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소설

꽃잎은 떨어져

체거봐라 2022. 7. 6. 00:30

내가 왜 그 자리에 있었던가. 기억들이 조각조각 찢어지어 파편화되니 듬성듬성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이러다가는 큰 줄기마저 다 잊혀지고 말아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허탈한 심정이 자꾸 내 가련한 생을 들춘다. 1991년, 30여 년 전의 일이니 잊혀질 만도 하지만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픈 상처는 저승에 가도 잊혀질 수 없고 깊은 상처일수록 꽃을 피워내기 마련이니 기억의 파편이 사라지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으리라.

전두환 정권을 이은 노태우 집권기였다. 광주 학살로 권력을 잡았던 전두환 대통령이 4.13 호헌 조치로 군부 독재를 지키려 하자  민주화운동은 들불처럼 일어나 결국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하기 이전에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았다. 1960년 4.19의거로 이승만이 하야하고 민주 정부가 세워졌는데 1년만에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독재가 시작되었고, 10년 뒤 1972년에 유신독재 체제가 들어설 때 대통령 간선제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설마?’ 하겠지만 대통령 후보를 한 사람 추대하고 선거인단이 체육관에 모여 100% 찬성으로 대통령을 뽑는 이 웃기는 짓이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간 자행되었다. 의기 있는 젊은이들이 나서서 전두환 정권의 말도 안 되는 이 짓거리를 혁파한 게 87년 6월 항쟁이다.

이한열 학생이 최루탄에 머리가 깨져 죽고 박종철 학생이 고문을 받다가 죽는 등 끔찍한 비극을 목도하고 들불처럼 일어난 6월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 군부정권은 끝나게 됐지만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야당이 분열하면서권력은 군부 독재정권 한패거리 노태우에게 되돌아갔고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다시 일어난다. 경찰의 폭력 진압으로 어린 학생 강경대 군이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 정국은 뜨겁게 달아 올랐고 그해 5월 한 달 동안 10여 명의 어린 대학생들이 연이어 분신 자결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전국 각처에서 고등학생이 분신 자결하기도 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단체들은 범국민대책회의를 꾸리고 명동성당 단식농성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각 단체의 중심 활동가들이 단체 대표로 단식농성에 참가했는데 내가 그 자리에 어떻게 끼어들게 되었을까.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당시 일들이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강경대 학생 치사 사건', '연쇄 분신 사건' 등 짧은 기사 제목만 뇌리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참 다행이다. 어쩌면 한 살만 더 먹어도 기억의 씨줄이 끊어질지도 모르는데다가 환갑도 안 된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진 마당이니 하루 이틀만 미뤄도 얘기 끈은 끊어질 게 뻔한 상황이라 흩어진 기억 파편을 주섬주섬 긁어 모아 바느질을 하듯 꾀어맞춰 새김질을 할 수밖에 없다.

단식 농성 닷새째인가,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지지방문을 한다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급히 후배들을 데리고 예수님 조각상 앞으로 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 겸 인사를 하는데 마지막에 잘 아는 동기 지현이가 불쑥 물었다.
"너가 왜 여기 있어?"
나는 속으로 '그러게 말이다.' 대꾸를 하고 입을 다물었다. 머리 속으로는 지난 두 해 동안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재작년에 학교를 휴학하고 단기사병으로 복무하면서 참 많은 일을 겪었는데, 지나고 보니 한순간의 일처럼 파편 조각 합성사진 한 컷에 불과하니 참으로 덧없다는 생각이 나를 휘감아돈다. 명문대에 들어가 법관이 되겠다는 욕심에 빠져 딸자식을 버리고 새 여자를 들인 외할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 단기사병으로 근무하며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맹랑한 짓거리, 군복무를 하면서 광산 노동자 파업 투쟁을 지원했고 결국 노동운동에 투신하겠다고 결의를 다지게 되고 첫사랑에게 버림을 당한 비극, 구로공단 위장 취업을 준비하기 위해 남서울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 위장 취업 준비팀에 들어갔다가 결국 팀대표로 명동성당 단식투쟁에 가담하게 된 우여곡절, 위장 취업을 하겠다면서 대학교 학적을 유지하고 휴학을 하는 바람에 단식농성자 명단에서 동창 명단을 발견하고 과 후배들이 지지 방문을 오게 된, 참으로 맹랑한 사연들이 짓찢어진 조각들로 덕지덕지 븥어있다.
<계속>















































내가 왜 그 자리에 있었던가. 기억들이 조각조각 찢어지어 파편화되니 듬성듬성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이러다가는 큰 줄기마저 다 잊혀지고 말아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허탈한 심정이 자꾸 내 가련한 생을 들춘다. 1991년, 30여 년 전의 일이니 잊혀질 만도 하지만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픈 상처는 저승에 가도 잊혀질 수 없고 깊은 상처일수록 꽃을 피워내기 마련이니 기억의 파편이 사라지는 것만큼 서러운 일도 없으리라.

전두환 정권을 이은 노태우 집권기였다. 광주 학살로 권력을 잡았던 전두환 대통령이 부하였던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총 맞아 죽고 민주화운동은 들불처럼 일어나 결국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하기 이전에는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았다. 1960년 4.19의거로 이승만이 하야하고 민주 정부가 세워졌는데 1년만에 쿠데타가 일어나 군사독재가 시작되었고, 10년 뒤 1972년에 유신독재 체제가 들어설 때 대통령 간선제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설마?’ 하겠지만 대통령 후보를 한 사람 추대하고 선거인단이 체육관에 모여 100% 찬성으로 대통령을 뽑는 이 웃기는 짓이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간 자행되었다. 의기 있는 젊은이들이 나서서 전두환 정권의 말도 안 되는 이 짓거리를 혁파한 게 87년 6월 항쟁이다.

이 박종철 학생이 최루탄에 머리가 깨져 죽고 이한열 학생이 고문을 받다가 죽는 등 끔찍한 비극을 목도하고 들불처럼 일어난 6월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 군부정권은 끝나게 됐지만 직선제 대통령선거에서 권력은 군부 독재정권 한패거리 노태우에게 되돌아간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다시 일어났고 경찰 폭력 진압 어린 학생 강경대 군이 사망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나 정국은 뜨겁게 달아 올랐고 그해 5월 한 달 동안 10여 명의 어린 대학생들이 연이어 분신 자결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전국 각처에서 고등학생이 분신 자결하기도 했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이끌어온 단체들은 범국민댇책회의를 꾸리고 명동성당 단식농성 투쟁에 돌입하게 된다. 각 단체의 중심 활동가들이 단체 대표로 단식농성에 참가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 어떻게 끼어들게 되었을까. 너무 오래 전 일이라 당시 일들이 기억에 별로 남아있지 않다. '강경대 학생 치사 사건', '연쇄 분신 사건' 등 짧은 기사 제목만 뇌리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은 것마으로도 참 다행이다. 어쩌면 한 살만 더 먹어도 기억의 씨줄이 끊어질지도 모르는데다가 환갑도 안 된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진 마당이니 하루 이틀만 미뤄도 얘기 끈은 끊어질 게 뻔한 상황이라 흩어진 기억 파편을 주섬주섬 긁어 모아 바느질을 하듯 꾀어맞춰 새김질을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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