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차라리 대학을 거부하라.

체거봐라 2008. 5. 24. 10:23

차라리 대학을 거부하라.

-명문대학에 가고 싶다는 아들에게-


  아들아, 대학입학시험이 끝났구나. 너는 아직 어려 먼 훗날 일이라 여기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부모가 아기를 가지면서부터 태어날 아이의 대학 수학을 고민해야만 한단다. 너도 벌써부터 명문대학에 가겠노라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더냐. 온국민이 배움에 관심을 갖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너가 공부를 잘 하면 얼마나 다행이겠냐. 그런데 나는 이런 관심과 열정이 고맙고 대견하지만은 않구나.

  올해에도 시험장 정문은 선배들의 '대박'을 기원하며 밤을 꼬박 새우는 후배 학생들로 북새통이었단다. 시험장마다 금속탐지기까지 동원되어 살벌한 분위였던 게 작년과 달라진 거랄 수 있을까. 다들 왜 이렇게 난리들인지 너는 알고 있느냐? 대학, 큰 학문이란 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 학문하는 목적은 진리 추구에 있단다. 이 말이 참으로 공허하게 들리지만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말처럼 분명하고 옳은 말이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말은 배우고 궁리해서 알아낸 지식이 모든 이들의 행복을 가져온다는 의미이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자신이 터득한 지식으로 남보다 더 우월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단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기를 쓰고 대학이란 데를 들어가려고 할까? 배우는 자나 가르치는 자나 한결같이 남보다 더 뛰어나기를 바라는 것 같구나. 학문을 하러 대학엘 가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 하러 대학엘 가려는 것처럼 내게는 보이는구나. 아들아, 너는 아직 그 이치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구나. 한 나라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이웃 나라가 가난해져야 한다는 것을, 부자가 되는 원리는 적은 노력으로 큰 이득을 얻는 것이라는 것을, 남보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남의 것을 훔쳐온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너도 곧 알게 되겠지.   

  아들아, 나와 함께 차고 놀던 축구공이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이 손이 부르트도록 고생해서 만든 귀한 물건이란 걸 너는 아느냐? 그 공이 그들이 흘린 피와 땀에 비해 터무니 없이 싸다는 걸 너는 아직 잘 모르겠지. 우리 나라가 자동차와 핸드폰을 많이 팔아 부자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먹는 양식을 생산하는 농민들이 모두 망하게 되는 이치를 너를 아직 잘 모를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들보다 더 많이 갖는 것이 기쁘고 행복한 일만은 아닌 것 같구나. 힘 들이지 않고 부자가 되는 일은 부러워할 일이 아니겠구나. 나는 너가 남의 것을 훔쳐서 기뻐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웃이 아파하면 함께 아파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아름다운 사람이지 않느냐.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속상하겠지만 공부한 것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는 일은 더욱 경계해야 할 일이다. 힘 들이지 않고 뭔가 얻기를 바라는 마음은 도둑놈 심보임을 잊지 말거라. 큰 공부를 하러 가는 마당에 '대박'을 기원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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