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 때 선생님 몇 분과 학생들 여남은 명이 모여 ‘진실한 친구 관계’에 대해 토론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진실한 인간관계라는 게 뭘까요.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친구들 때문에 내가 스트레스 받고 손해 볼 필요가 있는가요. 남들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속으로 제 손익을 계산하는 애랑 친구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우리 현실도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다그치잖아요. 그런데 나한테 도움 되는 친구를 가려 사귀는 그런 인간 관계 별로 진실할 것 같지 않습니다. 꼭 풀어야 하지만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또 있을까요. 토론회에서 주고받은 이야기를 소설처럼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요즘 학생들은 진실한 관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사실 까놓고 말해서 왕따 되기 싫어서 친구가 필요한 거 아닌가?”
수석 선생은 늘 이런 식이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적이다. 둘러앉은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논리적으로 헛점을 꼭꼭 짚어낼 줄 아는 명희가 애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볼 필요가 뭐가 있어요? 외롭지 않으려고 친구를 사귀고 하는 건 맞는데 친구를 통해서 내 부족함도 깨닫게 되고 그러는 거지. 관계의 진실성은 아무도 모르는 거고, 그걸 그렇게 따져야 하나요?”
명희의 맞은편에 앉아서 두 사람의 말을 듣던 하늘이는 명희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지만 속으로 좀 짜증이 났다.
‘정말 수석 선생님은 왜 늘 저러시는 거야? 지난 번 모임에서도 삐딱하시더니. 도대체 누가 친구 사귀는데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한다는 거야. 그냥 이런 저런 계기로 알게 되고 자주 만나다 보면 서로를 알게 되어 우정이 생기는 거지.’
하늘이는 수석 선생님의 말도 마뜩찮지만 명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 듯 했다.
하늘이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말한다.
“저도 명희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진실성을 아무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아무런 이득이 없어도 친구와 친해지면 맛있는 것도 사주고 더 잘 대해주고 싶잖아요. 이렇게 이익을 따지지 않는 것이 그 친구에게 진실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친구가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말 해줄 때 ‘아 얘가 나를 믿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거야말로 친구가 저에게 진실성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서로 진실성을 알아가지 않나요?”
명희와 하늘이의 말에 굳어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풀렸다.
하지만 수석 선생님만이 여전히 턱받침을 한 채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말할 듯 말 듯한 수석 선생님의 행동에 아이들은 또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질문이 나올까 불안한 표정으로 수석 선생님을 쳐다본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다현이의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럼 지금 선생님 주위에 있는 친구 분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형은 생각했다.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수석 선생님에게 존재하는 친구란 어떤 존재일까. 선생님은 그 친구에게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다현의 질문에 아이들은 수석 선생님을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수석 선생님이 머뭇거리다 무슨 결심을 한 듯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겪었던 얘기를 해줄게요.”
아이들의 시선이 수석 선생님에게로 모였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에는 공부 좀 한다 했었거든. 그런데 그 놈들하고 어울리면서 완전 추락을 해 버린 거야.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 애들과 왜 어울렸을까, 뭐가 그렇게 절박했을까, 잘 모르겠어. 그 때도 그런 고민이 안 생길 수가 없지. 성적은 추락하고 선생님들은 나에게 왜 그러냐고 다그치셨고 정말 멘붕이었지.”
수석 생님은 말을 멈추고 책상 위의 손만 한참 내려보다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러다가는 내 인생이 암담해지겠다는 생각은 벌써부터 있었지. 그래서 작심을 했어. 대책 없는 저 자식들과 나는 달라. 저 놈들과 어울려서는 내 인생 종친다. 저 놈들과 관계를 끊는다. 작정했지. "
그 동안 한 마디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은형이가 짜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공부를 하려면 친구 관계도 다 끊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은형이의 직설적인 말로 다시 분위기가 썰렁해지려고 하는데.
"수석 샘 완존 삐질이 소심남이었나봐."
하늘이가 웃으며 수석 선생을 놀리자 아이들이 와르르 웃으며 다시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진지맨 수석 선생이 웃음을 머금고 아이들을 하나 하나 둘러보았다.
“너넨 그럼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거 같니? 그 놈들이 계속 나를 찝쩍거리는데 미치겠더라고” 수석 선생님이 아이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저를 괴롭히면 그 아이들을 학교 측에 학교폭력으로 신고했을 꺼 같아요.”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수민이가 말했다.
수민이 짝인 하영이는 “전 그런 상황이 오면 전학 갈 꺼에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둘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교실은 또다시 시끌벅적 해졌다.
그때 은형이가 “야, 그게 친구냐? 친구한테 그럴 수 있는 거냐?” 직설적인 은형이가 또다시 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수석 선생님은 은형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은형아 그럼 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겠니?”
“음.. 저는요, 친구들한테 진지하게 속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할 거 같아요. 친구라면 이해해주면서 도와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은형이가 대답했다.
“그럼 만약 그 친구들이 너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어쩔꺼니?” 수석 선생님이 물었다.
“친구들과 관계를 다 끊고 그냥 혼자 다닐 것 같아요.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고 스트레스도 덜 받으니까요.”
은형이는 단호하게 말하면서 상체를 세워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인성여자고등학교 교사학생 공동 창작>
어떻습니까. 학생들의 복잡한 속내가 느껴지시나요. 만약 아이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물어오면 어떻게 조언을 해주시렵니까. 어른들이 ‘친구를 가려서 사귀어라’고 말하는 건 공부 잘 하는 애 즉, 집안 형편 괜찮은 애랑 가까이 하라는 거잖습니까. 그건 제 손익을 가늠하여 친구 관계를 맺으라는 말인데 속으로는 진실한 인간관계라는 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늘 되뇌면서 이렇게 말하는 부모 속마음은 또 얼마나 복잡할까요.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친구가 다 무슨 소용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졸업하기 전 다정했던 친구 사이
전문계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태희’, ‘혜주’, ‘지영’은 학교 다닐 때 친한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나니 저마다 살기 바쁘고 만나기도 힘들게 됩니다. ‘혜주’는 서울 금융 회사에 취직을 해서 그런지 왠지 나머지 애들과는 노는 물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혜주는 예쁘고 밝아 늘 자신 있어 보였습니다. ‘지영’은 이런 ‘혜주’가 부럽기도 하고 셈도 납니다. ‘지영’이는 집안 형편도 어렵고 살 길도 너무 막막합니다. 파출부라도 해야 할 형편입니다.
‘혜주’도 겉으로는 부러움을 사고 있지만 속으로는 참 보잘것없습니다. 증권 회사 직원이라는 것도 실상은 커피 심부름이나 하는 사환에 불과합니다. 최근 부모님이 이혼하고 자기를 좋아하면서 따르던 남자 친구도 떠나 버렸습니다.
‘태희’도 인생이 막막하기는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집안이 좀 넉넉하긴 하지만 부모님이 운영하는 찜질방에서 카운트나 지키며 젊음을 보낼 순 없습니다. 꿈을 찾아 떠나고 싶은데 그 일도 참 허황됩니다. 이들이 혜주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모였는데 모임이 옛날처럼 즐겁기만 한 건 아닙니다. 뭔가 겉돌고 속으로 켕깁니다.
졸업하고 저마다 살 길을 찾으면서 소원해지는 친구 사이
성장기의 '친구 사이'를 이만큼 잘 그리고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요. 아이가 커서 청소년이 된다는 건 부모의 품을 떠나는 것이라고 단순화시켜 말할 수 있습니다. 떠나기는 하지만 아직 어른이 된 게 아니라 어디에라도 의지를 해야 하는데 그 의지처가 친구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시기를 사회적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라고 하고 이때의 주된 욕구는 사회적 욕구, 명예욕이랍니다. 이 시기를 지나야 심리적 자아가 형성되고 자아실현을 욕구하게 됩니다. 자립하게 된다는 의미인데 이때가 되어야 곁에 또래가 없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게 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고등학생 시절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사이가 사회인이 되어 저마다 살 길 찾아 떠나면서 서로 소원하게 되어가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또래 집단으로 어울릴 때에는 집안의 경제적 형편이나 어른이 되어 차지하게 될 지위나 가능성 같은 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어울려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면 더 감출 수가 없게 됩니다. 대학생인가 아닌가, 다니는 대학이 어느 정도의 급인가, 사회인이 되었다면 보수는 얼마나 되는가, 이런 따위의 차별로 사이는 멀어지기 시작하고 관계는 단절되고 맙니다. 진실한 우정은 이런 격차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요. 저마다 다르게 이룬 자기 세계를 서로 존중하며 관계를 지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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