만 짝이 된 은아가 워낙 자기 세계에 몰두해 있는 애라 자꾸 서운한 일이 생깁니다. 왕따를 면한 게 아니라 더 외로워진 것 같습니다. 외로움을 참 많이 타는 때를 참 잘 형상화 했습니다. 이 외로움 때문에 왕따, 폭행 등의 불행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거든요. 나중에 소외(따돌림)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살펴 보겠지만 우선 이것만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왕따는 패배가 아니다. 인간은 외로움을 통해 진정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러니 외로움을 피하려고 하지 마라. 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라는 겁니다.
이 작품은 은아와 엄마, 은아와 동네 작가 아저씨, 은아와 위니, 은아와 롤러브레이드, 네 차원으로 읽힐 수 있는데 각각의 관계는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성장통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삶를 관조하는 듯한 은아의 시선은 이미 분리 불안 단계(거울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읽힐 수 있습니다. 즉 엄마와 떨어지는 걸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겁니다. 롤러브레이드에 집착하는 은아의 모습은 활동적 자아가 형성되는 그 나이 무렵의 전형적 심리를 잘 그렸다고 봅니다. 이 나이 무렵에는 뭐든 잘하는 게 있는 게 참 좋습니다. 공부만 하라고 하면 참 안 좋습니다. 자전거를 잘 타든 롤러브레이드를 잘 타든 뭐든 활동적으로 잘 할 수 있는 게 생기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자아가 자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자아, 심리적 자아가 형성되는 건 그 다음 일입니다. 건너뛰지 말고 그 무렵에 빠질 만한 흥미로운 취미를 갖게 하는 게 제일 좋습니다. 이 작품은 은아와 위니의 갈등에 주안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사회적 자아가 형성되면서 겪게 되는 자아 분열 현상을 그린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자아가 형성될 때 왕따를 제일 두려워 합니다. 이 시기를 잘 넘기면 혼자 있는 걸 즐기게 됩니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또래와 어울려 노는 게 제일 좋겠지요. 아무 취미가 없이 공부만 하고, 어울려 노는 또래가 없는 건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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