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일은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에게 총 맞아 죽은 그때쯤 일어났다. 박정희 대통령과 고향이 같다는 걸 나중에야 알고 그 인연이 참 묘하다 생각했지만 그 나이 때는 시간을 거스르는 인연의 끈을 짐작할 나이가 아니었다. 그 처녀 선생님이 박정희 대통령과 한 고향 사람이란 것도 신기하지만 그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직접 찾아올 줄은 꿈에도 짐작할 수 없었다. 무슨 운명인가 싶은데, 선생님이 우리 집을 방문한 건 박 대통령 저격 사건 수십 일 전이었다. 그 때 나는 영양실조로 왼쪽 무릎 관절염이 심각해져 두어 달 동안 학교를 못 나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탄광 광업소 입구에서 광부들을 상대로 한 손목시계 나까마(행상)로 보잘것없는 돈벌이를 하셨고 어머니는 화장품 외판 일로 하루 종일 시내를 돌아다니셨다. 두 분이 그렇게 벌어 식구들이 근근이 먹고 살았다. 그러니 매일 아무도 없는 집에서 나 혼자 퉁퉁 부은 무릎으로 때 구정물이 흐르는 요 이불 위에서 하루 종일을 누워서 버텨야 했다. 염증이 심해지면 열이 올라 까무룩 정신을 잃고는 했지만 방 윗목에 차려놓은 밥상을 밀고 당기며 하루 땟거리를 혼자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날도 그렇게 붉게 상기된 얼굴로 열을 견디며 혼자 방안에 누워 있었다. 처녀 선생님은 경상도 구미의 갑부 집 딸이라 늘 차림이 화사하기 그지없었고 그 시골구석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면서도 코카콜라 중독이었다. 그런 예쁜 처녀 선생님이 얼룩덜룩 더럽기 그지없고 너덜너덜 해지기까지 한 외짝 방문을 열고 방구석에 누워 상체만 일으키고 있는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현수야"
"어! 선생님께서 어떻게"
머릿속이 까맣게 되어 수치심마저 느끼질 못하는 순간이었다. 난 엉거주춤한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고 선생님은 방문 앞 부뚜막에 돌아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기만 했다. 한참 정도가 흐른 것 같다. 나는 그제서야 지저분한 방안을 둘러보았고 이부자리 곁에 널브러져 있는 더러운 걸레에 신경이 쓰였다.
"어머님은?"
선생님은 울먹이는 소리로 겨우 물었다.
"장사 나가셔서 아직……."
나는 기억을 잘 믿지 않는다. 어떤 순간은 실제보다 더 세밀하게 기록이 되고 어떤 때는 뭉텅뭉텅 건너뛰니 기억이란 지극히 주관적이고 제멋대로이다. 선생님이 우리 집 문간에 머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선생님이 돌아앉아 우는 장면이 선생님의 갑작스런 가정방문 시간을 죄다 차지하여 버렸기 때문이다.
가난한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살았던 집은 일제시대에는 꾀나 번성했던 일본인 의사 병원의 뒤뜰 입원실 두 칸이었다. 우리 집이 세들 무렵에는 병원 건물이 이미 폐가가 되어 버린 뒤였고, 동네 사람들은 병원 뒤뜰에 아기 시체가 많이 묻혀 있다고 수군거렸고 어두워지면 병원 뒤뜰로 들어오길 꺼렸다.
동네 어른들은 우리 가족이 세 들어 사는 병동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죽어 나갔고 내가 아픈 것도 귀신이 씌어서 그렇다고 했다. 우리 집 살림 형편으로 대처 병원으로 가볼 수는 없고 동네 의사는 이대로 두면 다리를 자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는 걸핏하면 눈물을 떨구었지만 별수 없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행상을 나가야 했다.
추석이 지나고 하루가 다르게 선득해질 무렵이 되어서 나는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고열에 시달리는 일은 거의 사라지고 입맛이 돌기 시작하니 식구들 얼굴의 시름도 차차 사그라들었다.
내가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어 그 해 추석에는 아버지 혼자 성묘를 다녀오셨고, 집안에 무슨 중대사라도 있는지 재당숙 어른께서 잠깐 다녀가시기도 했다. 어른께서는 희끗희끗한 수염이 한 자는 되어 보였고 광목 두루마기에 명아주 지팡이 차림이었다. 넉넉치는 않지만 기품 있는 시골 선비의 모습으로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분께서 우리 집에 오신 적은 없었다. 명절 때 성묘 갈 때마다 뵙기는 했지만 우리 집에 오신 건 처음 있는 일로 무슨 중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 어른께서는 내가 누워 있는 방 윗목에 앉아 아무 표정 없이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보시다가 금새 일어나셨다. 사실 나는 그때 그 분이 나와 무슨 관계인지도 잘 몰랐다. 그냥 위엄을 갖춘 집안 어른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 분 앞에서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큰 불경을 저지르는 것 같아 어쩔 줄을 모르고 있는데 그냥 훌쩍 일어나 나가버리셨다.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어른께서 나가시자 아버지는 급히 뒤따라 나가시고 방 안에는 나 혼자만 남았다. 부엌 문 밖에서 두 분이 말씀을 나누신다. 잘 들리지는 않지만 내 이름이 오르내리고 아버지는 아무 대답도 없이 듣고만 있는 것 같다.
"그리 알게. 다 현수 제를 위해서네"
" ........"
그렇게 어른께서 다녀가시고 아버지는 또 고향엘 다녀오셨다. 나중에 엄마와 아버지가 나누는 얘기를 통해 할머니 묘를 옮기는지, 화장을 하는지, 대충 짐작을 할 뿐이지 그런 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나'라고 여기는 '나'는 어디에서 생겨난 것일까. 나는 '나'라는 게 참 허무맹랑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은 나쁜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 물론 좋아하는 것은 유쾌한 기억과 연관되어 있겠지.
내 기억과 상관없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내림이라는 것도 있다. 생명체라면 예외 없이 갖는 욕구에 지배를 받고 있기도 하고 수천 년의 문명 속에서 익숙해진 습관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는 어릴 때 불에 덴 것처럼 남아있는 기억이 나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나'라는 건 수놓아진 무늬처럼 옴짝달싹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의 의지대로 '나'를 계발하거나 창조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어릴 적 경험은 수치스러울수록 좋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감추기만 했던 생채기가 나중에는 묘한 아우라를 드리우며 도드라지는 느낌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거다. 하기야 그 색깔과 무늬만 다를 뿐이지 어릴 때 아픈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어린 시절에는 가난이 나에게는 감추고 싶은 수치였다. 나중에 그 가난한 유년 시절이 무슨 장구한 사연처럼 내 주위를 감싸고돌면서 나를 우쭐거리게 만들 줄은 정말 몰랐다. 참 어설픈 젊은 시절이었다. 기계충 자국과 빵잽이 경력이 삶의 어떤 진실을 말할 수 있는지 지금은 덤덤하기만 하지만 한창 때에는 그게 무에 그리 절절했던지.
열다섯 살 어린 나이에 오래 앓아누워 있으면서 나는 세상을 비로소 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 해 가을이 지나면서 내 인생이 뭔가 바뀌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내 주위를 감돌았다. 처녀 선생님이 우리 집 방문 앞에서 눈물을 떨군 일이 나에게 한 조각의 뚜렷한 기억으로 새겨졌다. 오래된 할머니의 묘를 다시 파헤치고 그 속에서 하나도 썩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검은 뼈들을 수습해 태워버린 이야기도 화인처럼 뇌리에 새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묘하게도 나는 시간의 씨줄과 인간관계의 날줄이 동시에 '나'와 매듭이 지어지는 극적 경험을 그 어린 나이에 겪어 버린 것이다.
그때 화장하여 추스른 할머니의 뼈를 나에게 먹였다는 사실을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먼저 알았다면 안 먹겠다고 발버둥을 쳤을까. 언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도 기억이 감감하다. 어머니가 먹기 좋게 미숫가루에 타먹였다고 말할 때, 남 얘기 듣듯이 담담했던 걸 보면 나이가 꽤 든 한참 나중이었던 게 분명하다.
내가 태중에 있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는 그보다 훨씬 먼저 돌아가셨으니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른다. 사진 몇 장과 어른들을 통해 들은 짧은 이야기 몇 마디가 기억의 전부이다. 그러니 내 뿌리가 시간을 한참 거슬러 잇닿아 있다는 느낌이 있을 리 없다. 이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스물이 되면서부터 내내 제 뿌리의 근본을 허전해 했으니 말이다.
내 나이 스물 가까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름자를 올린 그 알량한 족보를 뒤적이며 '퇴계 후손'을 읊조린 건 바로 이런 연유에서일 듯하다. 개명천지에 혈족이라니 터무니없다. 할머니의 뼛가루를 마신 건 끊어진 내 기억의 씨줄을 먼 과거로 이어준 셈이 되었다.
대통령이 죽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학교에 나가게 되었다. 할머니의 뼛가루가 효험이 있었던 것일까. 잘라내야 할지도 모를 만큼 심각했던 무릎 염증은 웬만큼 가라앉았고 며칠만 더 결석을 하면 유급이 되고 말 정도로 출석 일수가 모자라 다리를 절며 학교 출석을 했다.
가정방문을 오셨던 박미경 선생님을 먼저 찾아가 봬야 했다. 교무실에 계실 선생님께 찾아가 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담임의 눈치가 걸려 머뭇거리며 첫날이 그냥 지나갔다. 학급 애들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데 난 그 애들이 멀게만 느껴졌다. 저 애들에 왜 아직 저러고 있을까 싶기도 했고, 내가 외톨이가 되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키득거리며 몰려다니는 애들이 낯설기만 했다. 그냥 막막했다. 하루가 너무 길었다.
아마 하루 일과가 다 끝날 때쯤 되어서일 거다. 박 선생님이 휴식 시간에 소란스러운 교실로 불쑥 들어오시더니 큰 소리로 물었다.
"현수 왔냐?"
나는 머뭇거리며 엉거주춤 일어났고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어, 그래. 왔구나."
그리고는 그냥 뒤돌아 나가셨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듯했다. 아무튼 교무실까지 찾아가 뵙지 않아도 되니 한시름 덜었다. 여름 방학까지 합쳐 4개월 가까이 학교를 나가지 못했는데도 담임은 집에 와 보지 않았고, 지난 해 담임이셨던 박미경 선생님은 아픈 나를 찾아와 눈물까지 흘리셨으니 어린 나로서도 처신하기 난감했던 게 분명하다. 그런저런 이유로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고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버텨낼 큰 힘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신기하기만 하다. 오래 병석에 누워 지내다가 출석 일수가 모자라 제적될 위기에 처해 억지로 출석을 한 것인데 어떻게 학교생활을 견디어낼 수 있었는지 참 놀랍다. 그뿐이 아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혀를 내두를 만큼 신기한 일도 벌어졌다. 내가 봐도 참 신기한 일이긴 한데 그 일로 또 하나의 상처를 입었으니 마냥 좋아할 수도 없었다.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게 시골 동네 철없는 중학생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것도 사춘기 중병을 앓고 있는 중2가 말이다. 조기를 걸고 조회 때마다 묵념을 하는가 하면 전교생이 참여하는 추모 글짓기 대회도 열고 했지만 어느 놈 하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담임의 고함 소리에 고개를 수그리고 쓰는 척은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두어 줄 끄적거리고 말 뿐이었다.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촌동네 학교 전교생 백일장에 몇 놈이나 글을 썼을까? 내기야 내지만 대부분 백지나 다름없을 테고 시상이라고 해봐야 다 쓰잘데없다고 시큰둥했을 것이다. 입선이니 가작이니 하는 것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다들 관심이 없을 테지만, 거의 한 학기 내내 학교를 나오지 않던 내가 장원이라니 누구보다 당사자인 내가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다들 시시껄렁 되지도 않을 말을 두어 줄 써냈으니 그 중 장원이라는 게 대단할 것도 없지만 오랜 병치레로 기운이 바닥난 나로서는 사뭇 딴판일 수밖에 없었다.
별 얘기도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젊은 시절에 문경 보통학교에서 선생을 한 적이 있다는 걸 아버지한테 자주 들었고, 할아버지 아버지 나 삼 대에 걸쳐 구전된 그 이야기를 중병을 앓다가 겨우 복교하여 이렇게 글로 쓰게 된 게 참 신기하다는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적었을 뿐이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이 연상되는 대로 적었을 뿐인데 지금 돌이켜 보면 참 신기한 게 많다.
가정 방문을 오신 박미경 선생님은 박정희 대통령과 고향이 같고, 우리 할아버지는 문경 보통학교가 있던 마을에 사시면서 늘 동네 분들과 나중에 대통령까지 된 그 젊은 멋쟁이 남선생 얘기를 나누셨던 분이다. 그리고 그 손자인 나는 그 대통령이 죽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학교를 다시 나오게 된 것이다. 이만해도 사연이 참 묘하지 않은가.
참 신기하기도 하지만 나한테는 병마를 이겨내기에 큰 힘이 된 일이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좋기만 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자랑할 만한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에 또 다른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글짓기 대회가 끝나고 하루나 이틀 지나서였다.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고 애들이 이리저리 몰려 왁자지껄 떠드는 중에 한 반 친구 정욱이가 창밖으로 냅다 소리를 지른다.
“미경아”
저놈에 자식은 여전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한 반을 자주 하여 단짝으로 지내다시피 했는데 내가 오래 아프고 난 뒤로는 서로 말도 걸지 않는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었다. 속으로는 한 번도 병문안을 오지 않은 게 서운하기도 했지만 우리 집이 너무 초라하여 집에 데리고 간 적이 없었으니 그렇기도 하겠지 하고 말았다. 내가 변한 건지 저놈이 망나니가 되어 가는 건지 교정에서 처녀 선생님을 또래 친구 부르듯이 하며 수작을 걸 정도로 뻔뻔해진 것이 도대체 꼴사나웠다. 그 짓을 해놓고 저희들끼리 키득거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교실 앞문을 박차고 들어오셨다.
“어느 놈이야?”
“빨리 안 나와.”
위엄을 갖춰 큰 소리로 겁을 주려고 하지만 이놈들은 선생님의 그런 모습도 보기 좋다는 표정들이다. 고개를 숙이고 저희들끼리 눈짓을 하며 웃기까지 한다. 선생님도 그렇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눈을 부라리긴 하지만 왠지 과장되게 연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돌아서서 나가신다. 잠시 주춤하더니 잊었던 게 생각난 모양으로 뒤돌아 서신다.
“참! 현수, 나 좀 보자.”
눈을 부라리며 소리 지르던 표정은 어디 가고 살짝 미소까지 띄우니 눈짓을 주고받으며 희희덕거리던 애들도 뭔 일인가 싶은 모양이다. 나 또한 영문을 몰라 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로 향했다. 뒤에서 정욱이 패거리들이 우수수 모여드는 분위기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애들한테 인기가 많은 예쁜 처녀 선생님한테 불려간다는 게 무슨 대단한 자랑거리라도 되는 양 우쭐할 만도 했겠지만 내 속은 그리 단순치 않았다. 교무실 선생님 책상 앞으로 다가가자 선생님께서 따스한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현수야, 글이 아주 좋더라.”
“건강도 회복하고, 학교 돌아오자마자 수상도 하고, 참 잘 됐다.”
“그리고 이거 한번 먹어봐라. 집에서 보내 주신 건데 너무 많아서 많이 남는다.”
선생님께서 ‘원기소’를 주시다니. 촌구석 판잣집 애가 ‘원기소’가 웬말인가. ‘원기소’ 한 통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두 눈을 꿈벅꿈벅 하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말을 못 잇고 어찌할 줄 몰라 머뭇거린다. 선생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톡톡 두르리시며,
“그거 잘 챙겨 먹고 건강 잃지 않도록 조심해. 자, 이제 교실로 가자.”
교실 문으로 들어서는데 애들이 다 나를 쳐다본다. 모여있던 정욱이 패거리들은 쏘는 눈빛으로 “저 새끼 뭐야.” “미경이가 제 왜 부른거야.” 궁시렁거린다. 나는 손에 든 ‘원기소’가 애들한테 보일까봐 뒤춤으로 감추고 자리에 가 앉았다. 담임이 신경쓰여 가 뵙지도 못했는데 선생님께서 교실로 직접 오셔서 날 부르시고 이렇게 영양제까지 챙겨주시니 너무 고마운데 이 일로 나는 애들 사이에 더 심한 왕따가 될 게 뻔할 테고 남은 학기를 어떻게 지낼지 걱정도 되고 속마음이 심란한데 옆 반 반장이 교실로 들어와 정욱이를 부른다.
“정욱아, 박미경 선생님이 너 부른다. 빨리 가봐.”
고개를 갸웃거리며 교실에서 나갔던 정욱이가 한참 지나서 돌아왔다. 교실로 들어서는 표정이 화가 단단히 난 듯하다.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야 이 새끼야.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소리를 지르며 나한테 다가오더니 대뜸 주먹질을 하려고 팔을 높이 쳐든다. 뒷자리 대환이가 벌떡 일어나 정욱이 팔을 잡으며 막아선다.
“야, 왜 이래? 무슨 일이야? 미경 샘이 뭐라 그랬는데?”
“아, 이 새끼가 꼰질렀다잖아.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너 죽어 볼래?”
대환이가 말려줘서 주먹질은 피했지만 잠시 화가 가라앉는 듯하여 대환이가 잡았던 팔을 놓자 정욱이가 바로 손바닥으로 내 뒤통수를 내리쳤다. 주먹으로 낯짝을 맞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맨날 쌈박질이나 하는 애한테 뒤통수를 맞았으니 통증이 말이 아니다. 아픈 건 둘째치고 한 반 애한테 뒤통수를 맞았다는 게 너무도 창피해서 순간 혼이 나갔나 보다. 나는 벌떡 일어나 두 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를 질렀다.
“아 씨, 이거 뭐야? 니가 나한테 왜 이래?”
“야, 이 새끼야 니가 꼰질렀잖아.”
“뭔 소리야 니가 봤어? 봤냐고?”
옆자리의 애들이 둘 사이를 가로막아 주먹질은 오고갈 수 없었지만 눈을 부라리고 소리를 질러댔다. 양팔이 붙잡혀 손을 쓸 수 없자, 정욱이 발길질로 나 가슴을 걷어찾다. 나는 그만 뒤로 나자빠지고 말았다. 가슴을 부여앉고 버둥거리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난로 뚜껑을 집어들고 소리쳤다.
“야, 이 새끼야, 날 뭘로 보는 거야? 너 죽을래?”
“그래 이 새끼야, 병신같은 새끼, 너 까짓게 뭘.”
그 순간 나는 난로 뚜껑을 던졌고, 둥글게 날이 선 쇠붙이는 정욱이 정수리에 정통으로 맞았다. 정욱이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통을 움켜쥐고 물러나는데 이마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겉으로는 씩씩거리며 기세가 등등해 보였겠지만 속으로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순하고 착한 애로 어른들 칭찬을 받아 왔고 동네 애들하고도 싸움질 한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심각한 질병으로 장기 결석을 하고 절룩거리는 아픈 몸으로 겨우 출석을 한 지 며칠이 되었다고 노는 애들 중 으뜸이라는 애 머리통을 터뜨렸으니…….
정욱이는 양호실로 갔고 나는 담임 선생님한테 불려가 교무실 바닥에 꿇어앉아 두 팔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 표정은 너무 차가웠고 미경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담임 선생님을 설득한다.
“선생님, 현수가 무릎을 심하게 앓았잖아요. 좀만 봐주세요.”
“봐 주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정욱이 부모가 오면 뭐라 하겠어요.”
“현수가 좀 심하긴 했지만 게들도 잘못했잖아요. 별문제 없을 겁니다.”
“정욱이 엄마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아요. 게 엄마가 시장 바닥을 들었다 놨다 한데요.”
“너무 걱정 마세요. 제가 잘 말씀드려 볼게요.”
미경 선생님 덕분에 나는 교무실 바닥에서 일어나 상담실로 자리를 옮겼다. 한참 지나 정욱이 엄마가 오셨고 담임 선생님과 미경 선생님, 교감 선생님과 함께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목소리가 낮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불려 나갔고 담임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정욱이 엄마한테 머리 숙여 잘못을 빌었다. 일은 신속하게 매듭이 되었고 나는 집으로 갔다.
하루 종일 치러냈던 일이 올 한해 동안 겪었던 고난에 버금갈 만큼 힘겨워 집에 돌아오자마자 자리에 누웠다. 부모님께서 돌아오시려면 한참을 더 있어야 하니 혼자 외로움을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뒷담 너머에서는 동네 애들이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났다. 동생도 거기 어울려서 노는 모양이다. 나도 아프기 전에는 동네 애들하고 참 잘 어울렸는데 이렇게 된 게 다 이놈에 무릎 때문인 거 같아 서럽기만 하다. 누워서 쳐다보는 천장이 흐릿해지도록 눈물이 고인다. 어른들이 나눈 얘기 중에 ‘못 먹어서 걸린 병’이라는 말이 귓속을 맴돌고 결국 눈물은 귓구멍으로 흘러내렸다. 그러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엄마 목소리에 잠이 깼다.
“현수야 왔냐?”
미닫이 문이 부스스 열리고 방으로 들어오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덜컥 겁부터 났다. 허겁지겁 일어나 요 이불을 말아 윗목으로 밀어제끼고 다소곳이 앉았다.
“학교는 잘 갔다왔냐?”
“예.”
“배 고프지?”
“아니요 괜찮아요.”
“현정이는 어디 갔나?”
“뒷골목에서 애들이랑 노는 것 같아요.”
“그래. 잠깐 있거라. 밥부터 하자.”
엄마는 부엌으로 나가 서둘러 밥을 안치고 나는 방 청소를 했다. 얼마 안 있어 동생이 들어와 조잘거렸고 아버지도 들어오셨다. 네 식구가 다 모이니 오막살이 집에 생기가 돌았다. 나도 낮에 겪었던 일을 다 잊은 양 까불이 동생과 장난을 치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엄마가 급히 차린 밥상에 둘러앉아 막 숟가락을 드는데 문 밖에서 누가 엄마를 찾았다.
“현수 엄마.”
나는 깜짝 놀라 들고 있던 숟가락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엄마는 방문을 열고 부뚜막으로 내려서면서 정욱이 엄마를 반겼다.
“어쩐 일이여?”
“그게 말이야…….”
“무슨 일이야? 뭔 일 있어?”
“이리 좀 나와봐.”
엄마는 마당으로 나갔고 아버지는 아무 표정 없이 식사를 하셨다. 나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숟가락을 두 손으로 쥐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너 왜 그래?”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아무 대답을 못하고 억지로 밥을 입에 떠넣었다. 숟가락으로 밥을 뒤적거리고 떠넣은 밥을 우물거리며 삼키지도 못하고 온통 신경은 문밖으로만 쏠렸다. 아버지가 밥숟가락을 내려놓을 즈음 되어서야 엄마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버지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별일 아닙니다. 현수하고 정욱이가 학교에서 싸웠나봐요.”
아버지가 나를 보면서 물었다.
“현수야 학교에서 뭔 일 있었나?”
“정욱이가 나를 때려서 저도 때렸어요.”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고 대화는 엄마 아버지 사이에서 이어져 나갔다.
“정욱이 머리가 터졌나봐요.”
“무슨 말이야? 얘가 그랬다는 말인가?”
“얘가 뭘 던졌나봐요.”
아버지가 나를 보며 다시 물으셨다.
“정말이냐? 왜 그랬어?”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괜찮아요. 정욱이 엄마가 정욱이가 요즘 너무 까분다고 그냥 신경 쓰지 마라고 그럽디다.”
“헛 그참 요즘 애들…….”
다음 날 아침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골목 어귀 쯤에 정욱이가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나를 보고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붙이고 있었지만 아픈 티는 별로 나지 않았고 나를 보는 눈빛도 사납지 않았다. 센척하는지 빙긋이 웃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신경 안 쓰이는 척하며 지나치려고 했다. 그런데 정욱이가 내 옆으로 따라 걷는다.
“괜찮냐?”
나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너 미경 샘 좋아하냐?”
나는 좀 짜증이 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내가 꼰지른 거 아니거든.”
“그래 그래 내가 잘못 봤다. 그만하자.”
그 날 이후로 내 주변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 복도에서 나를 지나치는 애들 표정이 예전과 달랐고 멀리서 저희들끼리 수군수군 내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정욱이 패거리들이 교문 밖에 나를 기다렸다가 나랑 같이 걸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같이 남의 집 감 따먹고 뒷산에 밤 주워러 가고 하면서 어울리는 재미가 생겼다. 할머니 뼈가 퇴계 혈통으로 나를 다시 나게 하고 미경 샘 덕분에 할아버지 박통 얘기로 내 속이 부쩍 크긴 했지만 정욱이가 없었다면 그 시절 얘기가 이렇게 나올 수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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