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영어마을에 갇힌 아들에게

체거봐라 2008. 5. 22. 18:32

영어마을에 갇힌 아들에게


  인성여자고등학교 이한수


잘 지내고 있는가? 통신조차 되지 않는 일주일은 생각보다 길구나. 이렇게 떨어져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마음 한 켠이 허전한 느낌을 한시도 지울 수 없네. 인간처럼 오랫동안 새끼를 돌보는 동물이 없다고 하는데 우린 얼마나 더 있어야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인도의 현자 '비노바 바브'는 "참다운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말씀이 부모 자식 간에도 들어맞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부모는 자식을 만들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잘 되지가 않아. 일주일 학교를 떠나 있는데도 '학교를 빠져도 괜찮을까. 문제 없을까' 조바심하는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없나봐.


우리가 시골에서 흙을 만지고 산다면야 산과 강이 아들을 다 길러주겠지만 도시에는 험한 것들이 너무 많아 잠시 돌보지 않으면 아들이 다칠까봐 어쩔 수 없이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네. 내가 자꾸 식구들을 데리고 도시를 벗어나려고 하는 건 다 그런 이유 때문이야. 도시에서는 사람들 욕심 때문에 온갖 오염된 것들이 만들어지고 팔리고 하잖아. 그래서 늘 잔소리를 하고 성가실 정도로 관심이 많은 것이니 아들이 이해를 좀 하게.


아들이 나중에 깨닫게 되기를 바라는데 물질은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네. 물론 물질적 풍요는 행복해지는 데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 그러나 참다운 행복을 얻는 데는 물질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네. 아들은 '참다운 행복'이 뭔지 지금은 잘 알 수 없겠지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게. 뭐든 넉넉해지면 별로 귀하게 보이지 않잖아. 바라던 게 이루어지면 그걸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되잖아. 이렇듯 나를 지금 유쾌하게 만드는 것이 나중에는 별로 보잘것없는 것이 될 수 있지.


지금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소중한 것이 나중에는 식상한 것이 되어 버려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는 것들이 살아가면서 하나 둘 늘어날 거야. 그렇게 하나하나 잃어가면서 제일 나중에 남는 게 뭐가 될까? 영생(죽지 않음)일까?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일까? 부귀해지는 것일까? 제일 나중 남는 게 뭘까? 다 이루어 더 바랄 게 없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지금이 더 행복한 건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만족이 곧 행복인 건 아닌 거 같아. 그리고 내가 지금 갖고 싶은 것이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는 진짜 귀한 건 아닌 거 같아.


아들은 '참다운 행복'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대충은 알게 되었을 거야. 무엇이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는지 아는 게 쉽지 않네. 나도 아직 잘 모르겠어. 계속 공부하는 이유도 그기에 있어. 난 참다운 행복을 얻고 싶거든.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한 가지 정도는 짐작할 만해. 돈을 벌 목적으로 만들어진 상품들은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내 마음과 몸을 다치게 할 가능성이 많다는 거야. 이거 하나는 어렴풋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아. 우리 주변에는 그런 게 넘쳐나. 참 좋은 것이라고 막 선전을 하지만 사실은 내 주머니의 돈을 탐내고 있는 거야. 그런 걸 갖는 게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을 거야.


아들, 많은 걸 보도 듣게.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 줄 보물을 찾아 떠나는 탐험 여행이라고 생각하게. 그리고 조심하게. 돈벌이 하려고 만들어진 상품은 욕심의 때가 많이 묻어 있어서 탐험 여행을 망치게 할 수 있다네. 아들이 엄마 아빠에게 소식을 전할 수도 없는 [영어마을]에 들어가서 흥미로운 탐험을 할 수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워. 다만 스스로 깨닫길 바랄 뿐이야. 탐욕에 의한 성취는 참다운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거야. 다녀온 뒤의 실망감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가 또 아들에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네. 참다운 교사는 가르치려고 들지 않는다는데... 세 살배기 동생이 저쪽에서 뭘 하는 불러도 돌아보지도 않네. 제 혼자 참 잘 배우고 있는 것 같네.


2008.05.19 인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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