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널리 퍼지고 있는 캠핑 문화도 이런 흐름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니 자기 인생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를 사유하는 일은 어불성설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느냐' 하는 철학적 질문은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짓으로 놀림감이 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렇게 살아도 정말 괜찮은가' 하는 회의(懷疑)가 일상이 된 셈입니다. 주말에라도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가고 싶은 마음들이 이런 캠핑 문화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 근처에라도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들이 점점 커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가의 캠핑 장비를 사들여 도시의 생활을 그대로 자연에다 옮겨 놓아 자연을 더럽히기만 할 뿐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겠지요. 그러면서 ‘자연 속으로 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겠지요.
헨리 데이빗 소로의 실제 오두막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최근 그 폐해가 심각해지고, 그러다 보니 우리 삶의 질이 진짜 향상된 게 맞는지 의문들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이런 생태주의적 아이디어는 산업화 초창기에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월든, 숲 속에서의 생활]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가 도시를 떠나 숲 속으로 들어간 때가 1850년 무렵이니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입니다. 소로는 숲 속에 오두막집을 짓고 자급자족의 생활을 이루어냈는데 ‘월든’ 호숫가 대자연 속에서 그가 누린 삶의 질이 지금 우리들 도시 생활과 비교해 못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소로에 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우리 삶은 터무니없이 황폐해진 게 아닐까요. 우리가 지금 소비하고 있는 물질 중에서 꼭 필요한 게 얼마나 될까요. 허영심과 과시욕 때문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경쟁적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게 우리 삶의 진면목인데 우린 왜 이런 부끄러운 짓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계속 하고 있는 걸까요.
TV에서 방송된 [우리가 몰랐던 인도양 여행]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봤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기 전에 한 번만이라고 가보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휴양지 바로 옆에 산더미처럼 쓰레기가 쌓여가는 모습은 실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몰디브를 이루는 여러 섬 중에서 틸라푸쉬 섬은 쓰레기 섬이 되어 버렸습니다. 쓰레기가 섬 전체를 뒤덮은 건 이미 오래 전이고 요즘은 쌓이는 쓰레기로 하루 1평방미터 씩 섬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그 속에서 누리는 행복의 이면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면 그 휴양지에서의 풍요가 우리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물질적 행복이 사실은 더러운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듯해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몰디브 휴양지)
(몰디브의 틸라푸쉬 섬)
성실하게 일한 만큼 우리 삶은 윤택해지고 정신적으로도 여유로워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점점 커집니다. 한국의 경우 국민소득이 1970년에 비해 100배나 증가했는데 노동 시간은 지독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노동자는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긴 시간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실질 소득이 크게 늘어났다고 하지만 왜 점점 돈 때문에 더 쪼들리고 일은 갈수록 힘들어질까요. 일하는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뿐더러 일해서 번 소득 대부분을 다시 내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빈부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완화하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건 아니지만 꼭 구매해야 할 상품이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안 쓰고 모은 돈으로 고가의 명품 핸드백을 구입한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 비극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영화 [뷰티풀 그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진보하고 있는지 따져 보고 진정한 행복을 위해 어떻게 우리 삶을 일구어야 할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 영화 [뷰티플 그린]은 어찌 보면 심각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런 회의(懷疑)를 아주 유쾌한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심각한 주제를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에 담을 수도 있구나 싶기도 하고 자연과 하나가 된 인간의 삶을 아름답게 형상화하여 영화 한 편 보는 것만으로도 생태주의적 감성을 내면화 할 수도 있겠다 싶은 위대한 작품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뒤 쯤 아름다운 행성 ‘뷰티플 그린’에서 지구에 보낼 봉사자를 뽑기 위해 회의를 엽니다. 자동차가 도로를 뒤덮어 공기는 매캐하고 구역질이 나는 음식을 먹으며 사람들이 걸핏하면 짜증을 내는 지구로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고민 고민 하다가 한 사람이 나서게 되고 그가 지구인에게 진정한 평화와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키득거리면서 나도 모르게 ‘정말이지 우린 왜 이러고 있는 거지’ 하게 됩니다. 지구인을 너무나 가련하게 생각하고 있는 ‘뷰티플 그린’ 행성인들에게 나도 모르게 동화되고 말았습니다. 맞아, 우리 너무 불쌍해. 맑은 물가에서 뛰어놀기 위해서는 몇 시간을 매연을 뿜으며 자동차로 달려가야 하는, 웃기는 삶을 위해 우리 참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일해 왔는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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